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간구하는 것은
(QT본문: 요 5장 30절~47절)
2013-1-14 월요일
[본문: 요 5장 30절 ~ 47절]
[관찰 해석]
예수님에 대한 증거 30~47
1. 예수님은 복음을 통하여 살릴 자를 살리시는 주권행위가 정당하다 하시며, 그 이유가 당신의 뜻대로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분 곧 하나님의 뜻을 듣는 대로 실행하시기 때문이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증거한다면 그것을 참된 증거가 될 수 없으며, 당신을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계시니 그 증언은 참된 것이라 하신다.
2. 요한이 진리에 대해 증거하였다 하신다.
egrave; 하지만, 요한의 증거는 예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이 회개하여 구원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신다.
egrave; 요한을 통해 주님께로 안내하는 빛을 삼았지만, 유대인들은 계획적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신다.
3. 하나님께서 성취하라고 맡겨주신 일, 곧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것, 즉 메시야로 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하신다.
4. 하나님께서 직접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하신다.
egrave; 유대인들이 구약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증거의 형태를 보았다고 자처하였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한, 그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말씀하신다.
5.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egrave; 구약 성경이 영생을 주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이 그 성경을 상고하면서도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생명을 취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악의에 기인한다고 책망하신다.
6. 예수님은 당신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하시며,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도 영접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칭찬받으려 하기는커녕, 오히려 사람에게 서로 칭찬받으려 하니 예수님을 믿을 수 없다 말씀하신다.
7. 모세도 예수님을 증거하였다 말씀하신다.
egrave; 구약성경(모세)을 믿었다면 예수님을 믿었을 것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았으니 구약을 배척한 것이나 다름없으니, 유대인을 정죄할 자는 구약성경(모세)이라 말씀하신다.
[교훈 적용]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예수님이 오셨다.
예수님 오심을 예비하기 위해 세례 요한이 등장하였고,
그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회개의 촉구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로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하여 요한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종교지도자들은 요한에게 심문자들을 보냈지만,
요한의 증거하는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사람을 보낸들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세례 요한의 증거와 또한 계속되는 예수님의 복음선포, 기적과 표적에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이 땅에 오신 메시야라는 것을 계속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이려 하고 있었으니,
이들 유대인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야 이심을 여러 증거를 통해 계속 논증하신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
그 이유를 예수님은 그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며, 하나님께 칭찬받으려 하기는커녕 사람에게 서로 칭찬을 받으려 하며 자기가 그 영광을 취하려 함에 있다 하신다.
이런 유대인들이었기에 비록 이들이 구약과 율법을 잘 알고 있었어도, 예수님을 증거하는 구약을 상고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생을 얻으려 하지 않음은 그들의 악의에 그 원인이 있음을 지적하시며 책망하신다.
이러한 상황이니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한, 그들이 계시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네, 하나님의 증거를 보았네 하는 것이 그저 망상에 지나지 않는 헛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결국 하나님도, 성경도, 예수님도, 선지자도 믿지 않는 꼴이니, 이런 자들이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가르치며, 인도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런 기도 안찬 자들의 꼬락서니 다 받으시며,
죽기까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으니,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어떤 마음이셨을까?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23:34)
나는 예수님이 참 답답하셨을 것 같다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을 대적하여 예수님을 핍박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정한 자들, 결국에는 십자가에 예수님을 못박은 자들에 대해, 자기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있다 생각하셨으니,
예수님은 죽기까지 끝까지 책임지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보여주셨다.
다들 자기 잘났다고 하며 세상 영광 다 받으려 하였고,
그런 그들을 지으신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도, 사랑하지도 않는 패역한 자들임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설득하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살아있다.
나 잘났다 큰 소리치며 떵떵거리며 교만하게 살아왔지만 그래도 다시 이렇게 주님의 품 안에서 주님의 사랑 배우며 살도록 이렇게 주님은 나를 사랑으로 인도하신다.
이 분이 우리 주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시다.
사랑 먹고 자란 자녀, 사랑으로 세상 산다 하였는데,
하지만 아직도 나는 그 사랑 덜 먹은 것 같다.
아니, 그 사랑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 함께 나누며, 나누어 주며 살아야 하는데, 왜 이리 나는 부족하고 부족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인지?
한 많은 세월 속에 뿌린 죄악의 산물들이 나를 잡아 당긴다.
사랑하려 해도 사랑하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이 죄악이 얼마나 무섭고 그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이제서야 절실히 깨닫게 되니, 날마다 눈물로 주님께 회개하게 된다.
주님을 알아간다는 것이 주님을 배우며, 주님의 삶을 따르며, 순종하며 가는 길인데,
그 길을 걸어가려 하니 그 길이 너무 아프고 아프기만 하다.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의 사랑도 모르고 그렇게 세상을 내 멋대로 살아왔던 나였어도, 주님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사랑도 못하는 그런 내가 이제 와서 뭐가 잘났다고 누구를 정죄하며 누구를 미워하며 누구를 탓한단 말인가?
날마다 회개하며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에 한걸음씩 순종하며 나아가는 길 외에 내가 갈 길은 없다.
이렇게 회개하며, 한 걸음씩 주님 따라 말씀 따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다 보면 어느덧 주님 만날 날이 오지 않겠는가?
내 계획, 내 의지, 내 능력으로 살아왔던 지난날들
이제는 하나씩 내려 놓고 싶다.
어떻게 주시든 내게 주신 최선의 것들인데, 그것 믿지 못하여 자꾸 내 것으로 채우려 하면, 그렇게 주님 사랑배우고 싶어도, 주님께로는 점점 더 멀어져만 갈 것인데, 여전히 그 길로 가겠는가?
나의 살 길은 오직 한 길, 주님을 바라며, 주님을 의지하며, 주님께 구하는 길 외에는 없다.
이 믿음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도록 오늘도 주님께서 나를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 드린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정말이지 사랑하지 못할 자들임에도 저들이 하는 일을 저들이 모른다 하시며 하나씩 차근 차근 설득해 가시는 주님의 모습을 묵상하며 저의 불순종과 패역함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을 믿고 내 마음에 주님 모시고 살고 있어도, 주님 뜻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여 살아온 지난 날들의 상흔들로 고통과 한숨으로 주님께 나아올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입으로는 주님 사랑한다 고백하지만, 삶으로는 주님 사랑함을 증거하지 못하며, 사랑하지도 못하는 인생이오니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은혜와 긍휼로 저의 인생을 덮으시며 저를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을 따르며, 말씀에 순종하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저를 붙잡아 주시며 인도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