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난 사람
(QT본문: 요 3장 1절~21절)
2013-1-6 주일
[본문: 요 3장 1절 ~ 21절]
[관찰 해석]
거듭남의 교훈 1~8
1. 유대인의 관원인 바리새파 사람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예수님을 랍비라 하며, 자신을 포함한 표적을 보고 믿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다 하며,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으면 행하시는 기적을 아무도 행할 수 없다 말하였다.
2. 이에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참예할 수 없다 말씀하시니,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으며, 다시 어머니의 배 속에 들어갔다 태어난다는 말씀인가를 되묻자,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말씀하셨다.
3. 육체에서 난 것은 육체이고,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하시며,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당혹해 하지 말라 말씀하신다. 바람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어디서 생겨나 어디로 향하는지 알지 못하니, 거듭난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과 효능이 이와 같다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자기증거 9~15
1.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를 니고데모가 묻자, 예수님은 그의 영적 무지를 지적하시고, 이어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알고 있는 것을 말하고 눈으로 본 것을 증언하는데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음을 지적하신다.
egrave;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 참 진리와 거짓을 가리고 판별해 내는 일을 맡고 있었던 직분에 있었음에도, 혈통상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자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던 니고데모였기에 거듭남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은 지극히 생소했다.
2. 이어 자연현상인 바람부는 현상을 예로 들어 땅의 일을 설명해 주어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영적 실재인 하늘 일을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시며, 하늘 일을 말할 수 있는 분은 인자 자신 뿐이라고 예수님 자신을 증거하신다.
3.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가운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을 때 모세가 장대 위에 메달아 놓은 놋뱀을 쳐다 본 사람이 살아날 수 있게 되었던 것처럼,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어 영생을 누리게 될 것이라 말씀하신다.
믿음으로 얻는 영생 16~21
1.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보내주시는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이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예수님을 보내심이 심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라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는 심판과 정죄를 받는데, 그 근거는 예수님이 빛으로 오셨으나, 빛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빛보다는 어두움 즉 하나님과의 단절된 삶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라 하신다.
2. 악을 행하는 자는 자기 죄를 감출 뿐만 아니라 이미 지은 죄에 대해서 회개조차 하지 않으려 하므로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나오지 않으나, 참된 기독교적인 신앙과 삶을 실천하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빛으로 나온다 하신다.
[교훈 적용]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믿은 사람 중에 니고데모도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의 올바른 종교생활과 정상적인 승진의 절차를 통해 산헤드린 공회의 고위직까지 오른 그였지만, 그의 머리 속에는 온통 예수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신이 그 동안 알고 있었던 신앙관과는 무엇인가 다른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알 길은 없고, 결국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는 밤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찾아왔다.
세상에서의 기득권은 잃고 싶지 않았지만,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영적인 갈망을 억누를 수는 없었기에, 이런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유대 사회에서 랍비가 되려면, 수년 동안의 정규적인 연구과정을 마쳐야 하고, 또 율법학자가 되려면 40세는 되어야 하는데, 유대 사회의 상류계층에 있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랍비라 한 것을 보면, 예수님이 그에게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보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니고데모는 표적이야기를 꺼낸다.
표적을 보고 믿은 사람들, 그러나 구원을 얻지는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분으로 알고 있으며, 그 근거로 행하신 기적이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만 가능함을 부연한다.
지적인 동의 수준의 믿음이다.
내적인 열망은 있지만, 아직 복음의 수준으로 받아들이지를 못했고, 마음으로 깨닫지도 못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또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자연히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고정관념이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의 모든 것이었는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다 예수님 말씀하시니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거듭남을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 나와야 하는가로 묻고 있으니, 지금껏 그가 한 성경연구는 헛 공부였다.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를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하셨으니, 하나님 나라의 일이 이렇게 영의 눈이 없이는 보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것임을 알게 하신다.
아무리 좋은 스팩 다 갖추었어도, 영안을 갖추지 못하면 아무 것도 갖춘 것이 아니니, 이 땅에 살면서 무엇을 추구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신다.
이스라엘에서는 그래도 갖출 것 다 갖춘 니고데모였는데, 그럼에도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청년 예수를 찾아온 것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다 이렇게 스팩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이 있기에 무언가를 찾지만, 예수님을 만나야 그 방황이 끝나는데, 나 또한 그 확신이 없어 이리 저리 방황하였으니, 예수님을 만난 지금 비로소 만족함을 얻는다.
처음부터 예수님의 사랑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의 계획도 모른다.
성령의 역사하심에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느냐 할 것이다.
