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겜의 재단과 벧엘의 재단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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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23
창35:1-22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십니다(35:1). 도대체 거기란 어떤 곳입니까? 거기란 야곱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곳입니까? 거기란 다름아닌 벧엘입니다. 벧엘은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밧단아람으로 도망하던 때에 하나님이 나타났던 곳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사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십니다(35:1).
그러나 야곱은 벧엘로 가지 않고 세겜에 와서 단을 쌓고맙니다(33:20). 야곱은 벧엘이나 세겜이나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께 단을 쌓기만 된다고 생각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겜의 재단은 자기를 위한 재단일 뿐입니다. 자기안정과 자기안일을 위한 재단일뿐이지 그곳에 과연 나를 구원해 주신 감격과 감사가 흘러넘치는 재단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의 벧엘을 생각합니다. 나의 벧엘을 생각하는 순간, 감사요 감격일 뿐입니다. 그곳에 진정한 예배가 살아 움직입니다. 나의 벧엘이 없는 순간 세겜의 재단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이 시간, 벧엘의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합니다. 쉬임없이 중단없이 나의 벧엘의 하나님, 환란날에 나타나서 나를 구원해 주신 그 벧엘의 하나님에게 나아가고자 합니다.
오, 주님, 이 종이 어떻게 하면 벧엘의 하나님께로 끊임없이, 중단없이 나아갈 수 있나이까?
이방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깨끗케 하라 하십니다(35:2). 하나님외에 그 어떤 것도 사랑해서는 안된다 하십니다. 하나님외에 사랑하는 그 모든 것을 버리라 하십니다. 심지어 나 자아도 버리야 하십니다. 결국 나를 버려야,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 내가 연연해 하는 것들, 그 모든 것을 버려야, 벧엘의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버리고 곧 떠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야곱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그의 모든 가족들은 벧엘의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모든 이방신상을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그곳을 곧 떠나는 것인데, 그러나 야곱에게 떠나는 것은 곧 두려움이요 죽음일 수도 있습니다.
주변 마을에서 야곱의 가족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떠났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면 고을사람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시어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게 하셨습니다(35:5)!
오늘 아침 묵상에서 이렇게 자기를 버리고 자신을 깨끗케하는 자는 하나님이 친히 돌보신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주님, 오늘도 내일도 이 종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버리고 환란 날에 나를 구원해 주신 구원의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이렇게 나아가야만이 하나님안에 거할 수 있나이다. 오, 하여 마침내 하나님도 내안에 거하십니다.
주님, 오늘 아침, 창35:5절 말씀을 다시 묵상합니다.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신고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
그렇습니다. 주님, 우리가 주님안에 거할 때 과연 주님의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나이다. 혹, 고통과 괴로움이 따르더라도 이길 수 있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