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요셉처럼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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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26
창37:1-17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까지 이어지는 족장사(가족이야기)를 읽고 묵상하면서 역사는 과연 죄악의 역사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그런데 성경만이 인간의 죄와 실수들을 감추지 않는군요.
어떤 가족사라도(물론 이 가족사가 민족사로 확대전개 될 경우에는 더욱 더)가족의 죄와 실수들을 드러내려 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간이 죄인요, 역사가 죄의 역사임을 낱낱이 드러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죄악의 역사를 그냥 치닿는대로 버려두지 않으시고 만약 내버려둔다면 역사는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이 멸망의 역사를 구원의 역사되게 하시려 하나님이 친히 역사의 벽을 뚫고 이 인간역사에 개입하시고 간섭하십니다. 그래서 역사는 본질적으로 죄악의 역사요 동시에 구원의 역사입니다. 아멘.
최근이라면 최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 역사학계가 조금씩 역사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그들 스스로가 역사를 은폐의 역사라고 규정하고 있기때문입니다. 여태끗 역사가 왕조사 중심으로 쓰여져 많은 부분 스스로의 치부는 감추어지고 도리어 감쪽같이 미화되며 역사의 진실을 은닉시켜왔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인류구원을 위해 이 지구상의 한 민족(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족이야기(족장사)로부터 그들의 치부를 드러내며 구원이 무엇인지 보게 합니다.
오, 이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야기 한 복판에 내가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진정 내가 죄인임을 알고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에 이르는 구원의 감격을 맛봅니다!
나는 죄없다 하는 자는 스스로를 속일뿐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 37장부터는 야곱의 가족 이야기 그것도 야곱이 노년에 얻은 요셉을 주인공으로 마지막 50장까지 전개되고 있습니다.
야곱의 딸이 강간을 당하고(34:2) 두 아들이 집단 살인극을 벌이고(34:25), 나머지 아들들은 재물을 약탈하고(34:29), 큰 아들 르우벤은 서모(庶母) 빌하와 통간하며(35:22)...
야곱이 또 실수합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도 실수를 합니다. 이런 실수가 큰 죄를 저지르게 하는 원인이 됩니다. 야곱은 여러 아들 중에 유독히 요셉만을 귀여워합니다(37:3). 좋은 색깔있는 채색옷을 요셉에게만 입혀줍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미움과 시기의 대상이 됩니다. 게다가 요셉마저 형제들에게 미움을 싸는 행동을 합니다.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합니다. 또 자기가 꾼 두번의 꿈이야기를 형들에게 자랑하듯 합니다. 그 꿈이야기는 형제들이 심지어 아버지 야곱과 어머니 레아가 자기를 둘러싸며 절한다는 꿈입니다. 이 꿈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잔뜩화가 나 있습니다. 사실 요셉이 꾼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입니다.
사람은 약한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되는 것을 보면 잘 인정해주려하지 않습니다. 그것도 나와 관계가 별 좋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특히 자랑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은지는 부끄럽게도 얼마 오래되지 않습니다. 아마 열등감이 많다보니 나도 모르게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해주신다는 것을 알고나서는 매우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오늘 아침에 철부지 열일곱 요셉처럼 내 자랑을 일삼아 왔던 종의 지난 날을 돌아봅니다. 나를 통해 상처받은 분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