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 수요일
제목: 이튿날
요한복음 1:19-34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질문
1. 나는 나를 바로 알고 전하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로 분별하는가?
묵상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안다. 성경을 근거로 주의 길을 곧게 하라는 광야의 소리라고 분명히 알고 전한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누구신지 증거한다. 이튿날, 예수 그리스도가 나아오심을 보고 확실하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어린양,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에 대한 분명한 자각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가능했다. 나의 실체, 나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인생의 허무함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내가 명확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사람들에게 말할 때, 예수 그리스도에 비춰서 전하기를 두려워하고 주저한다. 새해 인사를 나누는 메시지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한 메시지가 살짝 달랐다. 직접적인 복음이냐, 간접적인 복음이냐 그 안에 함축된 나의 의미는 같지만, 언젠가는 그게 복음 전하는 자의 지혜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올 해는 그분이 나에게 듣지 않으면 언제 들으랴 싶은 생각에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같은 메시지로 예수 그리스도, 복을 누리며 나누는 한 해 되시기를 축복했다.
예수님... 사람으로 오셔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까지 받으신다. 윗질서에 대한 순종, 내 죄만 보며 엎드러지지도 못한다. 죄를 다스리지 못해 안색도 잘 변한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도 내 힘으로 한다는 내 생색병, 아들들이 하루 종일 늘어지게 놀고 들어와서는 또 욕하고 싸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로 인해 수고한다는 생각보다는 분이 난다.
동생이 형을 형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 윗질서에 대한 순종을 보여주지 못한 나의 악이다. 믿음 있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 들은 말씀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가운데 자기 죄를 봐야 할 사람은 믿음 있는 사람이고 말씀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씀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그러지를 못했다. 옳고 그름의 잣대가 기준이었고 객관적인 사실이 중요했고 다만 거기에 대해 사리분별력이 없어 보이는 것에 요동이 되었고, 나의 죄를 보고 인정하기를 먼저 하지 못했다. 그게 나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예수 그리스도로 분별하지도 못한다. 예수님이 오실 길을 예비하지도 못한다. 말씀을 통해 성령님 음성을 듣지도 못한다. 그냥, 공동체에 속한 것으로만도 감지덕지하며 덤으로 가지만, 능력이 없다. 앵무새같이 따라하기만 한다.
요한은 이튿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지만, 새해 이튿날, 나는 예수 그리스도 오심을 예비할 수도 순종의 능력도 없음을 증거하고 있다. 슬프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따라하고 흉내 내기에 급급한 나의 악을 보게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안색이 변하는 나의 악을 보고, 예배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그럼에도 말씀 공동체에 붙어만 가게 해주심도 감사, 감사합니다.
2. 말씀이 능력이 되는 순종이 있게 하옵소서. 예배가 회복되어 죄를 다스리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