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참 만족, 중매쟁이의 삶
(QT본문: 요 3장 22절~36절)
2013-1-7 월요일
[본문: 요 3장 22절 ~ 36절]
[관찰 해석]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 22~30
1.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대지방에 가셔서, 머무시며 세례를 주셨고, 요한도 물이 많은 살렘 부근의 애논에서 세례를 주었다.
2. 요한의 제자들과 유대인 사이에 결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자,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에게 와서 요한이 계속 말씀하시던 분 즉 예수님이 세례를 주니 사람들이 그분에게 가고 있다고 말하였다.
3. 이에 요한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하며,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께 그 근거를 두고 있다고 가르친다. 이어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 분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 하며 제자들이 자기 말을 믿지 않는 것을 타이르고 있다.
4.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 신랑이지만, 신랑 곁에서 혼인예식을 돕고 있는 신랑의 친구는 제 역할을 다 하였기에 서서 기뻐하니, 자신도 선구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였으며, 또 바라던 메시야를 친히 목격하고 증거하였으니 기쁨이 넘친다고 하였다. 이어 예수님은 점점 더 번영해야 하며, 자신은 점점 더 쇠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31~36
1. 위로부터 오시는 분,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신 그리스도는 만물 위에 계시고, 그 분이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시며,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성령을 한 없이 주시니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사랑하셔서 모든 만물을 다 그 분의 손에 맡기셨다.
2. 예수님의 증거를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이 참되신 분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을 소유하게 되지만, 그 분을 믿지 않고 거절하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형벌을 받게 된다.
[교훈 적용]
어느 날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유대인과 더불어 논쟁을 하게 되었다.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중 어느 것이 더 확실하냐? 또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중 어느 세례가 더 의미가 있고, 효력이 있느냐? 하며 그들은 서로 티격태격 하였다.
논쟁의 결론을 내지 못한 제자들이 스승인 세례 요한에게 와서 묻는다.
그런데 그 묻는 대상인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말투가 공손하지가 못하다.
스승인 요한이 계속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했어도, 그들은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라 하며 스승의 증거에 대해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지 못했고, 뭔가 예수님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쌓여 있는 듯 보인다.
제자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으니, 한 수 아래로 보고, 스승보다 못해야 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는데,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까 예수님께 몰려가는 것이 소위 눈꼴이 사나웠던가 보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야로서가 아니라, 자기 스승의 경쟁자로 생각을 하였고, 사람들이 자기 스승보다 예수님께로 더 많이 가는 것을 보자, 시기가 나는 것이다. 가뜩이나 유대인과 논쟁을 하여 자기 스승과 예수님 중 누구 세례가 근거가 있으며, 의미와 효력이 있는가에 대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 마음에 예수님에 대한 불평은 더 커졌고, 비난조로 예수님을 깍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모양새가 구원 얻지 못한, 아니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니, 어쩔 수 없는 너 나 할 것 없는 추악한 인간의 모습, 내 모습임을 본다.
성경도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갈5:19~21) 증거하고 있으니, 내 힘으로는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다.
말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하나도 빠짐없이 다 나타나는 것이 육체의 일, 더럽고 추악한 모습 뿐이니, 내 자신은 물론 어떤 인생에 의존할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오직 말씀, 말씀 안에 머무르며, 그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성령님께서 힘주시며 인도하여 주실 것을 기도 드린다.
제자들의 불만 가득한 불평 섞인 질문에, 세례 요한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요, 주의 길을 곧게 하는 자로서, 자신의 신분에 걸맞는 증거, 자신의 정체성과 예수님의 하나님이심과 그 분의 사역이 흥왕해야 함과 자신의 사역은 이제 서서히 마무리 해야 함을 제자들에게 이야기 해 준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상황에서, 요한은 확신을 가진 추종자를 지켜가기 위해 자신의 정체를 속이지 않았다.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인 요한의 가르침보다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 생각으로 요한을 바라보았으니, 그들의 눈에 보여진 예수님의 모습은 시기와 비난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니 오랜 세월 동안 존경하는 스승을 따라 다녔어도, 내 것으로 가득하여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자신의 아성을 계속 쌓아간다면 세례 요한의 제자들처럼, 변화의 모습은 찾아보기도 기대할 수도 없음을 깨닫는다.
말씀으로, 내 생각을 성경적 생각으로, 내 가치관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내 언어를 성경적 언어로, 내 행동을 성경적 행동으로, 그밖에 나의 모든 부분을 성경적으로 변화시켜가는 것이 믿음의 길, 성화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 그리고 보여주는 삶 외에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은 없다.
그럴듯한 말 아무리 해 봐도 그저 소리일 뿐이다.
마음을 담지 않은 언어, 상대를 고려하는 행동이 뒷받침 되지 않은 언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상대를 깊이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입으로만 소리로 떠들어대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허공만 때리는 울리는 메아리와 같은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 자신을 돌아본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가운데 소금으로 고루게 함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4:6) 말씀하시니, 험담이나 비난조의 말을 피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상대를 위하며 은혜가운데 소금으로 고르게 함 같이 말 할 수 있도록, 오늘도 성령님께 내 마음을 맡겨드리게 되기를 기도 드린다.
제자들의 부족한 모습에도 세례 요한은 이제 사역의 종착역을 향해 가는 마지막까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 그 인생의 만족이 어디에 있어야 함을 깨닫게 해 준다.
신랑 곁에 있는 신랑 친구의 기쁨은 들러리로서, 중매쟁이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함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기대하던 혼인예식의 주인공인 신랑을 보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신부를 신랑에게 중매하고, 신부를 무사히 신랑에게 인도하며, 결혼식 에서는 신랑의 들러리로서의 역할까지 다 하게 되면 이제 신랑친구의 역할은 끝나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결혼잔치에 그 중매쟁이의 역할을 감당하였고,
바울도 정결한 처녀인 성도를 남편이신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중매쟁이의 역할을 감당하였고,
나오미도 룻을 보아스에게 인도하는 중매쟁이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결국 인생의 만족과 기쁨의 충만함은 중매쟁이의 역할을 완수했을 때 경험하는 것임을 깨닫게 하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게 될 수 많은 사건들
이 사건들 속에서 결국 만족과 기쁨의 충만함을 경험하는 삶은 중매쟁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 결정해야 함을 깨닫게 하신다.
목사님을 통하여 옳고 그름의 관점이 아닌 구속사적 관점, 예수 씨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함을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으니, 무슨 다른 이유가 없다. 그저 내 믿음이 부족하여 행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할 뿐이다.
성령님께서 오늘도 나를 주장하여 주셔서, 중매쟁이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주님!
오늘 세례 요한의 사역이 마무리 되어가는 것을 묵상해 보면서,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사역자로서 어떠한 삶을 사는 것이 기쁨이 충만하며 만족한 삶인지를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옳고 그름의 관점으로 세상을 판단하며 인생을 판단하며 살아왔지만, 이제야 수많은 사건들 속에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그 이면에 있음을 바라봅니다.
여전히 충분히 납득이 가지 않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문제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 구속사적 관점으로 믿음의 적용을 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연약한 인생이오니, 말씀의 터 위에 요동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으로 세워 주옵소서. 붙잡아 주시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