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얻는 믿음 vs 구원얻지 못하는 믿음
(QT본문: 요 2장 13절~25절)
2013-1-5 토요일
[본문: 요 2장 13절 ~ 25절]
[관찰 해석]
성전 청결 사건 13~25
1. 유월절을 지키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장사꾼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시고, 의분하여 이들을 쫓으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말씀하셨다.
2. 이에 유대인들이 나서서 예수님께, “당신이 무슨 권리로 이렇게 하는 것이오? 권리를 가졌다면 이를 입증할 만한 무슨 증거를 보이시오”라 대답했다.
3.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말씀하셨다.
4.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 성전을 짓는데 46년이 걸렸는데, 당신이 3일 동안 세우겠다는 말이냐”며 따졌다.
5. 한편 제자들은 예수님의 의분하심을 통해 성경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였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6. 유월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계시면서 행하신 기적을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을 그들에게 맡기지 않으셨으니, 누구의 설명을 들을 필요도 없이 모든 사람을 알고 그 속에 있는 사람의 속 뜻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교훈 적용]
다른 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 성전으로 들어가셨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소파는 사람,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에, 환전해 주는 사람까지 성전 바닥에 즐비하게 앉아있지 않는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리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자리요, 은혜받고 감사드리고, 치유되고 회복되며, 결단과 헌신으로 나아가야 하는 자리가
강도의 굴혈이 되어 장사치들이 득실거려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으니,
이를 보신 예수님, 참으실 수가 없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소와 양을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환전상의 돈을 쏟으시며, 비둘기 파는 사람에게는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하시며 성전을 정리하신다.
의분 중에서도 예수님은 장사치들의 소유물을 존중하셔서 함부로 대하지 않으시고 질서있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여 주신다.
성전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의분 중에 계신 예수님의 행동을 저지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 유대인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어 이렇게 질문한다.
“당신이 뭔데 무슨 권리로 이렇게 하느냐?”
자기들은 필요한 행정절차 다 밟아서 이렇게 성전 안에서 유월절을 지키려는 순례자들에게 필요한 제물도 팔고 돈도 바꿔주는 일을 정당하게 하고 있는데, 도대체 이게 뭐냐며 그 근거를 대라는 것이다.
성전도 있고, 제사와 제물도 있고, 제사를 드리는 자와 제사장도 있고, 종교지도자들도 있었지만, 각각 사명도 있고 소명을 받았음에도 이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으니, 썩어빠진 신앙의 모습이다.
이어, 권리가 있다면 그 증거를 대 보라 따진다.
성전 되신 예수님이 그들 앞에 있어도, 성전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이 자신들 앞에 서 있어도 그 분을 보지 못하니, 이스라엘 모두가 영적 부패와 타락이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표적이 없으면 당신의 권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영적 눈먼 장님인데 이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으랴?
예수님은 비유로 말씀하신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천국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13:13)
영적 무지렁이가 되다 보니, 문자적으로 해석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유대인들
아니, 무에라고?
이 성전 짓는데 걸린 시간이 46년인데, 도대체 말이라고 하는 것이오? 라며 비아냥거린다.
한편 제자들은 예수님의 의분하심과 유대인들과 나눈 말씀들을 다 보았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 때 당장 예수님의 행동,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는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가르침을 받고 연구하며 묵상하는 중에 그들은 성령님의 깨닫게 하심을 통해, 예수님의 행동이 이렇게 성경의 말씀을 이루셨구나, 또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이런 일을 염두에 두고 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믿음은 자라갔다.
그런 것 같다.
나중에 보면, 주신 환경과 주어진 사건이 내 삶의 합당한 결론인 것을 깨닫지만,
당장 닥쳤을 때는 왜 이런 일에, 왜 이런 사건과 환경이 나에게 일어나는 줄을 모르고 답답해 하며 탓을 하며 살아온 지난 날을 돌이켜 본다.
묻자와 가로되 하며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듣고 행하고, 주님을 의지하고 동행하며 인도함을 받으며 가야 하는 인생길을 내 마음대로 가게 되면, 반듯이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다.
뼈져린 아픔과 고통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
인생 길을 쉽게 생각하며 제 마음대로 살다가는 엄청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공의의 하나님이시니, 누구를 예외로 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이시니 구원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베풀어 주신다.
이제라도 그 고통의 세월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 만났으니 그래도 난 축복받은 사람이다.
다시 받은 이 복을 소중하게 여기며, 다시는 그 무엇에도 빼앗기지 않도록 믿음으로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오늘 하루도 나를 붙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 드린다.
한편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다.
하지만 이 믿음이 구원받는 믿음이라 단정할 수 없으니, 예수님께서 사람을 아시고, 그 마음에 있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당신의 몸을 의탁하지 않으셨다 하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말씀과 비교하며, 성경에 기록된 이 말씀이 바로 이렇게 성취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며 주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자라갔지만,
지금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표적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믿은 것이지, 복음에 뿌리를 두고 예수님을 믿은 것이 아니다.
기적이 하나님을 깊이 있게 믿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 되시며, 그 예수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전인격적인 만남이 있을 때 비로서 구원얻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지,
예수님의 가르침에 동의하고, 예수님의 기적에 놀라움을 표시하는 정도로 구원얻는 믿음을 가졌다 할 수 없다.
귀신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지만, 그가 구원을 얻지는 못했다.
아는 것으로, 그러니까 지적 동의로, 이해의 수준으로 구원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믿음은 마음 속 깊이 새겨지며 심겨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곧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무리 속에서 오직 12명만 부르셔서 제자 삼으시고, 이들을 양육해 가시며 믿음을 키워가시는 예수님
유월절을 지키시며,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셨지만, 예수님의 표적에 의지하며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의 속 마음을 아셨기에 결국은 그들을 떠나가신 예수님
우리 인간 스스로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진실한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3:10~12)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이 오직 은혜로 밖에는 다른 길이 없음을 깨닫고 또 깨닫는다.
그러니 의인인척 해도 안되고, 오직 믿음 안에서 십자가 보혈의 피 안에서만 의인임을 깨닫게 되니, 하나님의 나를 향한 사랑과 은혜가 한없이 귀하고 소중하게 다가온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살자.
주 안에 있기를 생명으로 지켜내자.
주 밖에 있어온 지난 날들을 늘 기억하며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리 다짐하며 날마다 매 순간마다 주안에서 살 수 있도록 오늘도 주님께 함께 하시며 인도해 주실 것을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신 주님께서 보여주신 의분과 말씀들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으로 제 안에 있는 성전을 더럽히는 불순종과 불신앙의 찌끼들을 말씀으로 정결케 하옵소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행적들과 말씀들을 성경을 통해 깨달으며 당시를 기억하였고 믿음이 성장되었듯, 삶의 현장에서 체험케 하신 은혜의 행적들을 기억하며 저의 믿음 또한 더욱 자랄 수 있도록 주님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어떤 환경에서도 주님과의 전인격적인 관계를 잃지 않게 하시며, 믿음이 더욱 자라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붙잡아 주시며 인도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