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1일 월요일
제목: 찬양
시편 150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찌어다~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질문
1. 나는 찬양하는가?
묵상
언젠가 감정코칭 연수를 받으며 그래프로 내 마음의 평정 상태를 가시화 해서 눈에 볼 기회가 있었다. 가장 감사했을 때, 기뻤을 때를 떠올려보라고 하는데 나는 그런다고 하는데도 그래프는 불안정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물론,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상황에 나와서 하는 거였고 전날 늦게까지 일이 있어 잠을 못 자서 머리가 무거운 상태이긴 했다. 그래도, 그래도.... 내 감사와 찬양의 지수는 불안한 마음 하나 평정하지 못하는 아주 미약한 흉내라는 걸 객관적으로 보게 한 경험으로 가끔씩 떠올라진다. 날마다 찬양하고 감사하지만, 날마다 가슴 벅찬 것 같이 그 사랑에 감격하지만... 객관적인 수치화가 되었을 때 얼마나 될지 자신이 없다. 내가 이 땅에서 숨을 거둘 그 때까지 할 게 찬양이고 감사라고 알지만, 그렇게 노래한다고 노래하지만, 또한 하루에도 몇 번씩 내 감정의 기복에 따라 움직이는 나를 안다.
슬퍼요.... 하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무덤덤하다. 아무 반응이 없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슬퍼요...하고 보냈을 때의 그 슬픔보다 반응 없는 상황을 맞이하는 순간의 슬픔이 더 커진다. 사실, 오늘 송구영신 예배를 같이 드리고 싶은 기대감과 설레임에 들떴는데 성찬예식에 자기가 꼭 참여해야 하겠고 1월 첫 주까지 가서 인사하고 온다는 결정에 끝까지 충실하고 싶다한다. 그 입장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슬프다. 실망스럽다. 매번 나 혼자 앉아서 예배드리는 것도 이제 끝났구나 싶어 신 났는데.... 특히 오늘은 온 가족이 함께 예배드리겠구나 싶었는데... 아들들을 나 혼자 밤 12시까지 데려올 자신이 없다. 남편이 함께 간다면 아들들은 움직이겠지만, 그 말에 그러면 남편은 그 교회에 아들들이랑 예배드리러 간단다. 나는 그 교회에 가는 게 싫다. 나는 우리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싶다. 그럼, 또 뭔가? 나만 빠지고 아들들과 남편은 그 교회에 가면... 내가 얼마나 우스운가? 그렇게 욕먹기는 싫고... 아들들이 송구영신 예배 안 가고 그냥 집에 있게 하는 것도 싫고... 나는 슬프다.
영성은 거창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 생각하는 마음, 이타적인 마음을 가질 때 생기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지극히 이기적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후대하심으로 이타적인 마음을 갖고 모인 공동체에서 안식이 있었다. 예수께로 인도한 거룩한 중매장이들이 떠오른다. 나의 친구들, 사라 목자님, 교회에서 만난 신앙의 선배들이었다. 또 책과 테잎으로 만난 믿음의 선배들, 성경의 수많은 인물들, 그 중, 김영일 장로님은 신앙에도 영향을 주셨지만, 남편을 내게 소개한 결정적인 은인이시다. 성경 공부 인도 때문에 늦게 왔다는 첫 마디에 호감을 가#51275;던 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지혜와 구속사적 안목의 씨가 있었던 증거였다 싶다. ^^
모험, 나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하고 돌아봤을 때 꼽는다면 첫 번째 모험은 중국행이었고, 두 번째는 우리들 교회 등록이지 싶다. 예수 낳는 결단이고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뢰의 표시였다. 그로인한 나의 영적 성장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수치 당하기는 아직도 건너지 못한 내 모습, 성경 본문을 읽을 때 오글거리는 장면이다. 발치 이불을 들고 어찌 누울 수 있을꼬! 아직도 나의 주제와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구원을 위해 어떠한 수치도 감당해야 함에도 나는 아직도 멀었다. 유다와 다말 역시 지금의 나라면 절대로 감당할 수 없다. 부부 목장에서도 거기에 걸려 넘어진 것 같다. 그러나 지금도 밀가루 사탕과 빵은 먹고 싶지 않다. 다말이나 룻의 적용보다 너무도 쉬운 밀가루 사탕과 빵, 그조차 먹을 수 없는 나의 한계,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나의 연약함을 보게 하신다. 하나님, 내가 그렇습니다! 내가 입으로 하나님 나라를 부르짖지만, 나의 실상은 그렇습니다!
