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내뼈를 베트남에 묻어다오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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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17
창47:27-48:7
오늘 아침 야곱이 참 부릅게 느껴집니다. 그가 죽을 때를 알았다는 것과(47:29) 죽는 순간까지 애굽의 경제적인 풍요로움 가운데서도 영성이 전혀 쇠하여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죽음을 앞둔 147세의 늙은 노인과 아들 요셉과의 대화를 유심히 살펴보니 노인의 영성이 짙게 묻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도전을 받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자기뼈를 묻어달라고 간곡히, 그것도 맹세까지 시키면서 당부하는 야곱의 유언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잠시 머물다가 가는 곳임을 알고 영원한 약속의 땅으로 떠날 준비를 하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유언의 말이 나와서 하는 말입니다만 제 나이를 생각하면 유언을 말하기는 조금 겸연쩍긴 하지만 그러나 사실 1993년 초에 한국에서 이곳으로 올 때 저희들은 이미 유언장을 쓰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12월 말에 저의 누님이 세상을 떠나 장례식에 참여하러 잠시 한국에 귀국했을 때 장례를 마치고 두 아들에게 아버지가 죽으면 내 뼈를 베트남에 묻혀달라고 부탁한 바 있습니다. 아이들이 반대를 합니다. 반대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묘지가 한국이 아닌 이국에 있을 때 당장 아이들이 불편할 것이고, 장례도 한국의 친지들이 참여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장례라야지 장례를 치루는 본인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모양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요즘 선ㄱ계에서 선ㄱ사가 선ㄱ지에 자기 뼈를 묻는다는 말을 하면 촌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대부분 선ㄱ사들이 사역을 마치면 고국으로 돌아가는 추세인데 저는 거꾸로 뼈를 묻고 싶네요.
물론 뼈를 묻는다고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둘째 아들이 반대하는 이유가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뼈를 묻히고 싶어하는 것은 아버지의 이기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요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아이들에게 내가 죽으면 내뼈를 베트남에 꼭 묻도록 해야한다하고 야곱처럼 환도뻬에 요셉의 손을 넣게하고 하나님앞에 맹세까지 시킬 아버지로서의 영성과 권위가 아이들에게 없습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빚진 아버지이기때문입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뼈를 묻는 것에 대해 내 자신이 내심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것은 죽을때까지 이곳 베트남에 있을 경우 후배 ㅅ교사들이나 현지인들에게 누가 되는 존재가 되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잘못하면 골동품이나 혹은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성이 없으면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묵상을 하면서 야곱이 참 부럽네요. 자기가 죽을 때가 된 것도 감지하고 또 죽을 때쯤에 이삭과는 달리 또렷하고 완숙한 영성을 가지고 후손들을 축복해주는 모습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