2월 4일 월요일
제목: 내 의의 하나님
시편 4:1-8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내가 시험을 볼 때는 ‘학력고사’라는 이름이었다. 그 전날 고사장으로 가기 위해 대전으로 미리 왔는데, 멀미가 나고 속이 안 좋았다. 그날 낮에 잠을 잔 탓인지 그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설잠을 자고 추울까 여러 겹을 껴입어 움직임조차 둔한 채 고사장에 갔는데 난로 바로 옆이었다. 너무나 덥고, 아침 국어 시험을 해롱해롱한 상태에서 치렀다. 그렇게 본 시험, 별 꿈도 없었던 나에게 아빠의 ‘교대 나와서 교사해라’는 그동안의 주입된 메시지에 순응하여 교대에 들어갔다.
내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정말 재미없었던 대학 시절이었다. 학내 사태로 데모하느라 한 달 이상 수업을 하지 않았고 혼란스러웠다. 한 학기를 다니고 “학교를 그만 두겠다, 고모가 그동안 다녔던 그런 회사에 들어가서 나도 취직이나 할련다.” 했더니 엄마는 깜짝 놀라서 학교만 졸업하라고 했다. 그 말에 학교만 졸업해야지 한느 생각으로 학교 다니는 것에 대한 갈등은 없었던 것 같다.
공부하기 싫었으니 주관식 답안을 쓰려면 책상 위에 컨닝할 내용을 적어 놓기도 하고, 레포트는 기한을 넘기기 일쑤고 교육 철학을 정립하는 고민도 하지 않는 농땡이 학생이 나였다. 입학 바로 전, 내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할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고 무기력과 우울감이 나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인생이 허무하고 허무하고... 오가는 길에 무덤만 눈에 보여도 눈물이 났었다. 그러면서도 간혹 재미가 있는 교과가 있었고 그건 활력을 주었다. 여기 저기 기웃거리다 동아리 활동을 하겠노라며 방송부에도 들어갔지만 거기서도 나오고, UBF에서도 성경 공부를 하다가 거기서도 나오고... 최종 종착지가 교회 청년부였다.
그나마 재미를 붙인 교회. 선배들이 좋았고 친구들이 좋았다. 그러다가 우리 교회에서도 목요 찬양 예배를 드리며 청년부 모임을 가졌다. 찬양의 곡조와 가사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 내가 하고 싶은 신앙 고백을 이미 믿음의 선배들이 대신해준 찬양곡은 감사였고 은혜였다. 하나님은 내가 부를 때에 한 번도 응답하지 않으신 적이 없으시다. 내가 잊고 지냈던 기도조차, 내가 입 밖에 내지 못했던 그 마음조차 헤아려주시는 자상한 아빠이신 하나님이셨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우리 교회는 장년부에서부터 청소년부에까지 기도가 몸에 밴 교회였던 것 같다. 교회 지하에는 개인 기도실도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교회에 가서 기도를 할 수 있었다. 기도의 맛을 본 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겉으로 드러나는 죄에서부터 내 안 깊이 뿌리박힌 나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의 모든 걸 아시고 대신 돌아가셨다는 복음에 날마다 회개했다. 목사님의 고백처럼 예수님만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 이런 나를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 한 마디 한 마디에 감격하고 감동했다. 그러면서 나를 찾아갔던 것 같다. 내 안과 밖의 균형....
4학년 여름 수련회였던 것 같다. 교회생활도 뺀돌 거리다가 수련회는 한 번도 참석 안했는데, 사모하는 맘으로 수련회에 참석을 했다. 다른 친구들이나 후배들은 식상해하며 은혜를 못 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나 은혜 받는 수련회였다. 게다가 한 목사님이 더 집회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음에도 급히 가야할 일이 있어 거절하고 돌아가는데, 강권적으로 못 가게 하시는 사건으로 다시 집회에 참석하여 마지막을 함께하시는데... 나는 그 때 알았다. 그 집회에 참석한 나를 위한 성령 하나님의 막으심이었고 그 목사님을 내게 붙여주셨음을. 그때 그 목사님을 통해 나는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 목사님이 그냥 돌아가셨다면 어땠을까? 하나님은 거기에 참석한 한 사람, 나를 위해 그 목사님을 잡아주셨다.
내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요 긍휼하심으로 나를 너그럽게 대하신 우리 하나님, 내 삶의 결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고 악하고 음란했음에도 하나님은 한 명의 나를 향한 사랑으로 내 주변의 환경들을 만들어 가주셨다. 하나님이 수고하시고 환경이 나를 위해 수고했다. 지금, 여기 우리들 교회에 내가 있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안다. 세미한 주의 음성을 내가 들을 수 있는 크기로 ... 너무 작아 못 듣는다면 좀더 크게, 너무 큰 소리라 못 듣는다면 좀더 작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크기로, 내가 알아들을 때까지 들려주시라고 기도했던 기도에 대한 응답이다. 먼저 깨닫고 고백하고 적용하는 믿음의 선배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증인 공동체에 속한 이유만으로도 거저 받고 거저 가는 은혜에 감사하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다.
♡하나님이 행하심을 기억하며 찬양하겠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이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을 누리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