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6일 목요일
제목: 작은 책
요한계시록 10:1-11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질문
1. 작은 책을 매일 먹으면서 배에 쓴 적용을 하고 있는가?
묵상
첫 눈이 폭설이다. 덕분에 찬란하게 빛나는 눈부신 오후를 선물해주셨는데, 게다가 먼 길 위험하다고 일찍 퇴근하라는 말씀에 수요 예배를 위한 예비하심으로 기뻐하며 4시에 출발했다. 남편은 폭설이니까 교회는 가지 말라는데 그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고 출발! 가는데, 보통이 아니다. 10여분이면 갈 거리 1시간이 걸리고 우리 동네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남편 말에 순종하지 못한 악을 회개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폭우로 수요 예배 말씀이 홈피에 올라왔던 걸 살짝 기대하며, 그런데 역시나! 수요 예배 말씀이 홈피에 올라왔다.
입에는 정말 단 말씀인데 적용은 쓰다. 적용하고 순종하기가 어렵다. 나는 더디가도 너무나 더디 간다. 좋은 말씀, 최고의 말씀, 최고의 해석에 감동하며 기뻐하며 감탄하지만, 나의 생활은 따라가지 않는다. 미루는 일, 미루고 또 미루는 일은 나의 특기다. 아이들 와이셔츠도 물에 담가놓은 지가 언제인데 아직껏 여전히 물 속에 있다. 어느 날 부터인가 설거지 적용은 정착이 되었다. 설거지는 밀리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그게 된 거 보면, 다른 적용도 할 수 있으련만 집에 오면 쉬고 싶고 눕고 싶고 자고 싶다.
부장단 구성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부장단 구성도 학년구성도 어긋나지고, 적어도 마음 맞는 두 사람은 있어야 교육과정 재구성이나 학년 운영이 될 수 있을 거란 계획아래 머리를 굴려보지만 머리가 아프다. 결국, 가장 최선을 찾아 결론난 게 나만 혼자 떨어지게 되었다. 부장도, 학년도 혼자다. 주신 환경이라 생각하여 순종할 마음은 있지만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그렇잖아도 일머리가 없는 사람인데 얼마나 오락가락할지... 하지만, 계속 모든 상황에 내가 할 일은 순종이라 생각하니 무게가 좀 가벼워진다. 그동안 훈련 받은 것, 얼마나 성장하고 자랐는지 테스트에 통과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모험이다.
12월 7일 금요일
제목: 척량하되
요한계시록 11:1-13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질문
1. 나는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척량하고 있는가?
묵상
나는 사건에 일희일비한다. 남편의 현희 스타일~ 노래에 즐거워하고 그 고백에 감동하다가 어머니의 전화 내용을 듣고는 부글거린다. 아들들이 공부를 못 하는 게 먼 교회를 가기 때문이니까 가까운 교회를 가라는 것이 주요 말씀이다. 아들들 잘 가르치라는 훈계를 들었다는 남편, 그 얘기를 전해 듣는 나는 불편하고 요동한다. “어머님이 왜 그러셔? 당신 영역도 아닌 일에 왜 그렇게 참견하신대? 그렇게 잔소리를 하셔야 속이 시원하시대?” 꼬인 것들이 건드려지니까 남편에게 쏟아 붓는데, 남편이 “그건 우리들 교회 버전이 아닌데? ”하는 말에 내 말이 그쳐졌다. 그제야, 내가 들어야 할 말을 하나님이 어머님을 통해 내게 부어주고 계시는데 괜히 내가 부글거리는 거라는 게 보인다. 더 깊은 회개로 나아갔던 나오미처럼 옳소이다가 안 나오는 나의 악이었다.
“맞아요. 내 삶의 결론이지, 내가 아들들을 잘 지도하고 가르쳐서 아들들이 공부를 잘 하면 먼 교회를 가든지 가까운 교회를 가든지 어머님이 참견하시지 않을 텐데.... 둘째 형님네도 큰 애가 공부 잘 해서 의대에 딱 들어가니, 많았던 말씀들이 쏙 들어갔잖아요. 어머님 걱정이 옳소이다. 내가 들어야 할 말이네요. ” 그제야 남편도 “어! 이제야 정답이네.” 한다. 나는아직, 단번에 순종이 안 된다. 한 템포 늦다. 그래도 한 템포 늦게라도 듣고 그칠 수 있어 다행이다.
