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감옥, 영의 감옥에 갇힌 형제님들께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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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12
2007-06-12 창세기 45: 16-28 ‘육의 감옥, 영의 감옥에 갇힌 형제님들께’
28,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주일 설교에서,
빌라도로부터 심히 기이히 여김을 받으신 예수님의 침묵을 통해
구속사에 흐르는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생각토록 해주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내 삶을 돌아볼 수 있었는데
어제, 세상의 재판정에 선 목장 지체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 중에도 이 사건을 통해 이루려 하시는
그 지체와 가족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 재판은 판결 전 마지막 기일이어서 검사의 구형이 있었습니다.
그 전에 몇 가지 행정적인 절차를 마치고 마지막 변론을 할 때
흐느낌으로 터져 나온 지체의 눈물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인본적으로 보면 당연히 같이 울어줄 일이었지만
구속사 속에 세워 놓으신 하나님의 계획을 생각한다면
이번 사건이 그 지체와 가족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직장이 지방이라 부인의 재판에 참석 못한 형제에게 전화 걸어
담담히 구형량과 앞으로 할 일에 대한 의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전과자가 되고 몇 년을 감옥에서 지내야 됩니다.
재판 후 변호사가 말하기를 진실은 그 지체와 하나님만 아시는 일이고
세상의 판결은 진실과 다르게 내려질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다른 지체에게 재판 내용을 설명해주면서
사건의 구속사적 의미를 같이 생각해보는 중에,
죄의 유무는 제 3자, 특히 인간이 논할 일이 아니라 해도
저는 2년 여 진행된 재판 과정을 보면서 분명한 소신을 갖게 되었지만
기대와 다른 판결이 내려질 경우에 그 판결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구속사적 가치관으로 잘 해석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오늘 이슬라엘로 표현된 야곱은
지나온 고통의 세월을 보상받으며 ‘족하도다’를 외쳤지만
죽을 것 같은 고난을 겪을 때
주시는 고난에 감사하며 ‘족하도다’를 외칠 수 있다면
고난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은혜로 주신 족함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구원을 이루며
천국을 미리 경험 할 수 있을 텐데
아직도 열등감과 시기심을 버리지 못하여
하나님의 소원이 아닌 내 소원만 간구하는 나를 보면서
아직 되었다함이 없는 인생임을 깨닫게 해주심에
이스라엘의 족함이 아닌 야곱의 돌베개를 베게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 깊은 사랑에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축복으로 허락하신 연단의 시간을
족하도다의 은혜로 잘 통과하면서
아내와 지체들에게 그 은혜를 나눠주는
복 받은 인생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지금 육의 감옥, 영의 감옥에 갇힌 형제님들께
광야의 돌베개가 ‘족하도다’의 은혜가 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