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
(QT본문: 요 1장 19절~34절)
2013-1-2 수요일
[본문: 요 1장 19절 ~ 34절]
[관찰 해석]
세례 요한의 증거 19~28
1. 바리새인들이 보낸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요한에게 “네가 누구냐?” 질문하자, 요한은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답변한다.
2. 이어 엘리야냐 묻는 질문에 아니라 답변하고, 선지자냐는 질문에도 아니라 답변한다.
3. 그러면 당신은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 답변하였다.
egrave; 즉 이사야가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언했듯이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세례 요한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고, 이사야와 세례 요한은 모두 그리스도를 증언하였다.
4. 그렇다면 어찌하여 세례를 주느냐는 질문에 자신이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뒤에 오실 메시야를 준비하는 것이며, 자신은 그 분의 종이 될 수도 없을 정도로 비천하다고 답변하였다.
하나님의 어린양 29~34
1.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나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선포하였다.
2. 요한은 예수님을 증거하여, “그 분은 내 뒤에 오시지만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 때문에 나 보다 앞서신 분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분을 두고 한 말이라” 하였다.
3. 요한은 자신도 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인 사실을 몰랐으나, 자신이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이 분(메시야)의 도래를 예비하는 것이라 하였다.
4. 또 증거하여, “나는 성령님이 하늘에서 비둘기처럼 내려와 이 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 하였다. 이어 나도 전에는 이분을 몰랐으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분이 나에게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신 줄 알라고 일러주었다 하였다. 따라서 자신이 그것을 보고 이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것이라 하였다.
[교훈 적용]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회개의 촉구 그리고 세례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던 요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군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던 이러한 현상과 그 중심에 있는 요한에 민감한 관심을 보이며, 요한의 정체를 탐지할 사람들을 파견했다.
그리고 그의 정체를 묻는다?
비록 파견자들의 입에서 메시야에 관한 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요한은 이들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고 있었기에,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려면 먼저 하늘로 승천했던 엘리야가 다시 와서 메시야의 도래를 준비할 것이라 믿고 있었기에, 또 묻는다. 당신이 엘리야요?
세례 요한은 엘리야가 아니라 또 대답한다.
요한은 단지 선지자 말라기가 예언한 엘리야적 사역, 즉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는 자일 뿐인데…
이어 우리들이 기다리던 그 선지자, 곧 메시야냐는 질문에도 아니라 대답하자,
그렇다면 도대체 당신은 누구냐?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대답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에, 자신은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사40:3)을 인용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 앞 길을 예비하는 자임을 밝혔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40:3)
이제 요한의 정체를 알아낸 파견자들은 이번에는 그렇다면 오직 메시야만이 할 수 있는 세례를 어찌하여 당신이 주느냐?며 따지자,
자신은 메시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천한 존재지만 메시야의 앞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라 하였다.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자매인 살로메에게서 태어난 요한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을 요한이 사촌인 예수님을 몰랐었을리가 없다.
하지만 그는 오직 말씀에 근거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다.
자신은 단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요, 그 앞 길을 예비하는 자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였다.
세상적 관점으로 볼 때 군중들에게 인기도 있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요한을 메시야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여서,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자신을 높일 수 있었고, 메시야의 위치에 자신을 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그 중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씀에 그 중심이 있었기에 그는 겸손할 수 있었고, 자신의 실체를 정확하고 당당하게 밝힐 수 있었다.
조금만 뭔가 잘하는 것이 있으면 자랑하고 싶어서 안달이고, 조금만 사람들에게 인기를 받는 것이 있으면 겸손보다는 교만을 뽐내며 살아가는 것이 찌질한 범생이들의 삶인데, 이 모든 것이 말씀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씀을 알았어도 삶 속에 녹아진 성경적 가치관으로 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정말이지 말씀 하나 하나를 붙잡고 삶 속에 적용하여 말씀의 모습이 보여지는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고 싶다.
해도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새해에는 잘못된 생각, 잘못된 가치관을 바로 잡아 삶 속에서 보여지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주님께 두 손 모아 기도 드린다.
요한은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다 죽었다.
소리의 실체인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목적이었기에, 그는 그리스도를 예비하였고,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요한의 모습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이것을 모르면 평생 헛물켜다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인데, 제 주제도 모르고 인생을 사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살아생전 부귀영화로 누릴 것 다 누려본 솔로몬이 인생 말년에 가서 지금껏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1:2) 하였으니,
결국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전12:13)증거하였다.
세례 요한은 세상 부귀영화 다 멀리하고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다 목이 잘려 순교하였고,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도 예수님을 증거하다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예수님의 12제자와 폴리갑, 안디바,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무수한 그리스도를 따르던 사람들도 예수님을 증거하다 불에, 칼에, 십자자에 못박혀 순교하였다.
이로 보건대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삶임을 깨닫게 된다.
성경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는가?
구약은 오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신약은 오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
고민할 거 아무것도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 같은데, 늘 고민하고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삶의 목적이 명확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말씀 주셨고,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살 수 있도록 계획하셨는데도 여전히 그러한 삶을 살 수 없음은 내 마음의 중심을 여전히 주님께 온전히 드리고 있지 못함에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10:10) 하시며 갈급한 인생을 종결하시며 풍성한 삶을 약속하셨는데도 과거의 여전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면, 죄가 주님의 주님 되심을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꿇고 살려는 삶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회개하라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비하였듯,
회개하라는 외침으로 하나님 나라를 예비케 하는 삶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삶으로
주님을 초청하는 삶으로, 주님이 주인 되시는 삶으로
오늘도 내 삶을 성령님께서 온전히 주장하시며 인도해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세례 요한을 통하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조금만 인기가 있으면,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보다는 그 영광 제가 받으려 했고, 제가 드러나려 했습니다.
매일같이 말씀을 연구하고 묵상을 하면서도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더럽고 추한 모습인데도, 제 모습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질하며 살아온 저의 더러운 삶의 찌끼들을 성령의 불로 말씀으로 깨끗케 하셔서, 다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풍성할 삶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