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에둘러 만나지는 벧엘의 매력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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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23
창세기 28장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 내리락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베개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본 이름은 루스더라
창세기 35장
9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10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11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13 하나님이 그와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 가시는지라
14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5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
오늘 지나간 본문을 다시 올려보는 것은
어머님 병시중 들라
차 몰게지 집 몰게지 가게 몰게지 빌딩 몰게지
차 보험 가게 보험 건물 보험 생명 보험 등등 가지 가지 보험료 붓느랴
하루도 어김없이 이 몸 굴려 일할라
또한 내 평생하는 공부 있어 그 공부할랴
그러다 기여히 나도 병나 대강대강 묵상을 했더니 이건 영 아니올시다네요
그래 유독 벧엘에 관한 본문들을 다시 끄집어 내는 것은 벧엘의 신적 매력때문이지요
신이시며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야훼의 원시적인 숨결이 물씬 물씬 풍겨나는 그곳을 잊을 수 없어 오늘 나는 울창한 원시림의 공기을 잃어버리면서 서서히 야성까지 잃어버린 이 21세기를 거슬려 다시 그 추억의 언덕인 벧엘로 올라가 보렵니다
한 삼년전 늦가을 황혼녁이였습니다
한국에서 아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사십대 이혼남이였습니다
자신을 좀 거두어 주면 어떻겠냐고......한국은 너무나 먹기 살기 힘들다고 캐나다 갈
수 있도록 해주면 거기서 한번 살아보겠노라고.........
어디 불빛 없는가고 살펴보고 살펴보다 마지막으로 내게 전화를 걸었을 그 목소리를 눈가에 담으면 눈물이 되고 가슴에 담으면 애가가 되고 비장에 담으면 피눈물이 되는 아프디 아픈 상처로 나는 밤새 침상에서 헤메이다 잠이 들었네요
그렇게 잠들었는데 비몽사몽간에 나는 지극히 높은 곳으로 초대되어 올라가 있었습니다
성령이 내 영을 그렇게까지 높이 들려 올리는 경험을 하면서 선지자들이 이런 식으로 아버지와 대면을 하였겠구나 상상이 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인생들이 겪는 온갖 첫 경험들이 그러하듯 나도 그런 첫 경험이 그 첫 순간에 온전히 이해되는 것이 아니기에 알 수 없는 떨림들로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어쩜 그것은 순전히 이해되지 못해서 무서운 것만은 아니였습니다
내 자신이 평상시 발을 딛고 사는 지상의 낮고 낮은 자리에 비해 그순간 내가 직면하여 서있었던 무한한 신비가 깃드인 하늘 꼭대기 높디 높은 자리로 인하여 생기는 아득한 거리차를 나는 분명히 내 육안의 눈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올라와 있는 그 자리와 내가 머물고 있는 지상과의 그 거리감을 바라보는데 도무지 내 육안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자 이내 내 몸은 두렴에 떨기 시작한 것이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내 의식의 한쪽은 여기가 바로 그 야곱이 보았던 하늘 꼭대기가 아닐까 싶으면서 그 신비와 맞닿아 있는 정경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본즉 그곳엔 나의 소시적부터 행한 일들이 기록된 수첩들이 보였습니다
야곱은 본즉 하늘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았다는데............
나는 내가 본즉 소상히 기록되어져있는 작은 책들을 보았습니다
또 내가 본즉 한 순간에 그 모든 작은 책들이 내 앞에서 사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오직 그 무한한 신비감과 순전함 그리고 거룩함만이 있었을뿐입니다
그 시원함과 그 깨끗함과 그 온전함과 그 당당함은 이루형용할 수 없는 힘이 되여 나를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눈을 떴습니다
커튼새로 새벽빛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로 지난 밤 그 도와달라는 그 애잔한 음성속에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잠들었던 나 자신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길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나를 높이 들리워 올려주사 나의 죄과를 흔적도 없이 사해주신 아버지의 사랑만이 그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나는 올해부터 그 사람에게 매달 첫주마다 한달에 300불식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주께서 홀로 있는 야곱의 영혼속에 선명한 환상과 말씀으로 생기를 부어주셨듯이 그 사람에게도 분명 다시 살아보도록 영혼의 야성을 일깨울 생기를 사방으로 부터 불러 그에게 부어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이 아침입니다
벧엘의 사건은 한 인간이 하나님과 결탁된 축복을 사기쳐서라도 자신 것으로 소유하려는 집념이 없었다면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사건입니다
나도 살면서 나 스스로 경악할정도로 지은 죄가 있다면 하나님을 개입시켜 조금 미진한 진실을 더욱 더 진실되게 미화시킬뿐만이 아니라 아예 거짓조차 진실로 위장시키는 죄악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나를 더욱 더 견고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보여지도록 하나님을 얼마나 많이 등장시키는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특히 묵상하다보니 에서는 그의 입에서 전혀 나오지 않는 하나님을 나는 야곱인양 얼마나 자주 자주 하나님 하나님을 불러대는지...............
그러나 바로 이런 나를 하나님께서는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한 말이 어떠한 말들입니까?