이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사건을 만나 깨어지고 부서지고 고통받고 힘든 세월을 지나가면서 하나씩 깨닫게 하시니, 인생이 평생 동안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러니 되었다 함도 이루었다 함도 없으니, 계속 이루어가는 것이라 고백하며, 말씀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을 인생으로 여기며, 언제나 겸손하게 나를 낮추며 나를 버리고 살아가야 함을 깨닫는다.
신앙의 성숙은 낮아짐에 있음을 조금씩 깨닫게 하신다.
뭐 알아야 얼마나 알 것이며, 잘 나 봐야 얼마나 잘 잘났겠는가?
세상은 있는 것, 눈에 보이는 것 자랑하며 위세부리며 살아가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하겠는가?
훅 하고 가져가 버리시면 그것으로 끝나는데…
나는 교만하고 고집도 세고 말도 잘 안 들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다루셔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언제 그 더럽고 추악한 모습이 드러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닦아도 닦아내도 없어지지 않는 이 찌든 악한 때를 주님께서 벗기시고, 깨끗케 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 드린다.
넘어지고 깨어지고서라도 이 길을 걸어갈 수 있다면, 그래서 그 길 끝에 영생을 누릴 문을 열고 갈 수만 있다면, 가야 하는 길이 믿음의 길이기에 나는 오늘도 이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주님께서 힘주시고 붙잡아 주실 것을 간절히, 간절히 기도 드린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사랑은 내가 누구를 그렇게 사랑해 본 적도, 사랑해 볼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정말이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지극하신 사랑임을 깨닫는다.
다른 그 무엇과 비교할 수가 있겠는가?
지금껏 내가 해 본 최고의 헌신, 최대의 사랑, 최선의 행동들만 생각해 봐도 이들과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은 너무도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그냥 가슴이 먹먹하다.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하지만 이기적인 사랑으로 가득한 내 인생
조금만 손해 보면 걷어차 버리고, 조금만 부족하면 거들떠도 안보는 이런 사랑으로 무슨 사랑을 운운할 자격이 있겠는가?
그 주님을 더욱 사랑하고 싶다.
내 마음에 그런 한 없는 사랑을 주님께서 가득 가득 채워주시기를 소망한다.
성령으로 난 사람이 이와 같다 하신다.
나는 사랑할 수 없는데, 나로 사랑하도록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그렇게 하게 한다 하신다.
내 육신의 소욕을 다 제어하시고, 사랑의 열매로 가득하게 하셔서, 사랑의 일을 하게 하시니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 하신다.
니고데모의 갈급함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지켜야 할 율법의 겉모습은 다 지키고 있는데, 그런데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그 무엇.
언제나 그 무엇이 해결이 되지 않아 이렇게 저렇게 기도도 하고, 선행도 하며, 연구도 하고, 토론도 해 보지만, 그래도 해결이 되지를 않으니 계속 그 갈급함은 쌓여만 가고…
그래도 이 마음이 있으니 니고데모는 가능성이 있다.
처음부터 이런 마음은 다 뒤로하고, 오히려 죄악을 자랑하며 그 안에 살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데, 빛으로 나아왔으니 결국 구원을 얻지 않겠는가?
위험을 무릅쓰고 영적 갈급함을 해소 하기 위해 예수님께 나오기는 했지만, 복음을 이해하지 못해 예수님께 면박까지 당한 니고데모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마음에 심겨진 주님의 복음의 메시지는 그의 삶을 변화시켰고,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비방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을 변호하는 자로(요7:51), 예수님께서 돌아가시자 예수님을 왕되신 분으로 장례를 준비하는(요19:39) 구원받은 자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세상을 이기는 이김이 바로 여기, 성령으로 난 자로서의 삶을 삶에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에 무슨 세상의 두려움이 있겠는가?
내가 가진 것, 내가 누리는 것, 내가 얻을 수 있는 것도 모두 다 이 안에서 버릴 수 있으니, 성령으로 난 자로의 삶이다.
주님께서 내게 이런 성령으로 난 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도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 드린다.
주님!
오늘 니고데모를 통하여 성령으로 난 자로서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처음엔 세상에서 누릴 것에 대한 버려짐이 두려워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적 수준의 믿음을 고백하였지만, 말씀을 통한 복음의 메시지가 그 마음에 심겨져, 결국 예수님을 옹호하는 자로, 예수님을 왕으로 장례하는 자로 세워지는 모습을 보며, 성령으로 난 자의 삶을 보게 하십니다.
진정한 믿음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며 그 분께 내 인생을 맡기는 것인데, 여전히 맡기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는 이기적인 자아가 있음을 고백하오니,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어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며 바라보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