그래도 내 한 쪽 마음에서는 어머님이 자꾸만 남편의 마음을 불편하게 쪼는 게 싫다. 그냥 내버려둬도 불안하고 힘든 남편인데 자꾸만 들쑤신다. 전화하고 싶지도 않고 전화 받고 싶지도 않다. 내 앞에서는 아무 말씀 안 하시지만 꼭 그렇게 뒤에서 남편을 두드리는 어머님이 못마땅하다. 나는 아직, 어머님께 우리들 교회에 나간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아주버님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다 저렇다 옮긴 교회에 대해 묻지도 않았고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미 다 알고 계시다니, 참 이상하기도 하다. 아들들에게 물어서 아셨는지... 어쨌든 먼 교회에 나가는 게 어머님도 계속 신경 쓰이시는가 보다.
말씀으로 척량하기... 참 잘 안 된다.
12월 8일 토요일
제목: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
요한계시록 11:14-19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질문
1. 내 안에 그리스도의 나라, 그리스도의 통치가 되지 못한 부분은 무엇인가?
묵상
아들에게 오늘 아빠가 목장 예배로 데리러 갈 수 없고, 밤에 눈이 온다고 했으니까 학원에 가지 말고 집에서 공부하라고 했다. 부리나케 퇴근하고 목장 예배 준비에 마음이 분주하고, 아이들 저녁 준비에 부산하다. 그런데 큰 아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7시가 되어서도 연락이 안 된다. 어디서 무슨 사고가 났나 싶은 걱정에 담임 선생님께 전화까지 드리고... 혹시, 아이가 착각하고 학원에 갔나 싶어 학원에 연락하고, 친구들에게 전화하고... 그래도 아이는 오리무중이다. 남편 오기 전까지 왔으면 싶은데, 남편은 왔는데 아이는 연락이 없다. 그래도 걱정만 되었지 아이가 아무 연락 없이 안 오는 것에 요동되거나 화는 안 난다. 그 부분은 컸나 싶어 좀 흐뭇하다.
7시 30분까지가 마지노선이다. 적어도 30분 전에는 출발해야 목장 예배, 8시에 도착할 수 있다. 집에 들어오면 연락하라고 둘째에게 이르고 출발하는데... 아까까지는 눈이 안 오고 길 상태가 좋았는데... 눈이 하얗다. 더 걱정된다. 길은 미끄러운데 아이는 어디서 쓰러져 있는 건 아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15분쯤 지났을까? 아들이다. 반갑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는데.... 사실, 학교 도서관에도 전화를 해봤는데... 어쨌거나 돌아와서 고맙고, 도서관에서 공부했다니 그 역시 다행이고 안심이 된다.
목장에 갔더니 눈길에 왔다고 대단하다고 하는데... 의아하다. 순종이라는 것, 적용이라는 것 내가 어려웠던 것을 했을 때 비로소, 그 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나나 남편, 이런 건 너무나 쉽다. 십일조, 예배, 그런 건 너무나 쉽다. 이건 십자가가 아니다. 안 되는 것을 해보는 것, 주님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혈기 안 내고 나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의 유익을 위해 적용할 수 있다면.. 그게 순종이고 적용일 것이다. 나도 알고 하나님도 안다. 아직도 된 부분이 없다. 부부목장이 너무 늦게 끝나니까 다음 날, 일상생활이 안 되는 것... 그런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도 순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일상생활이 안 되는 건 힘이 들긴 하다. 토요일이 어렵긴 하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많이 확장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 나, 나! 이기적인 게 많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유익이 건드려지지 않는 상황에서고, 나의 헌신이 요구되지 않는 선에서 내가 기쁘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계가 유지 될 때만이 가능하다. 직장 목장에서 요한계시록, 요약된 걸 출력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기꺼이 흔쾌하게 네~ 라고 대답하고는 편집을 시도했는데 시간이 장난이 아니다. 30 여분이 훌쩍 넘어가니까 슬슬 못 하겠다고 얘기해야 할까 싶은 마음에 꾀가 난다. 나의 즐거움을 위한 시간이었다면 1시간이 뭔가? 2시간도 아깝지 않다. 베토벤 바이러스 1회분은 아무런 갈등도 없이 켜놓고 볼 수 있다. 아! 나의 악이 보이니 민망하다. 그럼에도 그나마 조금 편집해놓은 걸 출력하려고 보니 집에 가져오지도 않았다.