도무지 내가 한 말들은 책임을 지기엔 아득한 말들
감당하기엔 버겹다못해 아찔한 말들
완성하기엔 언제나 몇프로가 모자라는 완벽한 말들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런 말들을 버리지못하고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다시는 그 완전함을 꿈꾸지 않으리라 못난대로 살아가리라 결심하고나면 어느새
나는 또다시 완전함을 꿈꾸며 또다시 하나님 하나님을 불러댑니다
나는 아주 어릴적부터 세계를 우주를 꿈꾸었습니다
기막힌 병입니다
남들은 전혀 내색하지 않고 얼마든지 잘 살던데 나는 도무지 그게 안됩니다
내 기도를 듣는 사람들은 나를 일컬어 말하길 생긴건 조그마한데 어찌 기도는 그리 우주적이냐
였습니다
나의 벧엘 사건은 그렇게 쥐방울만한 한 소녀가 겁도없이 세계를, 온 우주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훔쳐온 꿈과 그 꿈으로인하여 터져나온 기도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나는 훔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벌거숭이로 태어난 자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세상 어느 신이 자기 이름을 무슨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노는 초라한 한 계집애한테 다가오겠습니까?
허나 사기친 야곱을 때마다 일마다 찾아오셨듯이 내게도 때마다 일마다 찾아오셨습니다
이게 나의 벧엘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만남이 곧 나의 벧엘의 시작인 것이였습니다
내가 의식하는 나의 벧엘은 열 두살 대낮의 환한 햇살이 비치는 고향집 대청 마루입니다
휴학계를 낸채 쉬고 있었던 나는 무지무지 아파 이내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 성경을 펼쳐들고 무릎 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성경 읽으면 지옥말고 천당으로 갈 수 있나요?
성경 읽을터이니 천당으로 날 보내주세요. 라고..........
읽다가 읽다가 얼마나 성경이 어려운지 닫았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성경에서 만난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그것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한 하나님이셨습니다
사실 열두살 그 나이에 태초란 언어도 이해되기 어려운 단어인데 나는 어떻해 그 태초란 말을
이해했는지 신비지요
언제 죽을지모르는 막내 딸을 위한 내 어머님의 기도로 역사하게된 성령님의 강권적인 감동이였겠지요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로부터 늘 천지를 지으신 태초의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된 것이지요
내가 아무리 큰 죄악을 저질러고 있어도 그분께선 나를 떠나지 않고 계셨습니다
이 천지를 지으신 태초의 하나님을 나는 12살의 두 곱인 24살때 깊이 만나게 되였습니다
벧엘의 재현이겠지요
야곱이 30년 에둘러 돌아 와 만나게 된 벧엘처럼 더욱 더 심층화된 나의 벧엘이였지요
그때 나는 12년전 유년시절의 내 집 대청마루가 아닌 한반도의 한 여름 태양이 내리쐬는 서해안의 물결치는 섬에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만 목말라 있었습니다
나의 젊은 전신은 이성에게 목마른게 아니라 도무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목말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나는 그때 한 백여일간 초자연적인 현상속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나는 성경이 이렇게 탄생 되어지는 것이로구나 라고 이해할만한 지각이 그때부터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성경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그후 12년후인 36살에 나는 캐나다로 이민오게 되였습니다
그때 내 품속에는 우주와 세계를 꿈꾸는 자답게 우주와 역사적인 언약의 태반을 지니고 태어난 세자녀들이 각기 8살 6살 1살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후 12년 지니자 어느덧 나는 48살이 되여 있었고 비로소 그때 나는 거센 영육간의 폭풍을 온 몸으로 통과하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누가 뭐라해도 나의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도록 내 몸에는 선명한 그리스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자가 되여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리스도의 앉고 일어섬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유년의 12살 그 나이 세곱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리스도가 읽어지는 것이였지요
지금 나는 이제 또 12년후인 60살을 바라보며 그 때 나의 벧엘은 어떠한 모습일까 사뭇 기대가 되는 연륜으로 이 아침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12살의 세곱보다 훨씬 더 많이 에둘러 다시 돌아 온 벧엘엔 무엇이 있을까?
한 마디로 말하라면 그리스도만이 있을뿐입니다
나는 벌써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30년만에 돌아 온 벧엘에서 다시금 말씀해주시는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말라 너는 이스라엘이라라고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그 속사정을 훤히 아는 그리스도만이 있을뿐입니다
한 개인이 한 나라로 우뚝 서기까지 걸린 세월이 장장 야곱 개인에게는 이십대 초반에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고도 삼십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입니다
또한 야곱 전 가문이 나라로 형성되기까지는 아마 한 사백 오십여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 비로소 우리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이란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을 세계사의 한가운데로 던져내십니다
그리고도 야곱에게서 왕이 나기까지는 1200년후의 일이였습니다
내가 경험한 하나님은 이렇듯 서두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역사가 그분의 것이기에 그분께서는 언제나 자기의 시간에 맞추시는 분이십니다
결코 내 시간대에 그분의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로인하여 나는 쉬기도 합니다
만일에 내가 다 이루어야 할 과제라면 나는 어찌 쉴 것입니까?
여유와 안심와 평안함은 그렇게 그분의 유구한 세월의 안목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오십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는 내가 만난 벧엘의 신성한 매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보듯 야곱을 30년만에 벧엘의 자리로 불러 앉혀놓으시곤 더이상 야곱의 속성인 죄를 가지고 논하지 않습니다
오히여 야곱의 막을 내릴 것을 선포하심으로 죄와는 분리된 거룩한 이스라엘을 또다시 새롭게 강조하며 등장시켜주십니다
마치 저를 그 높은 곳으로 불러 모든 죄과를 치워주었으니 이제는 나와 함께 왕노릇 하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처럼 당당하게 살으라는 듯......
그러고보면 우리들의 가장 원시적인 숨결은 왕의 숨결이 아니였나 싶네요
모든 것을 다스리고 정복하고 활개치며 다니던 그 에덴의 원시림이 오늘따라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