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아 야곱아
작성자명 [박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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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13
창26:1-7
오늘 아침 본문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이 왜 그랬을까 하는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이 상중에 하나님이 나타 나셔서 야곱을 부를 때
왜 “이스라엘아 이스라엘아” 하지 않고 ‘야곱아 야곱아’ 불렀을까
이름을 바꾸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왜 이전의 이름을 불렀을까
성경표현도 이스라엘이 되었다가 때론 야곱이 나왔다가 ……아직 그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본문 창46:3에서 상당히 두려워 하고 있었던 야곱을 발견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은 두려워 하는 야곱에게 길을 보여 주기 위함임을 깨달았습니다.
애 굽으로 내려 가는 게 그렇게 두려웠던 것 같았고
나이는 많아지고 죽을 때는 다가 오는데 상식적으로나
이전의 들은 말씀으로 생각 해보더라도
약속의 땅 가나안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 했을 것 같습니다.(나의 생각 이지만…)
하나님이 요셉을 통해 모든 것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하도 속고 속이고 하는 인생을 살아보니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아들들 ,요셉의 형들의 말 보다 애굽에서 보내진 수레를 보고
더 믿음과 힘이 소생한 야곱 인지라 .........이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는 야곱의 모습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야곱아 야곱아 불러 주신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 고집 대로 살아온 야곱의 이전의 삶속에서
새롭게 된 이스라엘의 모습을 상기 시켜 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말씀 묵상으로 인도 받는 야곱 입니다.
그 동안 남 선교회에 이 메일을 보내왔었습니다.
나의 묵상도 보내기도 하였고
시간이 없을땐 지체들의 묵상을 사전 허락 없이 보내기도 했었고
좋은 글도 감동적인 글도 저장해 두었다가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매일 묵상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형식적인 인사보다 말씀의 교제를…. 믿음의 형제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직분을 받게 되고보니 하나님께 기도와 말씀 인도 속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 하여 나름대로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4일 동안 중단 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고
또한 최근에 가까운 지체로부터 핀잔의 소리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유익이 있다고….왜 믿음이 좋은 척 ….잘 보이려고 하느냐….” 등등 말입니다.
야곱 처럼 그 정도의 두려움은 아니지만 누군가가 부정적인 애기를 할 땐
잠시 멈추어 정말 그러한가 말씀에 비추어 보는 습관이
중요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이전의 방식대로 계속 진행하는 것을
말씀으로 받습니다.
창 26장 4절 말씀으로 그렇게 생각 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애 굽으로 가겠고 정녕 너를 인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