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9일 토요일
제목: 성도
시편 148
저가 그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저는 모든 성도 곧 저를 친근히 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거리로다 할렐루야
질문
1. 하나님을 친근히 하는 성도로서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묵상
성적표를 가져 왔다. 수학, 과학이 양도 아니고 ‘가’다. 말로만 듣던 ‘가’를 우리 막내 아들이 받았다. 아들 하는 말이 더 웃기다. “엄마, 0점, 20점도 ‘가’야. 그래도 난 50점이 넘었잖아. 나는 노력을 많이 한 ‘가’라고!! 그리고 왜, 성적만 봐? 옆에 선생님이 써 주신 것도 좀 봐” 그래, 노력을 많이 했다. 그렇게라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아들이 기특하다. 선생님이 일 년 동안 자기 마음에 들었노라며, 선생님이 써주신 말에 뿌듯해하는 아들, 이제 방학이라고 신 나기만 한 아들이다.
큰 아들은 스스로에게 다소 아쉽지만, 만족스럽다고 한다. 희망하고 목표하던 대로 음악 교과 우수상을 받았다. 기악 시험 본다고 리코더 연습을 집에서 날마다 하더니.... 게다가 아이 표현에 의하면 정말 완벽주의, 까탈스럽기가 말할 수 없는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리코더도 가창 시험도 만점이다.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 대견하면서도 웃기다. 자유롭고 희극적인 아들이다. 파마를 하고 싶은데, 흑인처럼 빠글거리게 해서 머리가 커다란 파마 머리를 하고 싶단다. 그런데 남편은 반대를 한다. 아빠의 허락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묻자와 가로되, 전화를 하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가장인 아빠가 허락하실 때까지는 안 된다는 내 말에 아들도 수긍한다. 아빠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모습을 지켜보니 많이 컸다. 대견하고 기특하다.
아들들 방학이라고 아이들을 보내라고 하시는 어머님의 말씀 속에 왔으면 싶은 마음이 전해졌다. 보통 토요일 밖에 시간이 안 나는데 남편이 계속 토요일마다 연수가 있었고, 아이들은 학원에 매여서 못갔고 주일에는 교회가 다르니까 또 얼굴 뵙기가 어렵고.... 나는 덜컹, 토요일에 눌러 앉아 주일까지 있으라 붙잡을까 그것도 살짝 걱정이었다. 남편에게 물으니 이번 주 토요일에는 연수가 없다는 말에 토요일에 간다고 연락을 드렸다. 어머님은 아들들만 보내라고 하시지만, 사실 아들들 시간도 문제지만 어머님이 아들들에게 이 얘기 저 얘기 사촌들과 비교하는 얘기만 하실 것 같고, 며느리 얘기만 할 것 같아 꺼려지는 게 있다. 언젠가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못들어 가는데 내가 근무 중간에 급하게 와서 문만 열어드리고 간 적이 있다. 그 때 일을 어머님은 내가 관리실 사람들은 챙기면서 정작, 어머님은 음료수 한 잔 안 주셨다며 그 서운함을 아들들 붙잡고 얘기하시는 걸 듣고 내가 얼마나 뜨악했는지.... 그 경황 중에 그걸 내게 바라셨다는 것에도, 또 나의 불찰이 있다손 쳐도 손자들에게 그 얘기를 해야 하는 어머님의 심정, 나는 이해가 안 된다. 그것도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아무튼 먼저는 남편이 거취할 교회 문제가 매듭지어져야 더 편안한 상태가 될 것 같다.
목장 예배, 처음이다.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 정말 싫다. 싫어도 너~무 싫다. 목장에 적응이 안 된다고 생각한 것도 처음이다. 목장 적응... 나는 어렵겠다. 남편이 1월부터 우리교회에 등록한다고 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란 걸 처음 알았다. 내가 적응이 안 된다는 게 문제다. 어제 저녁, 집에 와서도 씩씩 거렸다. 잠순이가 집에 오면서도, 집에 와서도 잠이 안 왔다. 마음이 상해도 너~ 무 상했다. 자리를 박차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나님이 나의 찌꺼기를 만나게 하신 이유가 있을 텐데.... 내가 왜 요동하는지를 못 찾으니까 더 화가 나고 진정이 안 된다.
어제 나의 넘어짐도 존중이었던 것 같다. 가장 육적인 것이 가장 영적이라 가장 육적일 때 거룩한 거라고 하지만... 나는 게임에 등장한 밀가루 사탕의 의미도 그 맛없는 빵의 의미도 못 찾겠다. 여러 사람이 입을 대고 코를 박고 얼굴을 들이대고... 그 망가짐을 지켜보는 것도 부대끼게 오글거리고 내 얼굴에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이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 나는 웃음이 안 나오고 비명만 나왔다. 내가 볼 때, 그런 반응을 보인 건 나 하나였다. 그것도 참 이상하다. 만약, 그 게임에 참석하는 게 선택이었다면 그렇게 싫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억지로 누구나 해야 한다는 것에 나는 아주 심하게 반감이 들었다. 그건 나의 문제였다. 목자님은 내가 교양이 깨어지지 않아서라고 하시지만.... 내가 교양을 떤다고는 생각 못했었다. 만약 내가 하고 싶었다면 밀가루 샤워도 마다하지 않았을 테지만.... 정말, 싫다. 지금도 그 싫은 느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겠다. 아침에도 괜히 짜증이 나고 씩씩거렸다.
