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과 하나님의 구속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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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29
제목 : 일상과 구속
성경 : 창38:12-30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었다.
양들의 털이 자라 깍아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
길가에 창녀로 보이는 여자를 보고,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 했다.
그 댓가로 염소 새끼를 주기로 하고, 담보로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주었다.
유다의 일상이다.
다말은 셀라가 장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그의 아내가 되지 못했다.
유다가 양털 깍으려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과부의 의복을 벗고, 치장을 했다.
유다와 동침을 했다.
그리고 배가 불렸다.
다말의 일상이다.
유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말은 바로 행동에 옮겼다.
유다가 아들 셀라를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고
유다가 여자를 밝힌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유혹에 유다는 단번에 넘어갔다.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불륜이 발생한 것이다.
유다는 다말이 잉태했다는 것을 듣고, 그녀를 불사르라고 했다.
다말은 도장과 끈과 지팡이로 행음의 당사자로 유다를 지목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이 고백으로 유다의 자손으로 예수님이 태어나는 구속사가 이어져 간다.
유다도 다말도 모두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구속사적인 측면에서,
유다에게는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 은혜가 있었고
다말에게는 믿음의 여인이란 말을 듣게 되었다.
유다의 일상과 다말의 의지가 구속사의 한 장면을 연출했다.
매일 매일 일어나는 일상속에서 하나님의 구속사는 이어져 간다.
하지만 바르지 못한 일상은 바르지 못한 방법을 요구한다.
유다의 바르지 못한 일상이 다말에게 도덕적으로 해서는 안될 일을 하게 했다.
두 사람 다 비난을 받아 마땅하지만 둘에게는 차이가 있다.
유다의 일상은 몸이 원하는 행동의식을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몸의 원하는 대로 일상을 만들어갔다.
수아의 딸이 아름다워 이방여인이지만 아내로 맞아 들었고,
아내를 잃은 슬픔과 양털 깍는 일의 고단함을 풀기 위해 창녀를 선택했다.
이에 반해 다말은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대를 이어야 한다는 목적이
오난과 동침을 하고, 셀라가 자라기까기 기다리는 시간을 견디고
마지막으로 시아버지와 동침하는 극단의 방법까지 선택하게 했다.
일상의 생활들이 몸이 원하는 대로 사느냐, 아니면 목적의식을 가지고 사느냐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일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유다처럼 보이는 대로, 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여자를 품고 값을 치루면 된다는 당연한 사고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유다와 다말의 사건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는 했지만,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반면에 요셉의 경우는 그의 일상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한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물리쳤고,
누명을 쓰고 간 감옥에서도 성실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쓸 그릇으로 충분히 준비되어 간 것이다.
요셉의 일상은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상이고, 구속사를 이루는 일상이 된 것이다.
나의 일상과 하나님의 구속사가 만났을 때에 사건이 생긴다.
늘 깨어있는 나의 일상이 되었을 때에, 올바른 방법대로 구속사는 이어겨 갈 것이다.
그렇치 않으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져 갈 것이다.
나의 일상은 어떤가?
혼자 살기 때문에 자유롭다.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
잠자고 싶으면 자고, TV보고 싶으면 보고
교회가기 싫으면 가지 않아도, 나를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창녀와 잔다고 해도 나만 입막으면 된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몸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기 쉽다.
내게 목적의식이 없다면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긍심이 없으면 그래도 된다.
세상 사람들처럼 도덕적으로 크게 비난 받지 않을 정도의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난 그리스도인이다.
누가 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늘 생각해야 한다.
보이는 목표가 없더라도. 인생의 나침판 만큼은 늘 하나님이 되어야 하고, 말씀이 되어야 한다.
마음에 원하는 바가 있다.
사람들에게 말하면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원함만 있고 행동은 없다.
내면에서 그 일을 하라고 한다.
더 이상 목표없는 사람처럼 살지말고,
주어진 내면의 목표를 향해 전진하라고 한다.
매일 매일의 일상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더 이상 눈에 보이는대로, 몸이 원하는 대로 살지 말아야 한다.
유다처럼 부끄러움을 통해 구원을 이루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지금 저를 통제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 동안의 신앙생활과 말씀이 아직까지는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제어해 주고 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개선되지 않으면
저라고
구약의 유다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신약의 유다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요셉처럼, 다윗처럼
보이면 보이는 대로,
보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데로 믿음을 말하는 자가 되게 하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