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연합된 예수님, 예수님과 연합된 나
(QT본문: 요 5장 19절~29절)
2013-1-13 주일
[본문: 요 5장 19절 ~ 29절]
[관찰 해석]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 19~23
1. 예수님은 아무 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말씀하신다.
egrave; 당신과 하나님은 하나이며, 당신 안에서 하나님의 일이 실행된다 하신다.
2. 하나님은 예수님을 사랑하셔서 무엇이든 예수님을 통하여 계시하시며 행하시고, 병자를 고침으로 보여준 기적보다 더 큰 일(죽은 자의 부활)도 보여 너희를 놀라게 하실 것이다 말씀하신다.
3.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살리시는 것처럼, 당신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을 살리신다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은 살리시고, 어떤 사람은 그 본래 정죄된 대로 두시는 심판을 하시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공경하듯 예수님을 공경하도록 하기 위함이라 하시며, 예수님을 공경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도 공경하지 않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영생과 부활 24~29
1.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었고,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며,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간 것이다 말씀하신다.
2. 예수님을 복음을 듣는 자들은 영적으로 중생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3.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중보자로 세우셔서 택한 백성에게 생명을 주는 역사를 하게 하신다.
4.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심판하는 권세를 받으시고, 인간으로 오셨다.
5.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죽은 사람들의 몸이 부활하여,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영생을 얻고,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다.
egrave;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딛2:14)
[교훈 적용]
38년 동안 병상에 누워, 소망도 없이 절망 속에서 살아온 환자를 안식일에 고쳐주시는 기적을 베푸신 것을 시작으로 예수님을 핍박하는 유대인들
안식일을 누가 만드셨는데,
이들은 이렇게 안식일을 만드신 분 앞에서 야단법석을 치고 있다.
38년 동안 병상에 누워 그저 소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환자에게 진정한 쉼이요, 안식이 무엇이었을까?
유대인들은 무엇을 위해 안식일 지키는 것을 그렇게 중요시했을까?
안식일을 지키면 안식이 오기 때문에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식일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것인지?
그 본질을 모르니, 율법의 기본정신인 이웃사랑도 할 줄 모르고, 그저 판단의 잣대로 지적질을 해대며,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이루어야 할 율법의 완성을, 정죄를 적용하여 율법을 어기고 있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이 지적하는 문자적인 안식일을 범한 예수님은 그저 소망도 없이 병상에 누워 38년 동안 절망 중에 살아온 환자에게 안식을 주셨나?
무슨 말이 필요하랴?
안식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은 그를 고치셨고, 소망 없이 오랜 기간 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환자는 비로서 진정한 안식을 얻고, 절망의 포로에서 놓임 받아 참된 자유를 얻게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하나씩 보여주고 계시며, 특히 이렇게 사람의 힘으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 환자도 고치시는 분이라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을텐데, 그들은 볼 수도, 들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는 영적 무지한 자들이었다.
도리어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니, 이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영생과 부활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을 영적으로 만나지 못하면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당신이 누구신지, 하나님과는 어떤 관계를 갖고 계신지를 말씀하시니 주님의 음성을 경청할 시간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신다 말씀하신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신데, 홀로 독립적으로 사역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하시니, 예수님의 겸손과 순종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되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니, 그 안에 예수님의 생각이나 의지는 보이지 않으신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게 된 내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 분의 뜻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2:20)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하지만 말씀으로 존재하시니,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이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이라 믿는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며 사셨으니, 내 평생 살아야 할 삶의 목적 또한 내게 임하신 하나님의 뜻, 곧 말씀을 온전히 이루며 사는 것이라 믿는다.
늘 두렵고 떨림으로 내게 임하신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해 달라 주님께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최근 들어 나를 점점 낮추시는 하나님을 경험한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의지는 기도로 바뀌어 가고,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하나님보시기에는 공사 중이며, 변화되며 이루어 가야 할 것이 무궁무진 하지만, 그 태도만큼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려 하니, 겉모습에 힘이 빠져 보인다.
늘 역동적이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나였는데, 인도하심이 없이는 움직이려 하지 않는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는가 하면, 나의 유익을 위해서 하였던 이것 저것도 이제는 하나 둘 내려놓는 모습이다.
하나님께 더 매달리게 되고, 십자가 사랑 앞에 늘 눈물이 마르지를 않는다.
그 동안 하나님의 일을 핑계하며 얼마나 나를 드러내고, 잘난 척을 해 대었는지 그 죄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며, 주변엔 또 얼마나 많은 상처의 흔적들을 내고 다녔는지…
그랬어도 그런 나를 보지 못하고, 늘 앞만 보고 달려왔던 인생길이었다.
내 생각에 맞지 않으면 뒤돌아서고, 버리는 것은 예사 일이었고, 그랬어도 회개하지 않으며 얼마나 떳떳하며 당당하게 살아왔던지…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물정 모르고 제 멋대로 덤벼대고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행했었으니, 지난 세월 동안의 탕자생활하며 불순종의 모습은 마땅히 벌받았어야 하며, 하나님을 다시 찾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런 교훈을 받았는지, 그 과정 속에서의 고통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절망했던 시간들은 마땅히 받아야 할 삶의 결과였다.
하나님께로 받은 것들은 그 무엇이라도 아멘이라고 밖에는 대답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반듯이 경험하고 겪어야 할 신앙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50대 중반을 향해 걸음하고 있지만, 이 걸음에 함께 하시며, 결국 걸음의 끝에서 나를 맞아주실 주님을 바라본다.
무엇을 하며 살아왔느냐 주님 물으실 때, 꼭 대답할 말이 있는 그런 삶으로 남은 인생 걸음을 주님과 함께 걸으며, 삶을 채우며 살고 싶다.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늘 주님을 사랑하며 사랑 받는 모습으로 존재하며, 또 가정에 있어서나 이웃에 있어서나 사랑하며 사랑받는 모습으로 존재하게 되기를 기도한다.
주님께서 날마다 매 순간마다 나의 이 소망을 지켜주시며,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정체성을 돌아보게 하시며, 하나님 안에서 행하신 순종과 겸손의 본을 깊이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내게 영생을 주신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이 땅에서 천국백성의 삶을 보이려 하심임에도 그 동안 그 뜻을 이루어드리지 못하고 제 멋대로 살아온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며,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회복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내 뜻과 내 야망을 모두 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새롭게 하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뜻을 이루는 주님의 자녀로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매 순간마다 성령님이 주장하시는 인생길을 주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