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나님께서는 성을 만나야 하시는가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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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28
한 주가 시작되는 아름다운 월요일 아침입니다
아침 일찍 한 성도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그분의 전화를 받다보니 영 묵상할 마음이 아니네요
이렇게 헝클어진 마음도 울 주님 받아주시려니 그런 마음으로 본문을 읽고 또 읽기를 세번해도
아무것도 들어오질 않습니다
제가 어제도 묵상을 올리지 못했는데 오늘까지 안 올리면 이틀을 무단 결석하는 셈이 되지요
그래 한 삼년전에 묵상 한 것을 찾아 그때 그날의 주님과 저와의 만남을 다시한번 추억하며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올립니다
조국에 계신 모든 큐티엠 식구들에게 아름다운 밤이 되길 빌며
그리고 세계 곳곳의 큐티엠들에게는 아름다운 순간들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잉태되길 빌며.........
묵상귀절 - 유다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더라 ....창세기 38장18절
나돌아보기 - 나는 무엇을 안고 남편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가?
다말로하여금 잉태케한 남성은 하나님의 언약이 살에 있는 아브라함의 증손자 유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 언약의 표징으로 남성의 양피를 벗겨 잘라 버리게 하신다
그 할례를 일컬어 나의 언약이 살에 있다고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장 13절에서 말씀하시고 계신다
남성은 아니지만 오늘날 내게 들려지는 그 말씀에 귀를 막을 수 없어 귀를 열고 마음으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것이 진주나 금을 찾아 헤메는 것보다 더한 열심일까?
그런 열심으로 헤메인들 찾아지지 않을 때 모든 묵상의 정수!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는다
그러고보니 하나님의 언약이 살에 있노라하시더니 기여이 육신을 입고 오사 하나님 자신의 살을 주시며 이것은 언약의 살이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주시던 십자가상의 주님이 보인다
할례 시 흐르던 피 생명이 피에 있으니 피는 먹지말라 하시더니 포도주잔을 돌리시며 이것은 언약의 피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주시던 십자가상의 주님이 보인다
먹여야 할 피가 있고 먹지 말아야 할 피가 있듯이 우리에게는 먹지 말아야 할 살이 있고 먹어야 할 살이 있다
그럼 과연 하나님의 언약이 살에 있는 유다는 다말에게 어떠한 살이였을까?
그 당시 율법에 의하면 장자가 후손없이 죽었을 때 동생들이 형수에게 들어가 후손을 얻도록 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동생이 없다면 가장 가까운 시아버지에게서라도...
물론 그것이 결혼생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후손을 만들어 주는 것,
하여 장자의 상속권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다말은 시아버님으로부터 그는 나보다 옳다 라는 판결문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도 우리들에게 허락한 살과 피가 있다
결혼한 부부가 그러하다
첫날 밤의 피와 살로 맺어진 부부가 그러하다.
성경에서는 주님을 우리들에게 허락한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곧 우리가 주님의 피와 살로 한 몸되도록 허락했다는 뜻이다
때론 이 신분 상승에 감이 안잡혀 주님을 헌 신발짝 벗어 집어 던지듯 괘념치 않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성경은 우리들에게 경고를 주고 있다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뜻이다
주님의 피와 살을 헛되이 먹지 말라는 뜻이다
현실속에 적용한다면 주님의 사랑과 용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이다
그럼 헛되이 받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바로 여기에서 내면적인 할례란 말이 나온다
하나님 언약 자체였던 그 씨 되신 주님께서 오시고 난 신약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할례는 구약과 달리 주님의 십자가에 나의 육과 정을 못 박는 것이다
구약 당시 남성을 덮고 있는 표피를 자르던 할례의 행위는 남성의 육체적인 정욕과 힘의 과시등 자아의 온갖 깊은 욕망을 잘라 버린다는 뜻이 있다
결국 할례는 죄성이 깊이 뿌리내린 육을 잘라 버리는 것으로 주님의 십자가에 나를 죽이는 것만이 그 할례의 참뜻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구약의 조상들이 그렇게 잘라버린 표피로 인해 밖으로 드러난 남성의 살에는 예전과는 달리 하나님의 언약이 비로소 살기 시작하는데 하필이면 왜 하나님의 언약이 남성됨에 있었을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인 씨 가 등장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인간의 역사를 이어나갈 예수님에게 족보를 입혀 줄 자들이 그 남성됨을 통해 여성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 철저히 차별화된 씨 로 말미암아 태어날 바다의 모래알처럼, 하늘의 별들처럼 수많은 자손들이 바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언약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남성과 여성이란 성을 만나 주셔야만 되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란 성의 만남없이 어찌 그 씨이신 예수에게 족보를 입혀 줄 수 있을까
바로 그 씨 의 족보 베레스를 잉태한 여인 다말!
다말이 유다로부터 잉태하였더라는 말씀은 어제 오늘 내내 푸른 하늘에 목련꽃처럼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처럼 내 영혼의 창공위에서 사라질 줄 모르니.....
그저 그 영혼의 창공에 유유히 흐르는 다말과 유다의 하룻 밤 구름을 마냥 바라보는 것만도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운 뭉게 구름속으로 나도 들어 가고 싶다는 이 소원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가?
땅에서 새로울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러나 어제 오늘 하나님의 언약이 살에 있다는 그 말씀안에서 다가오는 다말은 분명 새롭다
하나님의 언약이 살에 있는 유다의 씨를 노린 그 여인의 집념이 새롭다
하나님의 언약이 살에 있는 유다와 하룻밤만의 정사로도 잉태하도록 치밀하게 계획하여 실행한 그 여인의 담력있는 지혜가 새롭다
동시에 나는 무슨 집념으로 남편으로부터 세 아이를 낳아 기쓰고 모유를 먹여 오늘에 이르도록 살았을까?
주님께서 아시니 그지없이 평화로운데...
그래도 나는 아직도 잉태하는 꿈을 꾼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들을 잉태하는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