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새겨주신 채무명세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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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05
2007-06-05 창세기 42:1-17 ‘가슴에 새겨주신 채무명세’
8절: 요셉은 그 형들을 아나 그들은 요셉을 알지 못하더라
사업이 부도나기 전, 어느 날 뉴스에서 일가족이 사망한 교통사고 소식을 듣는데
가장의 이름이 낯이 익어서 서류를 보니 회사의 투자자였습니다.
당시 이미 회사의 재정이 악화된 상태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넘어가던 시절이라
장례식이 언제인지도 몰랐고 유족을 찾을 겨를도 없었습니다.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애써 자위하며 넘기고
점차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 나지만
그 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한 도로가, 선친의 묘소를 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길이라서 선친을 추모하러 갈 때마다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30년 이상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한 선친의 일기장 수십권도
망해서 이사하는 와중에 분실했는데 부도난 회사의 투자자 명부쯤이야..
이렇게 뻔뻔한 마음을 가진 나에게도 더 사는 고통을 허락하시고
그 고통을 축복으로 바꾸어가게 하시고 말씀에 붙어 있게 하심은
지은 죄가 너무 크기에 빚진 자 만나는 극적인 순간이 올 때까지
이루며 살 일이 아직 남았다는 뜻이겠지요.
작은 가시 하나가 살에 박혀도 아프고,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곪기까지 합니다.
‘떼어 주고는 살아도 붙이고는 못 산다’는 속담에 딱 맞습니다.
빚진 자 그 형제들과 받을 자 요셉이 드디어 만납니다.
“내가 죄를 토설 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화하였고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다”(시 32:3,4)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그 형들이 토설치 못하고 고통 속에 살아왔을 자신들의 죄를
엉겁결에 얘기하지만 진솔한 죄의 고백은 아님을 잘 압니다.
위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얼떨결에 둘러대는 중에 튀어나온 말이지만
형제간의 묵은 채무를 정산할 실마리가 풀리는 극적인 사건입니다.
결과를 다 아니 싱겁지만 칼자루를 쥔 요셉의 오늘이 있기까지
날카로운 비수로 날을 세우던 복수의 감정을 부드럽게 하시고
자기 죄를 볼 수 있는 양심을 회복시키시려
하나님은 지리한 연단의 시간을 요셉과 그 형들에게 주셨습니다.
은혜로 받을 복과 참회로 받을 정죄를 예비 해놓으시고
영적 육적 고통을 믿음의 분량대로 처방하시며...
그 결과 그럴만한 자격을 갖춘 요셉의 사려 깊고 위엄 있는 멘트 속에
잘 짜여진 한 편의 대하소설 ‘요셉 일대기’의 해피엔드가 눈에 보입니다.
인생의 물리적인 시간표로 볼 때 마무리를 준비해야 할 시점인 요즘
빚 갚을 동생과 유족으로 남은 투자자와 이런 저런 사정으로 세상에 진 빚도 그렇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빛으로 인도해준 복음에 진 빚까지
갚기만 해야 할 인생으로 만드시어 한 눈 팔 겨를도 없게 해주시니
내 분량에 딱 맞는 맞춤 은혜를 누리고 사는 인생이 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고 태어난 복음의 빚에 이 세상 다하도록 갚아야 할
빚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지는 요즈음, 채무명세를 가슴에 새겨주심은
빚진 자 되지 말고 빛의 아들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됩니다.
세상에서는 수치로 끝날 일에서도 감사의 제목을 생각케 하시니
하나님의 사랑과 값없이 주시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