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복!복! 그 끝없는 요셉 신드롬!
작성자명 [이득주]
댓글 0
날짜 2007.06.20
복!복!복! 그 놈의 복!
이와 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창49:28b)
오늘 본문을 통해 요셉 신드롬 을 불러일으킨 복 의 개념을 묵상해본다.
요셉이 다른 형제보다 복다운 복 을 얻었다는데...
그가 유달리 풍요와 권세와 지위를 누려서인가?
잘 먹고 잘 살고, 잘 소화하고, 영향력 행사하며,
별로 회개할 건덕지 없이 가늘고 길게, 오∼래 사는 것 이 복인가?
성경이 말하는 복 이란 대체 무엇인가?
복 과 축복 은 다르다.
축복은 남을 위해 복을 빌어줌으로써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축복은 인간이 하는 것이고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복의 주권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주의 축복이 함께 하소서! 는 잘못된 표현이다. (대체 주님이 누구에게 복을 빈단 말인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시는 이 복 속에
복다운 복 이니 복답지 않은 복 이니 하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내게 복다운 복을 주소서! 라는 요청은 주권을 간섭하는 교만의 소치이다!
성경에는 진정한 복 이 있을 뿐 특별히 복다운 복 은 따로 없다.
성경이 말하는 복의 원형은 믿음으로 복의 근원이 된 아브라함의 복이다.
그의 복은 비는 복 , 즉 축복의 행위, 복의 통로 가 되는 복이다.
요컨대 복된 자 는 남을 축복하는 자 이다.
이는 임종 전의 야곱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야곱이 이전 모습과 달리, 아비 이삭과 달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온전한 정신 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
자식들의 캐릭터와 행적에 따라, 그들의 분량대로 예정된 주의 복을
제대로 통역해 주었다. 이게 참 복 이다!
주님이 주신 꿈을 해석하여 남을 섬겼던 요셉이 큰 복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의 복이 크다함은 높은 신분과 재산때문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신 주님의 역사를 일찌감치 알았고 제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오늘 내가 침 흘리는 요셉의 큰 복 은 야곱의 축복을 통해 내려진 그만의 분량인 것이다.
분량대로 자식들의 복을 비는 야곱의 의로운 행위 자체 보다,
자기의 죄를 보고 메시야의 계보를 잇는 유다의 복 보다,
그저 요셉이 받은 큰 덩어리의 복, 자체가 내 우상이 되고 있음을 아프게 본다.
요컨대 야곱의 복은
1. 화복(禍福)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뜻 대로
2. 축복할 자격 과 신분 을 갖춘 사람으로서
3. 축복 받을 대상의 분량대로 마땅히 받을 만큼의 복을
4. 빌어주는 복 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복은 복의 어원 에도 잘 나타나 있다.
첫째 복 이란 피흘리는 것을 의미한다.
복을 뜻하는 blessing 이란 단어가 피흘리다 (bleed)에서 유래하였다.
여기서 피 는 생명 을 의미한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큰 복은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영생을 주시기 위해 보혈의 피 를 흘리신 그리스도와 그의 주권을 아는 것 이요,
또 그것이 믿어지는 것 이다.
둘째 복은 나누는 것 이다. 복의 동사형 어원에는 칼로 자르다 (cut)의 뜻이 담겨있다.
칼로 자른다 는 것은 나누는 것 을, 나누는 것은 베푸는 것 을 말한다. 나누고 베푸는 맘 없이 오직 내 것 만 얻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행하는 새벽 기도와 금식은 야심가의 거룩한 사기 극일 뿐이다.
요즘 교회마다 구하는 복, 물질의 복, 권세의 복! 건강의 복! 복다운 복!
복복복! 이러한 복을 받으러 다니는 예배당은 십자가를 단 현대판 성황당이며,
내 죄 를 봐야 할 예배시간에 끼어드는 잡스런 복 프로그램과 특순은 Show를 하라 Show를! 이다.
우리들 교회 의 예배는 이러한 점에서 군더더기 없는 복된 예배이다.
셋째 복은 그릇에 맞게 채워질 나누어진 분량(分量)을 말한다.
그릇에 맞는 복은 크든 작든 그 자체로 주님이 주신 복이다.
즉 자기 분량의 복을 복 으로 아는 것이 복이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나같이 미천한 자에게 권세의 옷은 번민과 불평, 이전투구와 술책의 근원임을 본다.
나같이 게으른 자에게 넘치는 물질은 타락과 교만, 죄악과 사망을 구입하는 사탄의 도구임을 본다.
나같이 미련한 자에게 높은 신분과 큰 프로젝트는 번뇌와 무능력, 자기학대, 그리고 나같은 불량품을 생산했다는 저주받을 원망의 원천임을 본다.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내가 우스꽝스럽게 쥐고있는 나 아니면 안될 거라는 주의 사업 과 귀하게 쓰실 거에요! 라는 인사치레 격려에 솔깃해 하는 귀 얇은 소명의식이 결국 나의 절대무능과 죄악성을 비치는 거울임을 아프게 본다.
문제는 소명으로 포장된 내 욕심과 야심, 가증할 우상이 되버린 큰 그릇 신드롬 이다.
이 그릇의 눈금에 못 미치는 빈 부분은 곧 괴리와 좌절감으로 채워지고 갈증만 더해간다.
오늘 내가 나의 얍복강에서 씨름하는 그 잘난 복 의 허상으로 발목이 자꾸 아파온다.
시를 쓰며 그림 그리며 산천을 누비고 날아다녔던 내 발목이 욕망의 그림자와의 씨름에서 버거워하며 제 몸뚱이 무게도 감당못하는 한 줌의 고기 덩어리임을 본다.
넷째 복이란 마음이 가난한 자의 감사(appreciate)하는 마음 이다.
복(福)이란 그 한자어가 시사하듯 마음의 부요함(富)이 심령의 곡간에 넘쳐 제단에 바치는(示) 행위 를 말한다. 지금 여기서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서 큰 만족을 찾는 사람은 이미 심령의 큰 그릇을 갖춘 사람이다. 그는 이미 유다와 같이 날마다 자기 죄를 보며 애통하는 낮은 자의 연약한 마음을 만지시는 주의 섭리와 주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의 솜씨를 인정하고(appreciate) 감상하고(appreciate) 감사하는(appreciate)
마음이 가난한 아주 작은 자 의 그릇에 채워질 주의 은혜가 진정한 복 임을 묵상해본다.
내 우상이 깃든 예루살렘 성벽을 돌하나 남기지 않고 무너뜨리사
아주 작은 내 그릇을 보게 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