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아들 , 못난 아들
작성자명 [김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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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20
창세기 49장 13절~28절
어제
둘째 아들 사랑이는 남편에게
일주일간 수영을 금지당했습니다
아파트에 있는 실외 수영장에서
시시때때로 놀면서 수영을 했는데
큰 타월과 물안경
심지어는 윗옷까지 벗어놓고 그냥 와서는
예빈이와 오후에
늘 수영하러 간 남편에게
딱 ! 걸린 것입니다
반대로
큰 아들 소망이는
빈틈이 없는 아이입니다
한 번 시킨 것 , 주의를 주는 것,
모든 일들은 거의 실수하지 않고 완수해 냅니다
1등을 놓쳐본 적이 거의 없고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그러합니다
예전의 제 자랑 ? 이기도 했었습니다
예빈이가 오기 전
거의 십 여년을 막내로 지낸 사랑이는
늘 빠트리고 잊어버려도 용서가 됐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였으니까요
하지만
야무진 예빈이라는, 그것도 여동생이 생기면서
사랑이는 거의 주도권에서 벗어난 듯 했습니다
급기야
거의 매일을 야단맞고 잔소리듣고......
사랑이의 수난시대가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키가 저보다 크는 요즈음은
왠만한 야단에는 꿈쩍도 안 합니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저는 제 아들......사랑이가 떠오릅니다
요셉과 유다
잘난 아들과 부족한 아들
창세기를 끝까지 읽기 전
많은 이들처럼 저 역시 당연히 예수님의 계보는
요셉을 통해 이루어질 꺼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어제 본문과 오늘 본문에서
모든 것들은 확연히 드러나게 되는데
제 눈에
쏘옥 들어온 건 유다를 통한 메시야의 약속입니다
형제의 구원을 위해
자기의 희생을 자처했던 유다
늘 온유하고
늘 양보하며
늘 희생적인
따뜻한 천성을 지닌 저희 집 유다는 둘째 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위로를 받습니다
성적표,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인물란에
아.버.지. 라고 망설임없이 쓰며
이 다음에
아버지같은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슴없이 말했던 둘째 아들
언젠가
저는 목회도 똑똑한 큰 아이가 하면 좋겠다 싶어
슬쩍 물었더니 큰 아이 단번에
목회자는 너무 가난해서 싫어요........
야곱의 아들들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저는 저희 아들들의 미래를 바라봅니다
의사나 변호사가 될 큰 아들도 좋지만
때론 영적인 장자권을 가질 둘째 아들도
이젠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아니
목회하겠다는 둘째 아들이
더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완벽하고 완전하기보다는
늘 어딘가
부족하고 모자라는 저 같은 사람을 쓰셨던
주님의 지혜에서
저는 한없는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을 배웁니다
아들 둘...
다른 집들은 둘 다 어찌나 똑같이 공부들도 잘 하는지.....
하지만
이젠 그런것들은 별로 저를 속상하게 하지 못합니다
믿음에서 떠나 있을 때
기도를 게을리 할 때
그런것들이 제겐 더 관심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요즘
아들이 결혼한다고 남자를 데려오지 않고
여자 친구를 데려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며느리 기도도 둘째 아들을 위해 할 때는
더 세게, 더 힘있게 , 더 간절하게 하게 됩니다
현실에서 볼 때는 부족한 아들도
영적인 눈으로 보면
다른 시각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음을
주님은 이미 구약에서 가르치고 계신 듯 합니다
출세를
승진을 위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아들들로
키우기가 더 힘들고 어려움을
요즘 저는 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볼 때
못난 아들, 못난 딸 들이라 할지라도
영적 시각으로 바라볼 때는 소망이 있고 미래가 있음을
그래서 벅찬 기대감으로
자녀들을 함께 ,같이, 바라볼 수 있음을
오늘......주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