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진실
작성자명 [김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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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10
창 44 :1-34
<사랑과 진실>
제목을 이렇게 지어놓고. 시작해 보려니
약, 20여년 전의 김수현의 드라마(정애리 주연) 생각이 납니다만은^^
어쩌면 이 제목 속에는 그 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유다는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에서, 그는 열정적으로, 혹은 담담하게 말입니다.
총리님께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니 이 잔을 훔친 베냐민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총리님의 종이 되겠습니다.
유다는 다말인줄 모르고 창녀를 샀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며느리 다말에게 죄를 짓고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다로 하여금 다말로부터 그의 아들들의 생명을 보존하려다가
생명의 계보를 잇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어긴 자신의 죄를 보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며느리 다말과 동침했다는 엄청난 수치를 떠안은 가운데서 말입니다.
이미 그런 깨어짐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유다...,
그는 이제 은잔의 죄가 들어난 마당에 이집트의 총리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다구요..., 그렇군요.
만일 100% 옳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죄가 있음을 드러내시길 원하신다면,
100% 죄인인 우리는 베냐민과 더불어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종종, 결심만 한다면야 자신의 죄를 오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선 오픈자체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도대체 자신의 죄가 뭔가를 안다는 것,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100% 죄인이라는 것은
죄를 미워하기는 커녕 죄인줄 알면서도 좋아하기까지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미 오염된 자신의 의식가운데로 자신의 죄를 본다는 것은,
특히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에 따라 자신의 죄를 본다는 것은,
차라리 기적에 가까운 이야기인 것입니다!!
죄를 본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능력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새로 발견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깊이 회개한 유다가 애굽의 총리 앞에서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오픈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하다가
맘을 바꿔 이집트로 팔아버렸다는 얘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에게는 늙으신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리고 동생도 있습니다.
저희 동생은 아버지가 늙으셨을 때 낳은 아들인데 저희 막내 동생의 형은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막내 동생은 그 어머니의 마지막 남은 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그 아이를 매우 사랑하십니다.
팔아버린 동생, 요셉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
유다는 그가 그냥 죽었다고만 이야기 합니다.
오픈은 적절한 대상에게, 성령의 감동이 있을 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란...,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랑이란 대 전제가 있어야만
실질적이고 아름다운 결론들을 도출해 낼 수가 있는 법입니다.
옳고 그른 것, 그보다는 항상 사랑자체가 문제입니다.
자꾸 판단받는 자리에 있게 된다면 얼마나 지치겠습니까?
너도지치고 나도 지치고..., 다 지쳐버리고야 말 것입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습니다.
사랑이란
대상이 무슨 잘못을 진짜로 했더라도
상대방이 새로운 기쁨, 생각,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 유다의 이 한마디가 심금을 울리는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 제발 저를 남겨두어 종으로 삼으시고,
그 아이는 형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그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는 한, 저는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슬퍼하시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그는 과연 그리스도를 예표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의 사람으로 거기 우뚝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실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야 비로소 찬란히 빛을 발하는 법인 것입니다.
인간적인 결심으로 더욱 진실하겠다고 결심하거나
혹은 더욱 그리스도께 충성하겠다고 결심을 한다면은
더욱 견고해진 자기의로 인해
인생은 자꾸만 더 부담스러워져가고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쓰레기로 변해 갈 것입니다.
다만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의지할 때,
대속해주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지할 때
바로 오늘의 유다처럼 우리는 참다운 의로움과 진실함의 세계에서
성령이 주시는 자유를 따라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이 춤의 구체적인 표현이 바로!!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님의 지극하신 사랑하심과
나를 창세전에 택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근원되신 사랑과
그리고 지금도 나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해 주시는 성령님께 대하여
감사와 찬양으로 예배의 삶을 드리는 것 외에는 달리 어떻게 표현되겠습니까!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