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옵소서’만 외치는 인생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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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20
2007-06-20 창세기 49:13-28 ‘주시옵소서’만 외치는 인생
28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가끔 길거리에서 보는 외국 사람 중에
철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경우를 봅니다.
3월의 어느 날 반팔 차림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계절과 옷 차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추운 나라 출신이라 추위에 익숙하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동남아에서는 20 도 정도의 날씨에도 가죽 잠바 입은 사람을 흔히 봅니다.
우리가 3월에 반팔 옷을 안 입는 이유는 6월부터 여름이 시작되기 때문이 아니고
좀 덥다고 반팔을 입었다가는 감기에 걸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세상에 나오는 순간부터 생존을 위해
신체를 환경에 적응시키고,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배웁니다.
이렇게 학습과 본인의 노력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영역이 있는 반면에
오직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의 복을 받는 기준이 되는 각자의 분량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각자의 분량에 따라 은혜로 받는 것이지
내 의지와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씀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말씀을 믿게 되었으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로마서 말씀 그대롭니다.
염소와 양의 비유에 관한 말씀으로 양육 숙제할 때
‘애당초 염소로 태어난 사람은 어떻게 하나?’의 물음을
목사님 설교를 듣고서야 깨닫고 내가 염소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의 반대말이 ‘사랑했었다’ 라는 유머에서 보듯이
염소임을 깨닫는 순간 염소가 양의 신분으로 바뀌는 건 아니지만
염소에게 임하는 은혜로 자신이 염소임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 그릇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며 복 받을 준비만 하던 시절이 있었고
내 그릇이 작다고 생각하여 그릇 키울 방법에 골몰한 시절도 있었는데
아예 그릇을 바꿔 달라고 떼쓰지 않은 게 가상합니다.
예정된 복이 아무리 크고 복 받을 그릇이 아무리 커도
그게 복인지 몰라서 더 받으려고 ‘주시옵소서’만 외치는 인생보다
고난의 터널을 통과하면서도 희미한 빛으로 보여주시는
내 분량대로의 복에 늘 감사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작은 그릇에, 작은 분량에도 감사하며
주신 복 나누어 주는 인생이 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