나만 생각하는 지사랑, 그리스도가 아직도 통치하지 못하는 나의 악한 부분이다. 내가 싫으면 싫다. 나의 의지가 너무나 중요하다. 나의 자유의지가 침해되는 걸 너무도 싫어한다. 지금은 좀 부드러워지긴 한 것 같지만... 내 영역에 누군가 내 허락 없이 들어오는 걸 못 견뎌한다. 나의 경계가 중요한 만큼 상대의 경계도 중요하게 여기긴 하지만, 그게 예수님이어도 미리 허락받아야 하는 게 있다. 그러고보니 하나님은 내게 한 번도 인격적이지 않으실 때가 없었다. 나의 미약하고 미성숙함을 나타내는 척도일 수도 있겠다. 오죽 내가 성숙하지 못했으면 편안한 동반자가 되지 못하고 꼭 묻고 절차를 밟으셔야 하는지.... 현희야, 이렇게 해도 되겠니? 그렇게 물어오셨었다. 아! 한 번의 예외가 있다. 중국에서의 훈련, 그건 나의 계획에 있지 않았던 일방적인 하나님의 폭풍 계획이셨다. 그렇지만 그것도 참 좋았다. 하나님이 나를 그만큼 믿어준 사건이었으니까. 그렇게 해도 감당할 만하다 여기셔서 한 계획이셨을 테니까. 하나님, 맞지요?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나의 구석구석, 주의 통치하심이 필요하다고 말씀으로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② 부드럽지 못한 나의 굳은 부분, 강직한 부분들을 말씀으로 녹여주시고 훈련시켜주셔서 유연하게 해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③ 순종과 적용, 내가 지기 싫어하는 부분을 보게 하셔서 그 부분조차 내 것으로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께 의뢰하며 내놓을 수 있는 속삭임이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④ 아들을 존중하는 마음 주셔서 내가 요동하거나 화나지 않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⑤ 귀하고 아름다운 목장을 통해 육적, 영적 필요를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2. 내 영역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유연함으로 적용하여 주께서 쓰시겠다 말씀하기 이전에 하나님께 내 영역 어디든 출입할 수 있는 자유이용 패스카드를 드리겠습니다. (저의 의지로 드립니다. ) 아니, 하나님께 이건 제 의지로 해도 되는지 꼭 여쭙고 가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시니까요^^
12월 9일 주일
제목: 즐거워하라
요한계시록 12:1-17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질문
1. 하늘에 속한 자로 즐거워하는가?
묵상
하늘에 속한 자이면서도 잠만 늘어지게 잤다. 하루 종일, 남편도 연수에 가고 아들도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고... 적막한 고요를 즐기면서 말씀을 듣다가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깨어서는 베토벤바이러스 못 다본 1회분 것을 시청하고.... 또, 감동했다. 우짜노~ 끊지 못하는 드라마 중독이지만, 감동이 된다.
사단의 삼킴과 핍박에도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덤으로 가는 인생, 그러나 나는 자꾸만 패한다. 그럼에도 오늘도 하나님 앞에 귀한 공동체 가운데 속해서 예배드릴 수 있음이 감사하고 감사한다. 내 처지와 행동에 얼굴을 들 수도 뻔뻔해서 죄송하다 말할 수도 없게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에 속한 자로 불러주신 하나님 앞에 즐거워하고 즐거워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예배 드릴 처소와 환경을 주신 하나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② 함께 거할 수 있는 공동체를 선물로 주셔서 나의 연약함을 척량할 수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나의 끊지 못한 드라마 중독, 끊겠습니다.
12월 10일 월요일
제목: 인내와 믿음
요한계시록 13:1-10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질문
1.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로 따르며 경배하며,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고 싸워 이기는 사단이 준 권세 앞에 나는 성도로서 인내와 믿음을 갖고 있는가?
