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4:1
울 주님께서 에발산과 그리심 산 사이
한 작은 마을로 가신 것은 바리새인들과의
충돌을 피하시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필시, 유대인들이 경계할 만큼
제자를 삼고 세례 주는 일이 많아 졌나 봅니다.
제가 십 년 넘게 평신도 사역을 해오면서
가장 절 힘들게 했던 사람은
목사나 장로님이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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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교회에선 찬양사역자와
전도 왕들에게는 지도자들의 대우가 호의적입니다.
그런데 평신도가 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에 대해서는
왜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씀을 강조하고 셀을 권장하는 교회도 그렇고
심지어는 평신도 목회를 지향한다고 하는 교회도
실상 가보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해보니
소그룹 성경공부는 좋은 제자를 만드는
키워드이기 때문에 그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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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주님께서 제자삼고 세례 주는 일을 위해
제자들과 함께 열심히 사역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당장에 교회 지도자들이 난리가 아닙니까,
제가 돌이켜 보건데 청년들이랑 성경 공부할 때
가급적 기성교회를 비판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룹 원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당회와의 갈등이 많아졌고
결국 청년부 폐쇄, 성경묵상 금지까지 가는 것입니다.
뭐 지금이 종교개혁 시절도 아니고
제가 목사님 인신공격을 한 것도 아닌 데도 말입니다.
세월이 지나 지금은 그 당시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진짜 복음이 선포되면
갈등 국면이 반드시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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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도 울 주님은 사마리아를 건너뛰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갈등을 피해가셨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모든 사회통념과 장애물을 정면 통과 하시는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공공장소에서
남녀가 대화할 수 없었던 사회였습니다.
심지어 랍비들은 남녀가 대화를 지속할 때 마다
자기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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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더구나 사마리아는 종교적으로
지역감정의 골이 깊은 곳 이었습니다.
성전재건에 참여케 해 달라는 사마리아인들의 요구를
유대인들이 거절하자 자기들만의 라이벌 성전을
만들어 놓은 곳이 바로 사마리아 아닙니까,
"어찌하여 내게 물을 달라 하시나이까"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주님만이 진정한 해갈을 주시는 분임을 배웁니다.
수가 성 여인의 갈증을 채워 주셨듯이
제 갈증도 해갈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주님만이 야곱을 대치할 뿐 아니라
능가하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제가 수가 성 여인에게 대면할 때 지혜를 주시고,
넘치는 생수를 공급해 주옵소서.
2013.1.8.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