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쾌락이였습니까? 저는 생존(생명의 보존)이였습니다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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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29
26 유다는 그 물건들을 알아보고 그 애가 나보다 낫구나!
내가 내 아들 셀라에게 그 애를 아내로 맞게 하지 않았으니….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다
밤새 흐르는 눈물로 잠 못이루어도 여전히 떠오르는 태양!
태양앞에서는 눈물을 닦으세요
한 사나이는 욕정에 타올라 그것도 바로 자기 아내가 죽어 장사를 지낸 후 어쩌다 유일했던 기념비적인 욕망의 밤이였는지 아님 그런대로 그 당시 부유한 족장으로써 언제든지 맘만 먹으면 돈주고 쾌락의 상대를 찾아 갔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사나이는 순전히 자기 몸의 쾌락을 위해서 한 창녀와 동침합니다
허나 그와 함께 동침한 창녀는 절대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였다는 것을 유다는 알게 됩니다
그녀는 자기와는 달리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이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다는 그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에게 너는 나보다 낫다 라는 판결문을 내려줍니다
다말이 쾌락이나 여타 욕망에 의해 창녀의 신분으로 변절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즉 생명의 보존과 번식을 위한 자기 낮춤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지요
자기를 내려놓지 않으면 안되는 싸움이였던 것이지요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이 있을까?
그녀는 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야곱 가문의 문화(계대결혼)를 철저히 공부했을 것입니다
공부하세요
보다 더 생명을 잘 잉태하려면 야곱 가문의 문화인 성경을 늘 깨어있는 상태로 공부해야 합니다
그 당시 아들없이 남편이 죽었다는 것은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재산 상속권이나
혹은 생계수단이 끊겼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신약에 이르러 아들이 있는 자는 영생이 있고(생명의 보존으로 생명의 무한 연장선) 아들이 없는 자는 영생이 없다라는 말씀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말의 이 행위를 유다의 행위처럼 윤리나 도덕적인 시각으로 보려한다면 엄청난 잘못입니다
다말이 굳이 쾌락을 생각했다면 왜 하필 시부모였을까요?
다른 젊은 남자들도 많이 있는데..........
다말의 목적은 생명의 잉태 였습니다
그 생명이 어떠한 생명입니까?
그 생명은 바로 시아버지의 유산을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2배로 상속받는 장자권과 결탁된 생명인 것입니다
다말은 수많은 날들을 그 장자권을 갖기 위해 기회를 기다린 여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응답이 없는 시아버지-
다말도 이제는 폐경기를 향해 가는데........
모든 일에는 다 때와 기한이 있지요
더구나 생명의 잉태 역시 그러합니다
물론 울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에게만큼은 예외적이셨지만.....
다말은 그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다만 다말에게는 시아버님의 음성만이 있었을뿐입니다
다말의 시선이 시아버지 유다의 입에서 언제면 장성한 아들 셀라와 동침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질까?
사뭇 간절했을 것이라는 것
바로 그 간절함이 찾아낸 지혜
그러나 그 지혜는 참으로 비참한 것이였습니다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도무지 행동화 시킬 수 없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심합니다
에스더만큼 강인한 의지인지도 모릅니다
생명의 잉태 아니면 죽음을 달라!
그렇게 간절한 자에게 찾아 온 기회!
남성의 욕망이 미끼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도무지 찾아 올 수 없는 기회!
이미 시아버지는 다말에게 정상적인 기회를 깨뜨린 사람이였습니다
새 생명의 잉태를 차단 시키는 사람이 된 것이지요
언약의 파괴자는 이렇듯 생명의 잉태를 차단시키는 자입니다
이러한 본능과 욕망이라는 인류의 보편성이 새 새명의 잉태 라는 언약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돕고 계시는 하나님을 묵상할 때 -
나는 진정 하나님의 도면은 사람의 생각으로 재단되는 것이 아님을 봅니다(성계숙님 버전)
정상적인 관계로는 도무지 만들 수 없는 기회를 포착하는 다말의 처지를 상상해보노라면
눈물 납니다
누구는 욕망이였는데 누구는 생존이였습니다
이것을 내게 적용해봅니다
나는 사람을 만나거나 나아가 주님을 만남에 있어 나의 욕망의 대상으로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생존의 몸부림속에 새 생명의 잉태 를 위하여 만나는가?