묵상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중하고 귀한 만남 가운데, 나는 편하고 불편하고, 좋고 싫고의 분명한 가치관으로 차별하여 사귀며 교제했다. 내 주위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으로 함께하는 공동체가 이뤄지기에 끼리끼리 서로 좋아라했지, 그렇기에 내 인간관계의 한계를 알지도 못했고 좁은 인간관계를 넓히지도 못했다.
그 가운데 인간관계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결혼이었던 것 같다. 나와는 전혀 다른 시어머니, 형님들... 세상에서 만났다면 거리두고 멀리하며 교제하지 않았을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이 붙여주셨기에 거기에 순종하는 믿는 자의 태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마음 저편에서는 서로의 상처로 교제는 이미 접었고 의례적이고 표면적인 만남과 교제, 내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로만 대했던 것 같다.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여쭙는 것도 또, 어떤 말이 나올까 싶어 멀리했다.
치매 아버님을 끝까지 섬기며, 수고했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셨던 간증을 보며 성도의 믿음과 인내를 보았고, 룻의 나오미 섬김에 마음을 다하며 겸손하게 모든 만남을 소중하게 여기며 대하는 태도에 역시 성도의 믿음과 인내를 보았다.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나의 악을 보게 하심에 애통했다. 내가 제일 잘 안 되는 게 인내다. 조금만 힘들어도 팔딱거리고 못 참고 뛰쳐나가는 나의 연약과 부족함, 나의 악이 있다.
후배들과 친구들은 모두 수련회에 참석하여 방언을 선물로 받았을 때도 참석 안 한 나의 악도 회개했지만, 나도 달라고 땡강놓으며 후폭풍 기도를 해서 하나님이 주셨었다. 나의 팔딱거림, 즉시 움직이는 행동파적인 촐랑거림으로 지금까지 나의 성품이 사용되었다면 이제, 나의 지극히 약한 인내를 훈련시키셔서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보인다. 결혼은 그런 인내를 훈련하시는 아주 적절한 장이었던 것 같다. 주말부부 1년 반의 인내의 시기가 있었고 그 기간을 뺀다면, 3년 반동안 아이가 없어서 기다리는 시기가 있었고, 아이를 양육하는 7년여의 시간은 온전히 집에만 매여 있는 시기가 있었다. 그리고 말씀이 들리지 않았던 6년여의 시간... 그 모든 시간들은 나의 인내를 향한 훈련 기간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의 모습은 성도로서의 인내는 멀었다. 그렇지만 가장 감사한 것은 건강한 천국 공동체에 속해서 붙어 있음으로 훈련시키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속해 있는 것이다. 말씀으로 또 묶여진 지체들 가운데 속해서 나의 악과 가증, 나의 죄를 볼 수 있는 분별력과 해석의 힘을 키워갈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내 때에 순종함, 그것이야말로 인내와 믿음이다. 사단이 나를 흔들만한 큰 권세로 훼방하고 유혹하고 참소하지만, 그 상황에도 짓밟히고 당하여 줌으로 내가 얻을 진정한 권세 인내와 믿음, 그것이 정금임을 보게 하신다. 어머니께 들어야 할 소리로 알고 그럼에도 전화를 걸어야 하고, 남편이 내가 먹기 싫은 물렁감을 먹으라 할 때, 하나라도 먹는 적용을 해야 하고, 아들이 공부를 안 하고 빈둥거리고 성적이 안 나올지라도 그것에 순종해서 엄마로서 지지하고 지원하며 사랑으로 보듬어야 하고, 내 맘에 안 드는 동료일지라도 판단과 정죄가 아닌 그 모습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내게 없는 인내와 믿음을 위해 내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 허락하시고 훈련시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내게 주신 상황과 환경 가운데 순종하겠습니다.
② 귀한 말씀 공동체에 속하게 하셔서 하나님 말씀을 듣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 어제 시어머니와 통화하게 하심에 감사하고 전화를 1주일에 한 번은 꼭 드리겠습니다.
3. 남편이 하는 말을 장난으로 생각하지 않고 존중해서 순종하겠습니다.
4. 아들의 시험 기간에 더 많이 격려하고 지지하겠습니다.
5. 내가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준이 되고 내가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임을 인정하며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6. 자꾸 미루려는 '또 게으름'을 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