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4일 금요일
제목: 없다 하니
요한복음 2:1-1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질문
1.나의 모자람으로 주 앞에 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묵상
맨 처음 예수님을 믿게 된 후, 이 말씀을 접하고 예수님이 참 쌀쌀하게 느껴졌다. 참 민망했겠다 싶었다. 그러고 보면 그런 민망함들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처럼 성경 곳곳에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거기에 대한 반응의 공통점은 그 말씀에 낙심하고 상처받고 나가떨어지지 않고 그 말씀을 발판으로 나갔던 점이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문제라 여겨서 여쭈었을 마리아에게 그리 말씀하심에도 마리아의 반응은 초지일관 흔들림 없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분명했다. 오늘은 그 후반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가 내게 더 큰 음성으로 들린다. 거절의 의미에는 내 때! 가 들어가 있었다.
내 때, 주님의 때가 가장 적절한 것을...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구해야 할 분명한 이유는 나는 주님의 때를 알지 못한다는 거다. 내가 기도해야 할 이유이고, 주 앞에 아뢰고 간구하는 기도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내가 간구했을 때 주님의 반응을 통해 내가 기다려야 할 일인지, 말씀대로 그대로 해야 할 일인지, 하지 말고 멈춰야 할 일인지, 돌아가야 할 일인지 알 수 있다.
주님이 행하신 표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주의 영광, 믿음의 표적은 또 다른 예수의 씨, 영적 후사를 낳게 됨을 말씀해주신다. 내가 보여야 할 표적은 순종이다. 믿음의 순종이 주의 영광을 드러낸다.
나의 결핍, 수도 없이 많지만 감정에 대한 공감에서 오는 게 많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좋을 때는 너무 좋고 떨어질 때는 너무나 우울하다. 좋을 때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침체될 때 옆에서 공감받지 못하면 더 심하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여보, 힘들어요. 슬퍼요. 속상해요. 섭섭해요” 할 때 남편의 대부분 반응은 “힘들긴 뭐가 힘들어, 슬프긴 뭐가 슬퍼, 속상하긴 뭐가 속상해. 섭섭하긴 뭐가 섭섭해” 딱딱한 벽 같고, 단단하고 차가운 얼음 같다. 내가 괜찮을 때, 여유가 있을 때, 평안할 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웃어 넘길 수 있지만, 힘들고 슬프고 섭섭할 때, 그 때 내 옆에 남편이 있다는 건 쥐약이다. 더 골나게 되고 더 삐지게 되고 더 침울하게 된다.
그건 내가 어렸을 때도 그랬던 것 같다. 할머니는 자상하고 부드럽고 오냐 오냐 해주시는 내 편이었지만, 내가 속상하고 슬플 때 내 슬픔에 공감해주지는 못하셨다. 할머니가 달래는 방법은 내 감정을 축소해서 다른 더 좋은 것으로 관심을 끌며 얼러주시는 것이었다. 엄마는 바빠서 그런 나를 일일이 대면하지 못하셨고 엄마보다 더 더 바쁜 아빠는 얼굴 볼 시간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손녀, 손자들에게는 자상하셨던 분이셨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청 무서운 분이셨다. 그런 분이 감정을 수용해주시는 건 하실 수도 없었다. 귀염을 떨 때는 물론 예뻐하셨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보일 때 소리 지르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게 할아버지가 보일 수 있는 최선이셨다.
나는 한 번 울면 달랠 사람이 없었다. 내 기억에는 세 번이다. 서 너살 무렵, 한 번은 밥을 먹다가 무엇 때문이었는지 울기 시작했는데 엄마가 보다 못해 나를 번쩍 안고 바깥 돼지우리에 버린다고 위협했었다. 나는 엄마 손에서 떨어질까 무서워 엄마 팔을 꼭 잡고 악을 쓰며 더 울었던 것 같다. 그때도 그 위협으로는 내 울음이 그쳐지지 않았다. 또 한 번은 집안에 고모와 엄마랑만 있었는데 또 무엇 때문에 울다가 엄마가 장농에다가 나를 넣었다. 나프탈렌 냄새가 짙은 장농속에 들어가면서 고모~ 고모~를 외치며 도움을 요청했었던 기억이 난다. 농속에서는 생각보다 무섭지 않고 참 아늑해서 저절로 울음도 눈물도 그쳤던 것 같다. 그리고 농속에서 하는 놀이를 시작했던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이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6-7살 무렵, 많이 자랐을 때, 무슨 일인가 사건은 기억이 안 나는데 샘에 서서 울기 시작한 울음이 저녁 잠자기 전까지 그치지 않았는데, 출입을 나가셨던 할아버지를 맞이한 것도 울면서, 퇴근하는 아빠를 맞이한 것도 울면서였다. 처음에는 집을 나갔던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더 서럽게 울었는데 서러웠던 게 점점 기운도 빠지고 나중에는 내가 왜 울었는지 그 이유도 생각이 안 나고, 또 울면서 내 울음 소리에 취해 더 울기도 했지만 점점 기운도 빠지고 슬퍼지지도 않고 졸렵기도 하고 그쳐야겠는데 자존심 때문에 그냥 그치기도 민망하고... 아무튼 끝까지 울다가 모든 식구들의 관심이 내게서 멀어졌을 그 때 슬며시 누워서 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그뒤로는 그런 고집스런 울음은 없었지만, 그건 슬픔이나 속상함이 잘 다뤄져서가 아니고 내 스스로 더 이상 공감 받을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체념한 것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막무가내로 악쓰며 울지는 않았지만, 그 뒤로 뿔나고 골나면 나는 문을 쾅 닫고 씩씩거리며 이불 뒤집어쓰고 잠을 잤다. 그런데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다. 지금도 남편에게 서럽고 속상하고 섭섭하면 아무 말없이 이불 뒤집어쓰고 잠을 잔다. 말을 해도 전혀 공감하지 않는 남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 남편도 내 감정을 다룰 줄 모른다. 자신의 감정도 낯선데 남의 감정은 더구나 그렇겠지.... 우리 남편도 우리 할머니같다. 직접적으로 내 감정을 다루지는 못하고 상한 건 마음인데 마음을 만지지 않고 몸으로만 풀어준다. 남편 말처럼 몸으로도 풀어지는 건 있지만 마음을 만지지 않는 건 항상 핵심과 본질은 놓치는 것인 줄을 모른다. 알려줘도 듣지를 않는다.
