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보다 우승이 주요해
작성자명 [박종열]
댓글 0
날짜 2007.05.23
07-05-23 창세기 35:1-22 ‘승리보다 우승이 주요해’
며칠 전부터 아픈 허리 때문에 밀린 일들이 많아 아침부터 부산하게 움직여
아내를 태우고 집을 나섰는데, 날씨는 꾸물꾸물하고 길까지 밀립니다.
양재 로타리 굴다리로 진입하다가 양보를 거부한 차 때문에
앞서기 경쟁을 벌이느라 아내가 읽고 내가 풀어주는 큐티도 대충하면서
아내의 일터에 도착할 때 쯤 날아 온 아내의 한 마디.....
‘승리보다 우승이 중요해’
내가 옆 차와 유치한 경쟁을 한 끝에 그 차를 멀찍이 따돌리고
승리자의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을 때 나에게 날아온 아내의 멘트,
오랜 선수 생활에서 터득한 경쟁의 법칙이 오늘의 본문과 연결되어
덜 떨어진 남편, 아직 되었다함이 없는 내 옆구리를 사정없이 찔러옵니다.
성경을 열심히 보기 시작하면서 주신 말씀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단어가 온유와 겸손이라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단어가 구속사라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나를 끌어가시는 다이내믹한 하나님의 걸음과
힘 있는 손을 느끼며 길흉화복을 주관하시는
세밀한 하나님 사랑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 아침, 샤워를 하고 나와 몸을 닦던 중,
다리를 닦으려고 한 다리를 드는 순간 삐끗한 허리 때문에
그날 간신히 예배를 보고, 거를 수 없는 일대일 양육을 할 때에
그날따라 빈 벤치가 없어, 점심 식사할 때 사용했던 돗자리를 펴고
동반자와 은혜의 시간을 가진 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게 무리가 되었는지
이내 찾아온 통증으로 책상에 앉을 수도 없을 정도로 며칠을 보냈습니다.
엊그제 월요일, 전 주 수요일에 나온 명함을 가지고
본격적인 영업을 계획한 첫날인데 허리에 통증을 주신
구속사 속의 하나님의 계획이 해석되지 않아 통증을 참으며 기도하다가
책상에 앉을 수 없게 하심은 일어나 걸으라는 말씀으로 해석하고
전부터 봐두었던 목 좋은 업소와 그간 나누던 메뉴 리모델링 상담을
마무리하고자 집을 나섰습니다.
일어나기도 힘들었지만 몇 걸음 걷기 시작하니
오히려 걷기에 편하고 구부리기에 힘든 상태로 통증의 양상이 바뀜을 느끼며
환자의 모습을 하지 않고 그 업소에 도착하니 그 곳 매니저 왈,
“확장한 공간에 떡볶이 메뉴를 신설하기로 했는데 제 때 오셨군요”
앞으로의 상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아프지만 피할 수 없는 일, 저녁에 아내의 포차에 도착하여
낯선 여자 두 분을 아내로부터 소개받고서야 그동안의 오해가 풀리고
엊그제 약속이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우연히 들른 지방의 어떤 목사님으로부터
교회 성도를 위해 우리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도
무심히 흘려버린 적이 있었는데, 며칠 전 그 목사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한 가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남편과 이별한 여자 성도를 도와주는 건 좋은데
왜 꼭 자신의 서울 나들이에 동행시키려 하나, 남의 눈도 있을 텐데....
이런 류의 불순한 생각이 들었던 건, 많이 쉰 목소리 때문에
그 목사님을 당연히 남자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
뵙고 보니 인자하신 여자 목사님이었습니다.
그리고 엊그제, 월요일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도 까맣게 잊어버렸던 겁니다.
말씀을 나눠보니, 그 성도는 형편 상 점포가 아닌 포장마차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이번 사업은 점포 대상 프랜차이즈 사업이었지만 딱한 사정을 듣고 보니
도와주어야 할 것 같아 자리를 옮겨, 소스 만드는 법부터 오뎅 국물 내는 일까지
자세히 적어주고 일어서려는데,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열매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며...
사실 소스 레시피는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얼마 전 이곳 게시판 답 글을 통해서
공개한 적도 있고, 한 번도 성도와 형제들에게 돈 받고 가르쳐 줄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주님의 종은, 하나님의 뜻이라며
자신들에게는 생업의 열매를 위한 씨앗이기 때문에 값을 치르겠다고...
가난한 과부에게는 적지 않은 돈을 터인데
사업의 첫 열매를 과부의 귀한 물질로 받게 하신
구속사 속의 하나님 계획을 느끼며 고맙게 받았습니다.
형제와 아비를 속이고 방랑의 길을 떠나
연단의 시간을 거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던 야곱에게
새 이름을 주시고도 이어지게 하시는 구속사 속의 길흉화복이
이제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느낌입니다.
사랑하는 딸의 치욕을 통해 피의 복수를 하게 하시더니 다시 회복시켜,
지나간 불순종의 역사를 상수리나무 아래에 다 묻게 하시고
새 언약으로 축복하시며 영광의 앞날을 약속하시려는 순간
다시 터진 장자의 실족을 통해 구속사 속의 길흉화복이 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음을 깨닫게 하심에
내가 세상에서 좋아하던 말 ‘좋은 날’이
내게 좋은 날이 아닌 하나님의 좋은 날이 되기를,
오직 그 날을 소망하며 살기를 간구합니다.
그래서 작은 승리에 연연하는 세속사의 삶이 아닌
패배에 감사하며, 그 패배를 딛고 일어나 결국은 우승하기까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구속사 속의 삶이 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