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물동이, 담겨진 생명수
(QT본문: 요 4장 27절~42절)
2013-1-10 목요일
[본문: 요 4장 27절 ~ 42절]
[관찰 해석]
삶의 목적의 변화 27~30
1. 제자들이 돌아와 여인과 이야기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이상히 여겼으나, 여인에게 무엇을 청하셨는지 또 왜 그 여인과 말씀하시는지를 아무도 묻지 않았다.
2.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내 과거의 일을 다 말해 준 사람이 있는데, 다들 와서 보라 하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다.
3. 이에 사람들이 마을에서 나와 예수님께로 왔다.
예수님의 양식 31~38
1. 그 사이 제자들이 예수님께 음식 드시기를 청하자, 제자들이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의아해하며 누가 예수님께 드실 것을 갖다 드렸을까를 생각하자, 예수님께서는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말씀하셨다.
2. 이어 예수님은 추수를 비유하여, 사람들이 곡식의 추수 때는 손꼽아 기다리면서, 이미 익어 추수할 때가 된 영적 곡식에는 관심이 없음을 지적하시며, 추수하는 사람은 추수한 대가로 이미 품삯을 받고 영생을 위한 곡식을 추수하는 중이어서 씨를 뿌린 사람은 추수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3. 또 한 사람이 씨를 뿌리고 다른 사람이 추수한다는 말이 진리라 하시며, 다른 사람들이 해 놓은 수고의 결실을 거두기 위해 제자들을 보냈다고 말씀하셨다.
사마리아의 부흥 39~42
1. 마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여자가 예수님께서 자기 과거의 일을 다 말씀해주셨다고 증거한 이유로 예수님을 믿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들과 함께 지내다 가시기를 청하므로, 예수님은 그곳에서 이틀을 머무시며 말씀을 전파하시어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믿게 하셨다. 마을 사람들은 여인에게, 이제 그들이 믿는 것은 여인의 말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을 말씀을 직접 듣고 이 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시구나 하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 말하였다.
[교훈 적용]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여인의 삶의 목적이 변화되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도 남자와 살고 있지만 그도 남편이 아닙니다. 하며, 지금껏 내놓고 싶지 않았던 과거와 현재의 수치스러운 삶을 예수님께 내어 놓자,
여인이 놓임을 받았다.
죄의 지적을 고백으로 회개로 받으니 치유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한도 많고, 수치도 많은 여인에게 예수님이 좀더 부드러운 방법으로 대하시지 않으시고, 아픔이요, 상처요, 고통의 문제를 바로 지적하시며 양심을 찌르게 하신 이유가 바로 구원을 위함이요, 회복을 위함이셨음을 깨닫게 하신다.
이제 변화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간다.
물동이는 그녀를 지금 이 자리에 있게 한 목적이었다.
물을 긷기 위해 왔으니, 물동이는 당연히 그녀에게 있어 육의 양식을 위하여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여인은 물을 긷지도 않았고, 게다가 물동이까지 버려둔다.
그리고 마을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다.
물동이를 잊어버리고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버려두고 가고 있는 것이다.
삶의 목적이 변화된 것이다.
삶의 목적이 변화되니, 그 동안 그렇게 숨어 다녔던 사람들 앞에, 이제는 당당하게 나선다.
죄의 문제가 치유되고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니, 구원의 감격이 넘쳐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물 한동이 긷는 것 정도는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삶의 목적이 될 수 없었고,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최근 진행되고 있는 여러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믿지 않는 거래처 사장님과 통화도 하고 만나 이야기도 하면서, 내가 사장님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니 일이 잘 해결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하니, 처음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고 했던 분이었는데, 이제는 자신의 열심과 노력으로도 되지 않는 한계를 계속 접하다 보니, 잠잠히 듣고는 마음에 새겨 듣는 모습을 본다.
나는 내가 얻고 누리는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그 분에게 전하여 함께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할 수 있어 좋고, 그 분은 자신의 삶의 한계와 고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신을 자신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을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어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어 좋으니, 이렇게 주님은 나 너 할 거 없이 모든 이들에게 좋은 분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좋으신 주님이시니, 문제를 안고 있는 또 세상에서 헛된 것을 쫓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없이 좋은 선물이 될 수 밖에 없는 주님을 전하는 것은 나에게나 그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일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주님께서 날마다 내 속에 구원의 감격을 넘치게 해 주셔서, 세상의 헛된 가치를 쫓으며 살았던 과거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천국의 소중한 가치를 쫓으며 사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기쁨으로 복음 들고 세상을 향하는 전도자의 삶이 되게 해 달라 주님께 간절히 기도 드린다.
여인의 증거로 많은 마을 사람들이 초청되어 예수님께로 나왔다.
그리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다.
구원의 감격에 가득 찬 여인의 증거로 시작된 호기심과 궁금증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맞구나! 이 분이 바로 선지자들이 오실 것이라 말씀하신 분이구나 하는 확신으로 변화되었고, 이제는 여인의 증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구주라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여인에게 말을 한다.
예수님께로의 초청은 이렇게 전도로 시작되지만, 말씀이 개인적인 확신으로 받아들여졌을 때 비로서 개인적인 믿음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신다.
믿음의 성장도 같은 원리임을 깨닫는다.
말씀을 통한 내적인 확신이 없이 믿음이 자랄 수 없음을 경험한다.
순교하는 자리까지 나아갔던 믿음의 선조들이 하루 아침에 그 자리까지 나아간 것이 아님을 믿는다.
하루 하루 주님 따라 말씀 따라 살다 보니, 어느덧 주님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어떤 환경에서도 사랑하는 그 주님을 배반할 수 없는 자리까지 나아갔으니, 그들은 순교하는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고 믿는다.
세상이 보기에는 하찮고 죄 많은 여인이었지만, 예수님 만난 여인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 여인이 아니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자신의 과거의 수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연결하는 다리가 되었고,
그 안에 심겨진 구원의 확신은 삶의 목적을 헛된 육적인 것을 쫓던 삶에서 영원한 영적인 것을 쫓는 삶으로 변화시켰다.
한 여인의 변화로 마을에 영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인의 수치의 간증을 통해 예수님께로 나아올 수 있었고, 이제 그들 또한 예수님의 말씀으로 여인이 경험한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하신 약속이 가정에서 더 큰 하나님의 가정으로 이루어가심을 보여 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당신의 양식이라 하셨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삶의 목적이시며,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동일한 사명을 주셨다.
이제 주님은 내게도 말씀하신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5)
육의 것은 그 열매를 얻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며, 수고하고,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이미 익어 거둘 때가 다 된 영적 열매, 하늘에 속한 일을 위해서는 그렇게도 관심이 없느냐 하시며, 내 눈을 세상에서 영혼으로, 영원의 세계로 옮겨주신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까” (요6:28)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요6:29) 하셨으니,
예수님을 믿는 일에 더욱 힘쓰며, 내 안에 거하게 하신 성령님과 더불어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일에 쓰임 받게 되기를 기도 드린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만나 삶의 목적이 변화된 사마리아 여인의 삶을 통하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위해서는 그렇게 철저히 준비하고 수고하며 그 결실을 손꼽아 기다리면서도, 정작 주님의 일을 위해서는 그만한 열심과 헌신을 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삶의 목적이었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새 생명으로 채워진 여인의 삶처럼, 내 안에 있는 삶의 물동이를 새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어, 육의 가치가 아닌, 영의 가치, 영원의 가치를 쫓는 삶의 될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