나는 아직도 옳고 그름의 세상 가치관이 더 강하다. 예수님이 오시게 하기 위한 적용이 안 된다. 날마다 이타적인 영성으로 예수씨가 오기 위한 적용을 해야 하는데, 내가 중요해도 너무 중요하다. 내가 종임에도 왜 나는 종으로 살지 못하는가? 나의 슬픈 현실이다. 충격적인 처방에 다 하겠다고 대답하고 그대로 다 준행하는 룻의 모습도 나와는 다르다. 목사님이 우리 시어머니라면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처방에도 예 할 수 있겠다지만, 사실 목사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1/10의 순종도 하지 못하는 게 나다. 마음으로도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충분히 동의하면서도 삶에서는 적용이 안 된다. 순종이 안 된다. 그러나 다행인 건 순종 못하는 나를 볼 수 있는 안목은 생긴 거다. 그게 나의 성장이고 그게 감사다.
꿈이다. 영해네 갔다가 잠이 들었다. 잠 때문에 이제 외박이라니.... 나도 놀랐다. 화들짝 놀라 나오는데, 몇 명의 아이들이 공부를 하러 왔는데 잘 못 알아듣는다.특별반이다. 도자기도 만든다.
횃불을 만드는데 그 똥을 발효시킨 가루다. 이제 다 사용해서 불이 꺼진 횃불 두 개에 가루를 발랐다. 여기서는 꽃가루도 번식이 다르다. 잠식하겠다. 꽃의 성장 속도가 눈에 보인다. 금방 꽃망울이 터지고 온 사방으로 날아가는 꽃가루... 온 동산이 이 꽃으로 덮이겠다 싶었는데 꽃이 이미 만발하다. 생태계가 파괴되겠다. 횃불로 날아다니는 꽃가루를 태웠다. 그것도 방법이겠지만....
이게 묘하다. 막 움직인다. 악이 움직인다. 그 화장실에서도 그랬다. 막 움직였다. 이 횃불에 붙은 똥가루, 그게 악의 근원이다. 주인도 모르게 남의 것을 훔친다. 나중에는 밝혀졌다는데, 의아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누명이 벗겨지기가 쉽지 않을 텐데... 지 맘대로 남을 해치는 도구로도 변한다. 무섭다. 조절이 안 된다.
콩밭, 콩깍지를 태웠다. 남은 건 콩만이다. 추수가 쉽겠다. 이렇게도 하는가 싶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내가 분별할 게 예수씨, 구원임을 다시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말씀을 통해 나의 실상을 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게 하기 위한 수치 당하기! 안 되는 나를 보게 하시고 순종하고 적용을 위한 기도를 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나의 순종을 흉내 내는 것에서 뿐만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 가운데뿐만 아니라 나의 툴툴거림에서도 나의 거부와 거절, 나의 슬픔 가운데까지도 찬양을 받으시는 하나님, 너무나 감사합니다. 나의 처지, 기분에 상관없이 언제나 항상 동행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너무나 감사하고 그래서 더욱 찬양합니다.
2. 내가 수치스러워도 오늘 아들들이 아빠를 따라가든 나를 따라가든 둘 중에 어디를 가든 송구영신 예배를 가게 하겠습니다.
3. 내가 너무 싫어도, 내가 너무 하고 싶지 않아도 이타적인 영성, 안식을 위해 적용할 수 있는 순종의 마음도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