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간증문
작성자명 [류혜숙]
댓글 0
날짜 2007.06.18
일년 반전에
제가 박국진씨의 손을 잡고 우리들교회에 온 것은 제 손을 잡으신 예수님의 손에 이끌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4대째 모태신앙으로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저 종교인으로만 있다가
25년 전 1월 말에 박국진씨를 처음 만난 후, 난생처음으로 동성애자의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고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에게 어찌 이 같은 모습이 있을 수 있는가, 그에 대하여 말할 수 없는
깊은 의문과 혼란을 가지고
세상 어디에도 없을, 누구에게도 없을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역시 또 난생처음 절대절명의 심정으로 그동안 나와 별 상관없이 생각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고
박국진씨를 만난지 40일이 지난 그해 3월10일에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다음은 작년 6월에 우리들교회에 일대일 숙제로 제출한 그때의 간증문입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그동안 사십 중반을 살아오면서 누구나 그러하듯이 저도 내 앞에 길을 택해야할 때가 무수히 많았습니다.
제 삶에 예수님이 찾아오시기 전까지 내 앞에 있는 여러 갈래의 길 중에서 어느 한 길을 택한다는 것에
별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저 내 눈에 보기 좋은 대로 택하고 그 결과도 그 모양대로 될 것이라 예상되었기 때문에
별 갈등이 없었지요.
물론 대부분의 결과가 예상에서 빗나가 실망도 많이 했지만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그냥 넘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니면 말고.. 하는 식으로 그냥은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사건이 내 앞에 왔을 때,
그 결과가 아니면 안 되는 그 어떤 무엇이어야만 했을 때,
반드시 그 결과로 통할 수 있는 어느 한 길을 찾아 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22살 되던 해에
생전처음으로 그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정말 그때는 어떤 한 길을 택한다는 것 자체가 내게는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길도 믿을 수 없었으니까요.
그때 내가 찾았던 것은 그 즈음 처음 만나서 첫눈에 마음이 다 빼앗기고 사랑한 어느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인데, 그 사람은 놀랍게도 죄 그 자체 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 자체라면... 죄가 죄 아닌 곳에 있기가 마치 어둠과 빛이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불가능한 것인데
사람이 죄 가운데 있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것은 최악의 절망이었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최악의 절망으로 있어야한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죄 자체를 사랑하면 나도 같이 죄가 되어 하나로 묶이는 것인데 사랑한다고
덥석 죄와 하나가 될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참으로 선한 것이거늘, 사랑하면 죄가 되고 사랑하지 않으면 선이 되는(?) 관계 속에서
결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의 죄와 그에 대한 내 마음의 사랑, 그리고 선에 대해 고민하다가
마음이 멈춘 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은 사랑이 결코 죄로 빠질 수 없는 참사랑이 될 수 있는 기준,
곧 죄와 사랑과 선의 합일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그때 내가 찾고 있었던 것은 바로 절대선 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죄 자체의 사람을, 그리고 그 사람을 향한 내 마음의 사랑을 모두 죄로부터 안전한 영역에
속할 수 있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깊이 골몰하여 생각이 미칠 수 있는 곳까지 마음과 힘을 다해 둘러보았지만
어디에도 절대선 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머릿속에 개념으로 잡혀있는 한 절대선 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존재하는 한 반드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내가 가는 길의 그 끝이, 그 결과가 결단코 생명같이 그 어떤 무엇이어야만 하는데,
내 눈으로 보고 택해서 발을 떼는 그 길이 과연 그 결과에 이를 수 있는 길인지
너무나 의심스럽고 불안해서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도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사람일 것이고,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한 치 앞을 모르는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참으로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내 자리는 그야말로 광야였고 나는 혼자였습니다.
내가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결단코 가야만 하는 길인데, 길은 보이지 않고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순간 예수라는 이름이 뇌리에 스쳤습니다.
예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신이 아닌가?
신이라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가야할 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부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예수의 이름을!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하는 심정이었기에 그 광야에서 한 올 희망이라도 된다면
그 희망의 줄을 아니 잡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어쩔 수 없어서 잡았던 지푸라기 같은 예수의 이름이었는데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정말 예수님은 내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광채가 나는 환한 빛이었습니다. 나는 길을 가르쳐달라고, 보여 달라고
예수의 이름을 불렀는데
예수님은 길은 보여주지도 않고 예수님 자신만 보여주셨습니다.
그 후, 여전히 내가 택해야할 길은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헷갈려하며
어쩔 수 없이 걸어야했던 길에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왠지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강한 자신감이 솟아있었습니다.
결단코 생명같이 어떤 무엇이어야만 하는 그 결과가 이미 내 손에 다 쥐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 자신감으로 두렵고 불안한 내 길을 이겨 나왔습니다.
여전히 택해야할 길을 몰라 방황하고 갈등하기도 했지만 결단코 어떤 무엇이어야만 하는 그 결과가
느낌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내 손에 쥐어져 확인할 수 있었던 20여년이 지난 후에야
그동안 제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그 길은 이미 태초에 하나님이 내게 작정해놓으신 길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내 손 잡으신 예수님의 손길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압니다.
눈에 보이는 길이 내가 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라
내 손을 잡으신 예수님 자체가 결단코 죽을 수 없는 그 어떤 생명으로 통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