윗질서에 순종 못하는 나의 악이었을까? 머리와 말로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것은 하나님이 주신 환경이라고 생각하고 말하지만... 아직, 가슴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게 다반사다. 어제도 그랬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갑자기, 마을 연합이라는 것도 살짝 아쉽긴 했다. 지난 번에 했을 때는 목장에서는 이렇게 연합을 하나보다 생각을 하면서도 그런 부산스러움과 낯설음, 북적거림이 다소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또 마지막 연합이라고 하니까, 오붓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으로 설레임 가운데 목장 예배를 기다리다가 또 연합이란 말에 이건 뭐야? 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북적거림, 그것도 낯선 환경, 이렇게 갑자기 계획에 없었던 일이 끼어드는 게 싫다. 내가 준비되지 않은 것이 싫다. 시끄러운 것도 싫다. 내가 정적이라는 걸 이제야 알다니.... 내가 이 정도인지는 몰랐는데 낯가림도 심하다는 걸 알았다.
지금 심정으로는 앞으로 목장 연합 예배에는 안 갈 거다. 그리고 부부목장 수련회에도 안 갈 거다. 밀가루 사탕, 이상한 맛의 빵도 진짜 싫다. 나는 밀가루도 싫고 사탕도 싫고 빵도 싫어하는데... 더더구나 밀가루 속에 들어있는 사탕, 이상한 정체 불명의 맛을 내는 빵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억지로 먹어야 하는 상황은 더더구나 싫다. 절대로!!! 앞으로도 안 먹을 거고 참여하지 않을 거다. 절대로!!!
정말, 화난다. 하나님 내가 살아있으니까 나는 죽을 수도 없는 인생이니까 하나님이 죽여주세요~ 하고 기도했더니, 당장 그렇게 몰고 가시다니... 하나님께도 실망이다. 흥! 하나님도 밉다. 나는 분명히 혼자는 못 죽으니까 함께해주세요 라고 했는데, 어제 그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을 뵙지 못했다. 내가 눈을 감고 있었나? 너무 싫은 상황에 당황해서 소리만 지르는 중이라, 하나님이 옆에 계신지도 몰랐나? 어쨌든 난 그렇게 죽을 수는 없다. 그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 아셨죠? 하나님!!! 사탕도 싫고 밀가루도 싫고 그런 빵은 더더구나 싫어요. 그리고 죽더라도 우아하게 예수님을 높이며 죽어야지, 그게 뭐예요? 그러고 보니, 나는 교양을 좋아하긴 하나보다. 우아하고 싶긴 하다. 목자님, 말씀이 맞네요!
또 죄 고백이 웃음이고 유희가 될 수 있나? 남편이 뽑은 벌칙이 고백하지 않은 죄였는데, 오~ 어린양 같이 십자가 지는 우리 남편! 순종도 잘 한다. 나라면.... 결코 못하고 화를 냈을 거다. 만약 고백하지 못한 죄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겠는가? 회개는 최고의 감정이지만, 그런 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게 회개가 아니다. 나는 왜 교양 프로를 다큐 프로로 인식하고 의미를 두려고 하는지.... 이게 또 내 한계다. 한참을 떠들고 나니, 주관한 집사님께 미안함이 살짝 들긴 하다. 그래도 이건 그분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니까... 온전한 나의 문제니까 거기에 대한 마음씀, 그것도 나의 쓸데없는 감정 낭비다.
나는 그러고 보니 참 무겁구나. 여전히 무겁구나. 의미가 중요하다. 대개는 생활 양식이 단순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으면 펄펄 거린다. 나는 아직도 왜 내 반응이 남달랐는지, 또 왜 그렇게 혐오스러울 정도로 싫었는지 그 이유를 만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남편 반응이 조금 신경쓰이기는 했지만 남편은 의외로 잘 순응했다. 그러니까 그건 남편을 배려한 생각에서 출발한 반응은 아니고 온전한 나의 문제였다. 아~ 또 있다. 부부간 애정표현을 하게 하는 것도 싫었다. 그걸 왜 하게 하고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또 해야 하는가? 아름다움, 순수가 빛이 바랜 것 같고 훼손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별것 아닌 것에도 이렇게 까탈스러운 나의 필터로 모두가 마음에 걸리는 건 그 자체가 너무 싫었던 건 확실한데... 아직도 도통 잘 모르겠다. 한 가지 감사하고 찬양할 것은 나의 혐오감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이다. 정신이 없을 만큼 당황해서 정말 뛰쳐나가고 싶을 정도의 큰 혐오감...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을 묵상하라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왜 그랬을까?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나의 깊은 혐오감을 떠오르게 하셔서 만나게 하심에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② 죽겠다는 기도에 즉시 응답해주심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아시지요?
2, 나를 보게 하시고 드러나게 하시는, 나의 해결되지 않은 깊은 내면의 상처로 보이는 것들을 만나게 하셨는데, 하나님이 알려주시고 치유하시길 기도합니다.
3. 나의 찬양거리가 되신 하나님, 성도로 불러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말로만이 아닌 삶에서의 찬양이 되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