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작성자명 [크리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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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6.02
창 40 장
요셉은
시위대장 집에서 일하다가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에 갇힙니다.
하지만,
보디발은
요셉을 종들이 가는 감옥이 아닌,
그 집 안에 있는
정치 고관들이 있는 특수 감옥 으로 보냅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바로 왕의 술관원, 떡 굽는 관원을 섬기라고
감옥에서도 일을 맡깁니다.
보디발이
요셉을 신뢰하지 못했다면
그런 일, 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술관원, 떡관원을 섬기는 일에 충성하니
또 사건이 벌어집니다.
그 들이 동시에 꿈을 꾸고
그 후, 그 들은 안절부절 수심에 가득차 있습니다.
심상한 꿈인데
해몽할 길이 없으니
수심 가득하여 근심합니다.
요셉은
종의 신분으로
감옥에 갖혀 있는 신세이지만,
높은 직위에 있는 분들을
섬기는 입장에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이웃을 향해 관심을 가집니다.
자신에게 너무 집중하면
이웃을 향해 관심같기 어렵습니다.
내 몸이 너무 아프면
이웃의 아픔이 보이지 않고,
남을 돌 보기 어렵습니다.
내가
파산 지경이 되거나,
우울하거나,
마음이 심숭생숭 복잡하면,
오히려
이웃의 시선을 피하여
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전혀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뭐, 그런 일로 근심하느냐?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느냐?고
담대하게 말합니다.
고위직 관원들은
이방인이라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아니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주저함없이
하나님의 이름 을 들먹이며
자기에게 말하라 합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지..
고위 관원들이
요셉을 천시하는 하나의 종으로 대우했다면
아무리 걱정스러워도
니 까짓게 뭘 알어? 하고
핀잔 주고 말았을 것이지만,
그 들은
요셉에게 꿈 얘기를 함으로
꿈의 해몽도 받고,
요셉은
얼마나 꿈의 해몽에 자신이 있었는지
오히려 그들에게 부탁도 하고,
드디어 3일 후,
그대로 이루어져
해몽대로 되어짐을 봅니다.
억울하게
요셉이 감옥을 간 것도,
보디발이 요셉에게
왕의 관원들을 섬기라 일을 맡김도,
거기서
바로의 고위직 관원들을 만남도,
그들이 꿈을 꾸는 것도,
이 모두가
하나님의 구속사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는
하나의 사건 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 구속사를 이루어가는 중에
쓰임받는 도구입니다.
술관원이
해몽받은 후,
바로왕을 섬기는 일에 복귀되자
요셉이 한 부탁을 잃어버렸는데,
그 것은 마치
화장실 들어갈 때의 마음과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등따시고 배부르면,
금새, 하나님을 등지고 돌아서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들은 자주 잊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고
그 분의 구속사는 이어집니다.
우리의 감옥, 아픔, 슬픔,
숨 쉬는 것 조차도,
불행한 이웃에게
따스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도,
외로운 이웃에게 전화 한통 하는 것도,
편지 한 통 건네는 것도,
큐티 나눔 나누어
지체들에게 약재가 되는 것,
이 모두와
존재 자체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루어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입니다.
그 분의 영광을 위해
조금이라도 쓰임받을 수 있음에
감격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