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이 때에 야곱아!를 두번이나....
작성자명 [이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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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13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두 이름이 눈길을 끕니다.
하나는 1절에 나오는 이스라엘 입니다.
이스라엘이 모든 소유를 이끌고 발행하여... (창46:1)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전 얍복강가에서 받은 이 이름은
어떤 면에서 공인(公人) 야곱 의 직함(title)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장차 그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의 소원이 담긴 미래의 이름 입니다.
이 이름이 창세기 기자에 의해 공식적으로 표기된 곳이 바로 오늘의 본문 46장입니다.
이 시점부터 그는 개인의 신분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이스라엘 이라는 언약 백성의 이주민 대표자의 신분을 득(得)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이날 밤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사용했던 두 번째 이름이 다시 눈길을 끕니다.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시고 불러 가라사대 야곱아, 야곱아 하시는지라 (창46:2)
여기서 사용된 이름 야곱 은 의심많고 흠많던 사인(私人)의 야곱 을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이는 미래를 대표하는 이스라엘 과 달리 그의 인간적 흠과 역사를 담은 과거의 이름 입니다.
왜 하나님은 하필 그가 애굽으로 출발하기 직전에
새삼스레 과거의 이름을 사용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우리 모습(What we should be)만큼이나,
아니 오히려 어쩌면 그 이상으로 죄많은 과거의 우리 모습(What we used to be)과
있는 그대로의 현재 모습 (the man as we are)까지 여전히 사랑하십니다.
미래의 세계로 진입하기 직전에 과거의 이름을 사용하신다는 것은
과거와 미래가 이상 중에 나타나신 현재를 통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즉 죄 많은 과거의 모습을 현재의 이상중에 일깨워 미래의 새모습으로 들어가게 하시는
구속사의 패턴을 상징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처럼 구속사의 섭리속에서는
과거 어느 한 조각도 낭비됨 없이
현재에 임하시는 주의 거룩한 간섭을 통해
있어야할 미래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신 또 다른 이유는
그(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특별한 개인적 사랑임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보편적 사랑을 넘는 각별한 사랑)
즉 주님은 일대일 양육이라는 개인 수업으로 공인 이스라엘을 키우셨듯이
그에 대한 사랑 역시 개인 대 개인 의 사랑임을 약속한 것입니다.
주님은 여기서 야곱 라는 친숙한 개인의 이름을 두번이나 부르심으로
공인으로 잠든 현재의 그를 거듭 일깨워 미래에도 그를 여전한 방식으로 인도하시겠다는
임마누엘 사랑의 약속을 확증하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 주님은 이스라엘 이라는 타이틀 대신 옛 이름(first name) 야곱 으로 친히 부르고 계십니다.
입(入)애굽 직전 공인 이스라엘을 향해 부르신 주님의 음성 야곱아 야곱아! 는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넘어 죄많은 우리의 모습을 통해
구속사를 성취하시되 여전한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음성으로 들립니다.
친히 내 이름을 부르시는 주의 음성을 사모하며 ...
- Blessed are those who are being called by their first names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