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4일 월요일
제목: 하나님의 영광
요한계시록 21:9-21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질문
1. 하나님 말씀에 척량 받으며 인도하심 따라 어린양의 신부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이며 가고 있는가?
묵상
하나님의 자랑이신 신부, 어린양의 아내를 보일 때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본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빛이 가득한 성, 열두 지파의 이름들, 어린양의 열두 사도의 이름들, 부요와 아름다움과 광채가 가득한 가장 존귀하고 아름다움의 형상이다. 진주와 정금, 보석... 성도의 믿음과 인내를 드러내는 아름다움의 결정체!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시는 곳, 그곳이 어린양의 신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하나님이 받으시기에 합당한 것, 생명을 드리는 헌신이다. 생명을 드리는 헌신의 본을 보이신 주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심도 생명을 드리는 헌신이다. 그게 하나님이 영광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다.
김요한 선교사님의 헌신, 바울같은 전도자로서의 삶, 주변 환경이 문제가 아니고 복음 전하는 우리가 하나님께 열려 있다면 그 곳은 열린 지역이 된다. 하나님께 열려있는 그 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는 모습! 그리고 사용되어서 열린 곳이 되는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에 감동이 된다. 2007년 4월 18일 터키 선교사, 틸만, 네자티, 우르 선교사의 순교 동영상... 내가 그 소식을 접한 건 중국에서였다. 생명을 드리는 헌신을 하셨던 주님이 함께하셨을 그 자리, 순교 당하는 끝까지 함께하셨을 우리 주님, 어린양의 신부로 맞이하며 하나님의 자랑이 되었을 모습, 생명을 드리는 순교의 피를 통해 우리에게 증거하는 예수 그리스도! 오직 영광 받으실 우리 하나님이시다.
나는 부끄럽다. 1000번이 뭔가? 잠시도 죽지 못하는 나의 일상들, 잘 죽기를 기도하면서도 죽지를 못한다. 감동적인 예배를 드리고, 직장 목장 예배를 아웃백에서 귀하게 대접받고 집에 와서는 아들들을 보니 짜증이 났다. 널려져 있는 옷가지들, 아직 옷도 갈아입지 않고 있는 모습, “엄마는 교회 갔다 오면 꼭 그러더라.” 하고 작은 아들이 말하는데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그럴 때 마다 꼭 너저분하게 하고 있었겠지~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짜증이 났는지, 조용한 일상 가운데 예배의 감격을 묵상하고 싶은데, 나의 일상은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 그런 건지, 살짝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지 못하고 알게 모르게 누르고 있다가 집에 와서 폭발이 되었는지... 교회를 다녀오는 길에 있는 이마트에서 시장을 보자니 무거운 짐을 끙끙 거리며 들고 와야 했는데 버스 안에서 시달렸지, 날씨는 춥지, 몸도 좀 피곤하지... 그랬던 차에 집은 너저분하지, 그러니까 그렇게 정리도 못하고 있냐며 짜증을 부렸던 건지... 아무튼 싫었다. 그러고 보면 그 때, 친구들이랑 신나게 떠들고 집에 와서는 엄마에게 괜히 짜증을 부렸던 내가 떠오른다. 나의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엄마에게 괜히 툴툴거리며 도시락을 던져놓고 짜증을 부렸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 앞에서도 그 비슷한 것 같다. 질서없이 늘어져 있는 것도 보기 싫고, 괜히 짜증이 올라왔다. 내가 죽어야 할 집에서도 죽지 못하고 순교하지 못하면서, 생명을 드리는 헌신 운운하는 게 너무도 안 어울린다.
코칭 학원에서 성장 스토리에 대한 글을 공모한다는데 아들이 글을 썼는데 진솔한 표현에 감동이 되었다. 재주가 많다. 쓱싹 쓴 글인데 내가 봐도 훌륭하다.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나누는 진솔성과 솔직함, 그리고 거기서 느껴지는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살짝 가미했는데 흡족하니 안심이 된다. 이제 막내가 쓴다고 하는데... 시작부터 요란만 떤다. 음악을 들으면서 해야 한다며 노래를 틀어놓고.... 내 심기가 건드려지며 못마땅하면서 제지를 할까 싶은 생각에 어찌 생각하냐? 하고 살짝 큰 애에게 물으니, 그 스타일을 인정하라나? 그 말을 하는 녀석의 태도도 맘에 든다. 어찌 이렇게 잘 컸노!! 큰 아들 말을 들으니, 내가 참 좁구나 싶다. 결국, 요란을 떨며 올린 글은 넉 줄에, 제목은 ‘야동’ 이다. 괜스레 주의를 끌고 싶은 마음에 조회수를 늘리고자 올린 제목이다. 우리들 교회에서 배운대로 자신의 죄와 악, 현실을 직시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한 마디를 하는데, 못마땅하다. 게다가, 죄송합니다. 믿어주십시오~ 등의 표현도 혐오스럽고.... 왜 자기가 죄송하고 왜 믿어달라고 굽신거리는지... 자기의 한계와 잘못된 부분을 보고 그걸 반성하며 시작하면 될 것을, 더더구나, 아주 열심히 배운 대로 잘 하고 있다나? 영 자신의 현실을 보지 않고 과장하고 허풍만 떠는 것 같다. 상대의 입맛에만 맞춰서 비위를 맞추는 것만 같은 모습에 또 속이 부글거렸다.
그래도 남편 앞에서는 흉내는 가능하다. 손이 필요하니까 내려와 달라고 전화가 왔는데 아들들 둘은 다 거절한다. 그리고는 얼른 내게 전화를 바꾼다. 집에서 입는 짧은 치마 차림으로 급하게 내려갔는데, 이 추위에 남편은 자기 차로 오라니.... 가서 보니, 나라면 번쩍 들고 올 양이다.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나눌 빵을 사온 건데 꾸러미가 4개다. 내가 부천에서부터 낑낑거리며 들고 온 무게에 비하니 코웃음도 안 나온다. 남편은 아들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싶었다나? 거기에 통과자, 나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하나님이 하신 터키 사역을 통해 하나님 영광을 보게 하심에, 어린양의 신부로 순교하는 아름다운 예수의 증거자들이 이 땅에 있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② 하나님이 보여주심에도 내가 있는 이 곳에서 작은 적용이 안 되어 펄펄 거리는 나의 악을 말씀으로 척량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아들들의 모습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며 수용하도록 기도합니다.
3. 아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인식할 지혜를 주시고 말씀 가운데 바른 처방대로 적용하게 하소서
4. 남편 섬김, 자녀 양육, 맡겨진 역할 가운데 생명을 드리는 헌신이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