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입에서 나오는 놀라운 고백-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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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10
창44:14-34
간밤에 온 소나기로, 창문으로 들어오는 여름햇살이 뜨겁지 않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창문사이로 불어옵니다. 간밤에 온 소나기가 짐통 더위를 잠재웠기 때문입니다.
어제 토요일 저녁에 단체식구들이 임시회의로 모였습니다. 회의내용은 6월 15일부터 있을 KWA영성수련회에 말씀을 전하실 강사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지에 대한 회의였습니다. 회의를 마치면서 한 사람이 혼자 짐을 지는 것보다 서로 짐을 조금씩 나누어지는 것이 좋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짐을 서로 나누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일 겁니다(갈6:2). 그러나 이런 짐을 서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별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냐민이 요셉의 집에 구류되어 노예가 될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모든 형제들이 베냐민이 뒤집혀 쓴 누명을 모두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공동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더 이상 옛날의 형제들이 아닙니다. 그들도 베냐민과 함께 요셉의 집에서 노예가 되겠다고 합니다. 이때 애굽의 총리인 요셉은 그럴 수 없다고 합니다. 베냐민 한 사람만 여기에 남고 나머지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데리고 오라합니다. 유다가 나서서 그럴 수가 없다고 합니다. 만약 베냐민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아버지 야곱은 슬퍼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라고 말합니다(44:30)! 그래서 자기가 베냐민을 대신해서 노예가 될테니 다른 형제들은 돌려보내달라고 간곡히 사정합니다.
다시 곰곰 생각해보니 짐을 서로 조금씩 지는 것도 쉽지 않는 섬김입니다. 왜냐하면 이것도 안 되려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로 조금씩 짐을 나누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형제의 어려움에 함께 동참하는 일입니다. 아니 이것보다 더 큰 사랑은 모두를 대신해서 혼자 그 십자가를 지겠다고 나설 때입니다.
이렇게 될 수 있으려면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임을 알 때에 가능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아버지가 낳은 아들들 즉 형제들도 서로 하나인 것을 알 때에 더욱 더 가능할 것입니다.
비록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교단과 단체의 배경이 다르다 할지라도 야곱의 가족처럼 배다른 형제라 할지라도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을 알 때, 오, 성부와 성자가 하나인 것을 알 때에, 마침내 성자가 우리들 위해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성부의 아들들이 된 것을 알알이 알 때에 그래서 우리가 서로 십자가의 피를 나눈 형제들임을 알 때에 우리는 서로 짐을 지기도 하고 한 형제의 어려움을 보고 내몰라라 하지 않고 그 형제의 어려움에 모두 한 마음으로 동참할 것이고 아니면 그 형제를 위해서 대신해서 크게 십자가를 지기도 할 것입니다. 오,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인 것을 알 때에 가능할 것입니다.
오늘 아침 유다의 고백이 내 귓가에 맴돕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은 서로 하나로 묶여있거늘...(44:30)
주 하나님 우리는 모두 한 형제들, 주 하나님의 한 아들들이 아닙니까. 이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하며 마음을 넓게 가지게 하소서. 그렇지 않으면 이 종이 하나님의 뜻을 이곳에서 이루어드릴 수 없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