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일 목요일
제목: 나를 좇으라
요한복음 1:35-51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질문
1. 나는 예수님께 무엇을 말씀드리고 있는가?
묵상
세례 요한과 함께 있던 두 제자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세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다. 메시야를 만났다는 증거에 시몬도 함께 한다. 또 빌립을 만나 나를 좇으라 하실 때, 빌립은 나다나엘도 함께 부른다.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임금이라는 나다나엘의 고백에 더 큰 일,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좇는다는 건 십자가를 지는 인생인데... 나는 좇으라는 말씀에 뭐라 말하고 있는가?
나는 바로 밑 남동생과 자주 싸우며 컸다. 내가 보기에 동생은 무척 거칠었던 것 같다. 힘도 점점 세지는 동생과 나는 초등학교 때, 한 평생 할 욕을 집에서 그 동생에게 다 쏟으며 자랐다. 다른 사람에게는 욕을 들어본 적도 욕을 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남동생의 주먹에 분하고 억울했다. 나도 열심히 치고 팼지만 내 기억에는 내가 울고 끝날 때가 다반수였다. 동생이 내게 기어오르는 것에 대해 아무런 처방을 하지 않는 할아버지도 미웠던 것 같다. 우리가 싸울 때는 주로 어른들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지만 싸울 때 옆에 있다고 해서 그 싸움에 대해 깊이 관여하지는 않았다. 너무 심하다 싶을 때만 싸움을 말리는 정도였지, 옳고 그름에 대해 말씀하지 않았다. 애들은 원래 싸우며 큰다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지만... 나는 표현은 안 했지만 거기에 대해 섭섭하고 분함도 있었던 것 같다. 점점 거칠어서 내가 손을 댈 수 없는 동생에게 화가 많이 났었다.
그리고 사용해본 적이 없었던 욕, 욕은 나쁜 것,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박혀있었다. 때로 입이 거칠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든지 혼자든지 하는 욕이 내 귀에 들릴라치면 왜 저런 말을 사용하나 싶은 생각에 천박해보였고 혐오스럽고 더러워보였다. 그런데 몇 년 전, 어느 날 후배가 하는 욕을 듣는데, 착착 입에 감기게 내뱉는 그 욕이 어쩌면 그렇게 시원하고 멋있는지.... 또 다른 아름다운 언어의 세계였다. 욕설임에도 재미나고 구성지며 아주 적절하니 혐오스럽지 않고 무척 시원했다. 그리고 집단 상담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욕 테라피! 진짜 재밌고 시원했다. 그렇게 내 입에 욕이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엔 재밌는 흉내 내기로 아무도 모르게 비밀스럽게 남편과 하는 놀이 중 하나였다.
욕에 대해 거부감은 없어졌는데, 사춘기에 들어선 두 아들들이 형제간 말이 이어질라치면 조금만 불편해져도 욕으로 시작해 욕으로 끝난다. 그렇게 되니 거기에 대해 우리 할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애들은 그러려니... 하다보니 방관이 되는 게 있다. 또, 그 언어를 이해하는 건 괜찮지만 부모인 내가 영향을 주는 게 아니고 도리어 영향을 받아 아들들에게 나도 점점 수위를 높여 말하게 된다. 목장에서, “*** 빨리 들어와! ” 라고 했다는 나눔에 화가 단단히 났나보네 싶으면서도 그래도 그건 좀 심하다~란 생각이 살짝 들었었다. 그런데 장난도 재미도 흉내도 아닌, 진짜 화가 나서 **** ! 라고 어제, 나도 쏟아졌다. 이성미의 간증을 들으며 욕에 대한 경고를 한 번 받았고, 목장 나눔을 들으며 나도 저럴 수 있겠구나 싶어 또 한 번 경고를 받고 이제 끊는 적용으로 기도해야겠구나 생각했는데.... 회개가 한 발, 늦었다.
내 연민... 나는 내 연민이 심하다. 예수님은 어린양이신데, 나는 내가 숙이고 싶지 않다. 치사한 건 진짜 싫다. 왜 예배가 당연한 적용임에 신앙 낮은 내가 예배 가자고 꼬셔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수요 예배 가자는 내 말에 이번 한 번 만이야! 하는 남편 말이 얄밉기만 하다. 지난 번에야 아직, 우리 교회로 오겠다고 결정되지 않은 상태니까 어찌보면 배려라는 생각에 감사가 넘쳤지만, 이제 등록하기로 마음 먹었다면 모든 예배에 다 참석하는 건 당연한 의무 아닌가 싶은 생각에 내 마음이 꼬였다. 왜 예배 가는 것에 대해 생색을 내려고 하는건지... 자기가 초신자냐고!!! 자기가 불신자냐고!!!! 자동차로 가니까 길게 잡아야 50분이다. 40분이면 가겠다. 2시간이 걸리는 시간이 40분이라니.... 남편 덕에 호강한다 생각했는데, 또 생각하니까 그동안 남편이 없어서 내가 고생한 것에 대한 생색이 올라오는 나의 악! 내 상상속의 남편은 “그동안 나 없이 예배 드리러 다니느라 당신이 고생이 많았구나. 앞으로는 당신이 전 보다는 좀 편하게 된 것 같아서 나도 기쁘네” 이런 말을 기대하는 내가 악한거지!! 왜냐면 절대 그럴 일이 없을 텐데... 이런 기대감으로 또 섭섭해하며 삐지는 것은 나일 테니까.
예배 드리고 생각할 게 있다며 차 안에서 버텼다. 추위에 떨면서도 집에는 더 있다가 들어간다고 고집부리며 1시간! 결국, 그래봐야 나만 손해보는 줄 알면서도 나는 꼭 그렇게 한다. 안방에 들어가기 싫어서 거실에서 ‘추적자’ 한 편을 보며 그 억울함에 함께 부르르 떨며 통곡하다가 발치 이불을 들고 들어갔다. 내 맘은 하나도 안 풀렸다. 내 맘에 대해서는 하나도 어루만지지 못하는 남편도 밉고, 그 웃음도 싫다. 무덤덤!!! 진짜 밉다. 그런데 부끄럽다. 예수님이 좇으라 하심에 좇겠다는 말은 하면서도, 좇는다는 말은 십자가에 죽겠다는 결단인데 나는 여전히 죽지 않는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여전히 죽지 못하는 내 모습 이대로, 적용 못하는 이모습 그대로, 와보라 하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② 말씀으로 하늘이 열리고 빛으로, 삶으로 드러내는 공동체에 속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 놀이와 재미로 했던 욕설도 끊고 하늘의 언어를 더 많이 사용하겠습니다.
3. 예수님을 좇는다는 말씀을 드리면서도 남편에게 내 감정하나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적용을 합니다. 이제 돌이켜 남편에게 내 마음을 잘 전달하도록 말을 꺼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