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도 과분한 축복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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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18
2007-06-18 창세게 48:8-22 ‘왼손도 과분한 축복’
미국에서 이 나눔을 보고 있을 동생이 하나 있는데,
이스마엘과 이삭을 묵상할 때는 이삭 같았고
오늘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묵상하면서는 에브라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서와 야곱을 묵상할 때 야곱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직도 구속사 속 하나님의 섭리로 야곱을 보지 못하고
인본적으로 평가하려는 생각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겁니다.
자랑을 좀 하자면, 일찍이 멕시코에 유학 갔다가
야밤에 월경하여 미국에 정착했는데, 스와밋의 고생을 거쳐
점포를 얻어 사업을 확장하고, 지금은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씀을 멀리하며 세상에서 악과 죄를 쌓아 나갈 때 저를 위해
기도도 열심히 했겠지만, 그보다는 말씀의 축복이 어떤 것인지를
생활로 보여줌으로써 제가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 봉사, 형제 섬김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소홀한 모습을 보이는 법이 없지만 가장 모범이 되는 것은
두 자녀에게 철저한 말씀 양육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글을 읽기 시작한 이후 매년 온 가족이 성경 일독을 거르지 않는다니
그 외 말씀 양육은 어떠할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갑니다.
해외에 이민 간 사람들의 고생이야 별반 다를 게 없겠지만
어제 설교에서 목사님이 예로 든 나렌드라 자다브
인도 푸넴대학 총장의 아버지처럼 “노동과 자녀 교육이 나의 종교”라
생각지 않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설정과 자녀의 말씀 양육’을
삶의 목표로 산 결과, 아직 살아야 할 인생이 더 많기를 바라지만
지금 중간 결산을 해 보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흑자의 대차대조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이런 동생이 있어 형으로서 뿌듯하고
이런 동생을 배울 수 있어 아버지 자녀로서 감사합니다.
내가 어려울 때 영육 간에 준 직접적인 도움도 그렇지만
생활로 보여주는 모범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본문을 묵상하니
하나님이 야곱을 통해 므낫세보다 에브라임을 더 축복한 것은
결국 에브라임을 통해 므낫세를 양육하시려는 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생을 가르치고 양육시키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동생에게 부끄러워 고개 들지 못하다가
이제사 죄인임을 고백하고 동생을 배우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는 태초에 정해 놓으신
저에 대한 더 큰 양육의 뜻이 있었기에
흰 머린 늘어가는 초로에 접어들어
말씀을 꿀 송이처럼 여기게 만드시고
자원함에 부르심의 은혜까지 허락하시어
아직 되었다함이 없지만 고난을 통해
왼손도 과분한 축복을 받게 하시니
아버지 깊은 뜻에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