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금요일
제목: 만왕의 왕
요한계시록 19:11-21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질문
1.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모시고 다스림을 받고 있는가?
묵상
예수님, 충성과 진실의 이름으로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다스리신다. 말씀의 검으로 심판 하신다. 불꽃 같은 눈과 말씀 앞에 나의 삶이 드러나며 심판 받는 그 사건이 구원이 되기 위한 회개,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말씀에 민감하지 않다. 다만 공동체에 붙어 흉내라도 내며 갈 뿐이다.
나의 일미루기는 특기다. 미루고 미루다 어찌할 수 없을 때까지... 그 때가 되어서야 움직여지는 게으름 많이 싫다가도 이제는 그런 나를 이해하고 수용한다. 어쩌겠나. 그냥 그런 자신조차 사랑하며 가야지... 그런 나를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해서 그게 고쳐질 것 같으면 벌써 고쳐졌겠지. 차라리 미워하지 않으면 성질이라도 사나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나일망정 괜찮다고 잘 보듬기로 했다.
신우회에 크리스마스 간식에 대해 메시지를 보냈는데 반응이 없다. 그냥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기독 신우회가 잘 모여지지는 않아도 기도 제목이라도 나누며 신앙을 드러내기에 서운하고 섭섭할까 싶어 의견을 모으려고 했는데, 아무 말씀도 없다. 화욜에 새로운 분과 말씀을 나누며 내 신앙 여정을 오픈하였다. 기간제로 오신 분이셨는데 아들에 대한 이야기와 당신의 이야기들을 내놓으셨다. 감사하다. 우리들 교회에서 배운 걸 아직, 흉내만 내고 있지만 나의 찌질함을 중심으로 내놓게 되니 더 잘 통하는 것 같다. 여전한 방식으로 1,2월호 큐티책을 돌렸는데, 고맙다시며 크리스마스 간식에 보태라고 헌금을 가져오셨다. 아무 반응들이 없길래 살짝 마음도 상하고, 그런 게 무에 의미가 있을까 싶어 올 해는 접으려 했었는데... 할 계획이 없다고 돌려보내고 나니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표현이신 것 같아 또 마음을 돌렸다. 급히 전화로 물건이 있는지 묻고, 예약하고... 마음은 기쁘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표현해주셔서 감사하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에 하나님 말씀으로 듣고 순종하는 게 아직도 늦고 더딤을 봤다. 어렵게 고마움을 표현하시고 헌금이라고 갖고 오셨는데 거절하는 모습, 미성숙함이다. 간식을 돌리며 어제 갖고 오셨던 헌금, 다시 주시라고 말씀드렸다. 이렇게라도 한 템포는 늦지만 때늦지 않은 순종을 그나마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나는 추운 게 싫지만, 그렇다고 내가 온도를 높이거나 히터를 틀지 못한다. 그게 내 신앙의 양심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렇게 적용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상대를 만났을 때, 척 판단이 되면서 어쩌면, 그럴 수가! 그렇게 된다. 나의 악, 나의 생색병을 용서하옵소서!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한 템포 늦지만,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발견하여 순종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②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제물이 되시고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전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③ 이 세상 왕은 부족하고 악할지라도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우리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알게 하시고 충성과 진실로 다스리시는 모습을 만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 끊임없이 남을 판단하는 고질적인 나의 병이 치료되기를 간구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하며 깊이 만나기를 기도합니다.
12월 22일 토요일
제목: 그리스도로 더불어
요한계시록 20:1-15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질문
1. 내가 순교할 곳은 어디인가?
묵상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한다신다. 복이 있고 거룩하다신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있는 이 곳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죽지 못해 팔딱거린다.
생각도 안 하다가 핸드폰 요금 나간 걸 확인하니, 너무 많다. 절약하라고 제한을 해뒀던 남편에게 원망이 된다. 핸드폰 요금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게 속상하고 섭섭하다. 생각 좀 하고 쓰라는 말이 원수의 말로 들리는데, 그 말에 순종이 안 된다. 원수의 말을 통해 새롭게 하라고 하시는 말씀에 순종할 수 없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동료들과 카톡 몇 번하고 검색 몇 번하고 그것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생각 없이 쓴 게 뭐라고 흥!! 속상할 뿐이다. 화가 나서 핸드폰을 아예 꺼버렸다. 내가 핸드폰을 사용하나 봐라~ 그래도 분이 안 풀린다. 씩씩~ 거리다가 내가 왜 그렇게 분이 나는지, 나를 보게 된다. 내가 왜 그럴까?
아들보고 일어나라 일어나라 하지만, 꿈쩍도 안 하더니, 결국 중국어 숙제는 물론, 책도 없단다. 그 말에도 분이 난다. 답답하다. 지난 주에도 창피를 당하는 것 같더니..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아이의 무기력함에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난다. 자존심도 안 상하나? 한 번은 그럴 수 있고 두 번은 그럴 수 있다지만... 선생님께 “죄송해요~ ”하는 그 말에 더 분이 난다. 가장 죄송할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니던가? 왜 그렇게 자기를 존중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것으로만 보이던지... 그냥 자기는 못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 같은 그런 태도만 다져지고 학습이 되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고 측은하다보니 화가 난다. 책을 찾지도 못한 상황에서, 숙제도 안 한 상태에서도 앉아서 빵을 먹는 꼴이라니... 정말 싫다.