나도 너무나 남편에게 밀착되어 있다. 오늘 새벽에 눈길을 걷는데,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농로 산책길이라 바퀴가 지나간 자리가 아니고는 눈이 빠졌다. 나는 남편 옆에 붙어서 가고 싶은데 그러자니 눈길에 빠지고, 양쪽 바퀴 정도의 거리로 떨어지지도 못하는 나를 봤다. 남편에게 꼭 붙어 있고 싶기만 하니.... 많이 독립적이 되었다 싶지만 그래도 여전히 의존적인 게 많다. 그러다보니 남편에게 매여서 일희일비하는 나다. 컴퓨터 비번도 남편이 ‘예쁜꽃당신’이라고 지어준 것에 감동해서 헤헤거리며 좋아라 했는데, shift키를 세 번이나 눌러야 하는 불편함과 너무나 긴 비번, 마음이 여유 있을 때는 괜찮았는데 화면보호기까지 설정해놨으니 심기가 불편해졌을 때는 짜증스럽다. 그래서 남편에게서 좀 떨어져 새로운 비번을 만들었다. 내가 만든 건 처음이다. 늘 이름 짓는 건 남편 몫이었는데.... 남편은 아담이라 그런지 이름도 참 잘 짓는다. ^^ ‘붙좇아’... 이제 룻이 시어미 나오미를 붙좇아 가듯, 예수 그리스도를 붙좇아 가는 인생이 이미 된 것 같다. 컴퓨터 비번 이름, 하나 바꾸었는데 인생이 바뀌는 것 같이 흐뭇하고 뿌듯하다. 그리고 나도 남편 아담을 닮아 이름을 잘 짓는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신앙도 독립적이 된 것 같다. 붙좇아!! 비번을 칠 때마다 기분 좋다. 예수님께 더 잘 따라가는 것 같다. 예쁜꽃 당신은 남편의 고백이면서도 정작 고백하는 당사자는 잊고 있는 고백인데 고백 받는 나는 칠 때마다 말과 행동이 왜 그리 다르냐고!!를 악쓰게 되는데 붙좇아의 고백은 내 고백이니 고백할 때마다 비번을 칠 때마다 내 신앙을 점검하게 된다.
이끌리는 형통이 은혜의 형통이라 하셨는데, 또 부부목장 연합예배라는 말을 듣고 하나님의 열심에 손을 들었다. 그렇게 싫어하는 줄 알면서도 또 연합하게 하시는 건 나의 지경을 넓히기 위한 하나님의 확실한 세팅이시다. 나는 편협하고 시야가 좁다. 나, 나, 나에서 이제 우리 목장 식구들까지는 넓혀졌는데 우리 마을까지는 안 되는 나의 좁음에 대해 못마땅하신 거다. 넓혀야 할 때인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반갑다. 연합 목장 예배가 반갑다. 나의 약한 무엇을 보게 하셔서 만져주시려 하심인지 기대가 된다.
꿈이다. 자동차 배기통에 오른쪽 배 중간이 다쳤다. 겉 상처는 얼마 안 되는데 내출혈일 것 같다. 나는 뜨거운 불도, 벌레들도 싫지만 내가 갈 곳은 천국이니까 화장이든, 매장이든 부모님께서 선택하라고 말씀드렸다.
교회 꽃꽂이를 하는데 신정이가 박샘과 한다. 내 옷을 신정이가 입고 즐겁게 꽃꽂이를 한다. 나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건 좀 신경쓰이지만 괜찮다.
하늘로 가는 기차다. 청룡열차 같기도 하다. 무서워야 하는데 안 무섭다. 엄마에게는 연을 탄다고 말씀드렸는데 엄마는 연을 기다릴 텐데... 좀 마음이 쓰이긴 하다.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내가 타려고 햇던 연은 전깃줄에 붙어서 한 쪽이 녹아있다. 더 높이 높이 올라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한산한 하늘이다. 자유롭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나의 많은 결핍 가운데 감정 공감과 남편에 대해 밀착되어 있는 나의 모자람을 내놓고 구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② 하나님이 말씀과 환경으로 내게 말씀하실 때, 마리아처럼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그것을 수용하며 인정하고, 그 안에서 믿음의 순종을 하여야 함을 친히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③ 남편의 모습 그대로, 나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관계를 통해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④ 남편에게 마음을 다해 ‘네가 옳도다’의 고백을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나의 결핍을 하나님께 세세하게 먼저 아뢰며 말씀 가운데, 그 말씀대로 그대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