다말이 야곱의 장자권관 결탁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기회는 바로 다말의 죽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죽었다 깨어나지 않으면 안되는 그 한 밤을 지새우고
또한 그 밤으로 인하여 부풀어오르는 생명을 과연 무사히 잉태할런지 못할런지
그 불확실한 미래를 다말은 어떻해 뚫고 나가는지..........
모르긴 몰라도 다말은 오직 유다 가문의 씨앗을 볼 수 있다면,
새 생명을 잉태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열정도 있었겠지요
그 열정은 육의 생명으로부터 오는 뜨거운 욕망과 그로인해 야기되는 선악간의 핀결문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였을 것입니다
그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지 않았다면 그 싸움이 과연 가능했을까 ?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시아버지 유다가 자신의 맏아들의 장자권을 기여히 며느리 다말이 그녀의 부풀어 오른 몸으로 일궈내고 있다는 것을 보며 그가 내린 판결문은 너는 나보다 낫다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일체 그녀와 함께 다시는 욕망을 태우지 않습니다
진정한 영의 생명을 보면 아무리 불타 오르던 욕정도 소멸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 앞에오면 다 소멸되어집니다
우리들에게 진정한 영의 생명은 울 주님외 아무도 없습니다
울 주님앞에 나오면 내 욕망이 소멸되어집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의 결단은 한번으로 쓰러지는게 아니라 평생 다말에게 가까이 가지 않습니다
그게 쉬울까요?
우리 한 밤을 지낸사이인데 그리고 내 유산의 두배를 줄 것인데 이왕에 이렇게 된 것
또 반복한다하여 장자권이 상쇄되는 것도 아니고 등등 자신의 함리화와 변명속에 얼마든지 유다는 다말과 잠자리를 다시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척에 두고 살았으니......
허나 그는 다시는 그녀에게 가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다의 위대함입니다
그녀를 옳다고 인정한 이후 다시는 그녀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는 것
더불어 유다도 자기 욕망을 제어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에
나는 오늘 아침 그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나도 유다처럼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 나보다 옳았을 때 너는 나보다 옳다고 인정해주는 자가 되렵니다
다말이 생명의 잉태 를 위하여 죄인의 대표적인 의상인 창녀의 옷을 입었을 때
아마 그녀가 가장 듣고 싶어했던 말은 네가 옳다 라는 말이 아니였을까 싶네요
우리는 다말이 시아비지와 함께 한 것을 죄라고 말하기 쉽습니다
허나 엄밀히 파고들어가면 그녀의 행동은 지혜였습니다
옳다함으로 인정받는 지혜엿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떠한 사건을 놓고 판결문을 내려야 할 때
그 사건을 압도하는 하나님의 은혜(주님의 십자가)를 개입시키지 않으면 이제 몇달 지나면 태어날 생명을 죽일 수가 있습니다
마치 다말이 화형을 당하면 다말만 죽는게 아니라 그 벳속의 생명도 죽는 것처럼........
추신-참고로 여기 계대결혼에 관한 것을 퍼올립니다(펌)
이스라엘에는 계대결혼이라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다른사람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법입니다.
다른 말로 기업무를자 라고도 합니다.
이스라엘의 풍습은 유산은 아들에게만 상속이 됩니다.
그래서 아들이 없이 남편이 죽은 과부에게는 유산이 상속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부는 살아갈 방도가 없기 때문에 그동생이 형수와 동침을 하여
아들을 낳게 해주는것입니다
우리말로는 결혼으로 되어 있으나 그 동생이 결혼한 상태일 경우는 아들만
낳게 해주고 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첫아들 엘이 죽자 셀라가 형의 유산을 받을 아들을 낳아주러
들어갑니다.-8절
그러나 셀라는 그렇게 하면 아버지의 유산이 형수인 다말에게로 갈 것을 알았기
때문에 땅에 사정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장자에게 유산의 반이상이 갑니다. 그래서 장자권이 중요합니다.)
그의 행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십니다.
계대결혼의 풍습은 남편이 죽으면 남편으로 시작해서 가장 가까운 친족을
찾습니다.
즉 형이 죽으면 동생이 또는 동생이 죽으면 형이 그러게 하다가 형도 동생도
없는 경우는 그다음 촌수로 넘어갑니다.
즉 가장 가까운 아버지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촌수로 1촌 2촌 3촌 4촌 이런 순이지요. 만약 아버지도 없을 경우는
삼촌으로....
이렇게 볼때 오난이 죽었으므로 다음은 셀라 차례이고 셀라의 다음은 유다가
그 다음 순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말이 지혜로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