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중에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
(QT본문: 요 5장 1절~18절)
2013-1-12 토요일
[본문: 요 5장 1절 ~ 18절]
[관찰 해석]
베데스다의 표적 1~9
1.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
2. 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고, 그 둘레에 행각 다섯이 있는데, 그곳에 갖가지 병을 가진 병자들이 누워 물이 움직이는 때를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그 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데, 그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 나았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3. 그곳에 38년 동안 병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있는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을 아시고,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 물으셨다.
4. 이에 그는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못에 넣어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하소연하자,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가 곧 병이 나아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이 날은 안식일이었다.
유대인의 핍박 10~18
1.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이라 하니, 그는 나를 고쳐주신 분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신 말씀에 따라 행동한 것뿐이라 답변했다.
2. 그러자 당신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이 누구냐 물었으나, 그는 자기를 고쳐주신 분이 누구신지를 모르니, 이는 많은 사람이 있었고, 예수님은 이미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었다.
3. 그 후 예수님은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제 병이 나았으니, 더 무서운 병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말씀하셨다.
4. 그가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신을 고쳐주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하자,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하신다 하여 예수님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5.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니,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할 뿐 아니라, 자신을 하나님과 똑 같은 자리에 올려놓고 하나님을 친 아버지라 부른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다.
[교훈 적용]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오신 예수님
수많은 사람들이 그 거리를 지나 다니지만, 거리 한 쪽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버려진 곳, 베데스다 연못가 행각에 누워 앓고 있는 병자들을 예수님이 주목하셨다.
그 중 예수님의 시선은 38년 동안 불치병으로 앓아 누워있는 한 병자에게 머무셨다.
그가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누워 있었는지를 한 눈에 알아보신 예수님
그에게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물으신다.
세상에서 가지고 누리고 있었던 것 다 잃고 방황하며 절망하고 있었을 때, 주님은 나에게도 이렇게 찾아오셔서 “호용아,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말씀하셨다.
내게 소망 갖게 하시고, 잃어버린 믿음을 다시 세워주시려,
내가 구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알지 못하는 때에 나도 모르게 주님 찾아 오셔서, 먼저 내게 물으신 것이다.
이에 불치병으로 오랜 기간 동안 절망하며 고통과 신음하는 중에 있었던 환자는 주님께,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더군요 하며 하소연 하였다.
그 동안 처음에는 자신의 딱한 처지를 누군가는 가엽게 여겨주고 동정도 해 주었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을 기미는 보이지 않고,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는 멀어져 갔고,
이제는 아무도 자신의 딱한 사정에 대해 묻는 사람도 없었고,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으니,
이런 절망 중에 있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말을 걸어준 사람에게 그 마음의 한을 털어 놓는다.
얼마나 야속하고 미웠을까?
누구 하나 관심 가져주는 이 없는데…
오랫동안 그것도 38년이나 그런 세월을 겪다 보니, 그 마음에 소망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었고, 이제는 원망과 한숨 소리만이 가득한 인생이 되어, 그 한을 관심을 가져준 사람에게 쏟아내는 것이다.
왜 그 절망 중에 주님을 찾지 않았는지?
대신 그는 그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신념처럼, 물이 움직일 때를 기다려 제일 먼저 연못에 “풍덩”하고 몸을 던지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하며 누워있었지만,
몸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연못에 들어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는 지금 나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 그래도 이것마저 놓으면 살 수가 없으니, 이거라도 붙잡고 살고 있는 모습에서 나의 옛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제 절망 중에 있는 그의 잘못된 믿음을 일깨워주시며, 그가 올바른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연못만이 구세주라고 생각하며 그 곁에 누워 무슨 기적 외에는 바랄 것이 없어 그래도 그것만 바라며 병 낫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우연한 기적이 아니라, 예정된 기적, 구원의 기적이 그에게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그 곳에 있는 수많은 병자 중에 자기 하나만 그렇게 병이 나았으니, 그의 지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못하다며 유대인들이 지적하였으나, 그는 당당하게 나를 고쳐주신 분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해서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한 것 뿐이라 이야기를 한다.
비록 안식일에 그렇게 짐을 지고 가는 것이 율법을 어기는 것이긴 하지만, 그 마음에 자신을 고쳐주신 분에 대한 믿음과 그 분의 권위에 대한 인정이 더 컸기에 그는 당당할 수 있었다.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 뵌 그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병을 낫게 해 주신 분이 예수님이라 하며, 다른 사람들도 예수님께 존경을 표할 수 있도록 그 분께 마땅한 영광을 돌려드리기를 원했다.
이처럼 그는 병 낫게 해 주신 분에 대한 감사와 존경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갖기를 원했고, 자신의 병을 고쳐준 그 분께 영광을 돌리려 하였으며, 이제 세상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나갈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제 회복의 전환점에 서 있는 그에게
예수님은,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라 말씀하신다.
그러니까, 38년 동안이나 그렇게 절망 중에 있었으면서도 구원자를 찾지 않은 죄, 내 생각의 한계로 기도하지 않고 구하지 않은 죄를 다시는 짓지 말라 하신다.
네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 이상의 기대를 하지 못하는 불신앙 또한 다시는 범하지 말라 하신다.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신 주님
나도 모르게 그 주님의 강권하심에 끌려 믿음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으니, 주님은 내게 소망 주시며, 내 믿음 세워주시려 함이라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렇게 어느 날 갑자기 내게 찾아오신 주님은 또 세상의 잃어버린 영혼에게 찾아오셔서 그에게 소망 주시며 믿음을 세워주신다.
내 생각과 내 믿음의 한계 안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내게, 그리고 온 세상에 일어나고 있다.
소망 주시고 믿음 세워 주시기 위하여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다시는 그렇게 불신앙으로 죄짓지 말고 살라 명령하시니, 말씀 붙잡고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 외에 무슨 다른 도리가 있겠는가?
때때로 부딪치는 삶의 문제들
그리고 죽을 때까지 겪게 될 크고 작은 고통과 아픔들
하지만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랴?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고 계시는 주님이 계신데
정작 두려워해야 할 일은 내 생각의 한계 속에 주님을 가둬두고,
소망도 없이 불신앙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뿐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신 주님께 구하자.
그 주님이 나의 갈 길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를 사랑하여 당신의 목숨까지 내어 주신 끝까지 책임지는 그 주님을 의뢰하기에 기도하며 믿음의 한 걸음을 내 딛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 드린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베데스다 연못가 행각에 누워있는 38년 된 불치병자에게 찾아오셔서 그를 고치시고 회복시키신 주님을 깊이 묵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 동안 세상을 원망하고 남을 탓하며 그릇된 믿음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예수님을 만나 고침 받자, 자신을 회복시켜주신 그 예수님께 영광 돌리고자 수고하는 삶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구체적인 행함이 부족한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말씀하시니, 제 생각과 제 부족한 믿음의 한계 속에 주님을 가두어 두지 않는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주님 날마다 매 순간 마다 제 마음을 붙잡아 주시며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날마다 그 크신 주님의 은혜를 한없이 경험하는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함께하시며 인도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