아침 일찍부터 바쁘다. 차를 사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남편도 원서 접수로 바쁜 하루라는 걸 알고 일찍 서둘렀지만... 그래도 늦어진다. 치즈와 초코로 13개를 준비하고, 아이들 것을 준비하는데 부족하다. 아침에 들른 곳만 세 군데다. 마지막 들른 보리수에서는 8시 14분이다. 포장지가 준비되지 않았으니 그것 접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내 마음이 조급해서 그러니까 좀 서둘러달라는 말에 어제 저녁에 준비하지 그랬냐 하신다. 제가 좀 게을러서 미루고 미루다 꼭 닥쳐야 한다. 그게 평생 습관이라 고치고 싶지만 잘 안 된다. 내가 말해놓고도 참 죄를 잘 본다 싶어 감동을 받는데, 아저씨도 마음이 녹으시는지 그걸 시작으로 14억 날린 얘기부터... 분주한 아침이지만 이야기꽃이 피었다. 아~ 전도는 이렇게 하는거구나 싶은 게 예수님 믿으란 얘기와 우리들교회 소개에 혼자 뿌듯하다. 나는 어찌 그리도 진심을 전하는 말을 잘 하는가! 그것도 이 바쁜 아침에!!
손이 부족하다. 보따리 보따리를 들고 끙끙대며 들어와 여기 저기 각각의 실마다,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 오신 것을 축하하며 한 해 마무리 12월과 새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시길...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승지기독신우회 드림~ ’마음을 전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게 은혜고, 감사고 흐뭇하다. 아이들과도 나누고, 동학년과도 나누고 나눌 수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그런데 내 마음, 한편은 무응답, 표현 없음에 대해 살짝 섭섭함이 있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또 그냥 나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도... 나의 죄성이고 나의 생색병이다. 내 안에 이뤄지지 않은 구원이다. 그런데 보리수 아저씨랑은 새로 사귀었다. 저녁에 한 번 더 들렀는데, 이번엔 한 꾸러미 빵까지 싸주신다. 남편이 내 호들갑에 웃는다.
감실에서 이런 저런 말씀을 나누는데 감사하다. 그리고 마음이 느껴져 또 감사하다. 이렇게 대면하고 나눌 수 있다는 게 고맙고.... 한편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에 대해 들리는 말씀에 대해 내가 나의 의견을 얘기하게 되면 상대를 폄하하는 것 같아서 그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것도 잘 한 것 같다. 조금 지혜가 생긴 것 같아 뿌듯하다.
손가락 끝이 갈라져서 아프다. 아주 작은 갈라짐인데도 온통 신경이 쓰이고 물대기가 겁이 난다. 살짝만 스쳐도 아프다. 학기말 정리의 분주함과 마무리, 청소가 미뤄져 청소까지 하고나니 너무 늦었다. 내가 일이 빠르지 않기도 하거니와, 모여서 생각을 모으는 시간이 즐겁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퇴근이 늦어졌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 정말 싫다. 자기 얘기만 쏟아놓는 건 더욱 싫다. 쌍둥이보다 연년생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며 남의 말에는 전혀 공감하지 않고 자신의 얘기만 하소연하는 분의 말을 듣자니 분이 살짝 올라왔다. “쌍둥이도 키워보셨어요?” 하고 여쭈니 아니란다. 쌍둥이 키우기도 무척 힘들거든요~!! 들을 귀가 없는 그 분에게 그 말은 더 이상 꺼내지도 못했다. 내가 보기에도 연년생이 녹록지 않다는 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어쩌면 자기만 그렇게 힘들다고 쏟아내는지... 역시 전에도 느꼈던 이런저런 판단하고 싶은, 또 시작되는 나의 병이다.
목장 예배에서 어머니 얘기를 꺼내는데, 나는 여전히 쏟아내고 쏟아내도 다 퍼내지 못하는 나의 악이 그득함에 막막하기까지 하다. 언제까지일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이 한 번도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룻이 나오미와 그런 아름다운 동반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 이후다. 나는 그 고백이 아직도 안 된다. 어머니의 하나님은 내 하나님과 다른 분 같다. 하나님을 알고는 그럴 수가 없다. 그런데도 나는 구원을 위해 애통함이 없다는 건, 그 인생이 불쌍하여 애통하며 수용하지 못하는 건, 나 역시도 하나님을 바로 만나지 못한 거다. 하나님을 알고는 이럴 수가 없다.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설거지 하시지 말라는데 고집부리며 물 질질 옷에 흘려가며 설거지를 하시는 것도 싫다. 얼굴은 피곤에 찌들었는데도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일을 안 하면 남도 당신처럼 자신을 판단할까 무서워서 그렇게 꼭 일을 해야 한다 생각하시는 적용으로만 생각되니 저급하게 생각된다. 그냥, 매사에 왜 그러실까? 하는 생각들이 가득하다. 그러니, 얼마나 에너지가 쓰이고 피곤하겠는가? 자꾸 멀리하고 싶어지기만 하다. 나는 꼭 죽어야 한다. 죽겠습니다. 죽여 주소서. 잘 죽게 하소서. 기도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직장 목장 숙제를 잘 한 것 같은 뿌듯함에 감사합니다. (영해, 혜영샘, 보리수, 실무사 샘, 동료들)
②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올바르게 알지 못함을 배우게 하시고, 내 속에 구원이루지 못한 부분도 말씀으로 온전히 통치될 곳으로 변화시켜주실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합니다.
2.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올바르게 알고 배우겠습니다.
3. 내가 있는 이 곳에서 잘 죽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