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QT본문: 계 13장 1절~ 10절)
2012-12-10 월요일
[본문: 계 13장 1절~ 10절]
[관찰]
첫 번째 짐승의 환상 1~10
1.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데, 뿔이 열에, 머리가 입 곱인데, 각 뿔에 열 면류관이 있고, 머리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그 짐승은 표범같고, 발은 곰의 발에, 입은 사자의 입과 같은데, 용이 그 짐승에게 자기의 능력과 왕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2. 그 짐승이 머리 하나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죽은 것 같더니, 상처가 나으니 온 세상 사람들이 놀라 그 짐승을 따르고 경배하며, 또한 그 권세를 준 용에게 경배한다.
3. 또 짐승은 용에게 권세를 받아 하나님을 모독하고, 자신을 하나님이라 하며 마흔 두 달 동안 활동하면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름과 성도들을 비방하였을 뿐만 아니라, 성도들을 핍박하고, 온 세상을 지배하였으니, 세상이 창조된 이후 죽임 당한 어린 양의 생명 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그 짐승을 경배할 것이다.
4. 성도들이 사로잡히고, 칼에 죽임을 당할지라도 인내하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말씀하신다.
[교훈 적용]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세상에는 어떤 일들이 있을 것인지, 또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신다.
하늘에서 쫓겨난 용이 이 세상의 왕들에게 자기 능력과 권세를 주니, 그들은 모두 사단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도들을 핍박한다.
비록 사단의 세력이 한 순간 약해지고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회복되자 하나님을 모르는 온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경배하며, 그 권세를 준 사단도 경배한다.
이들은 마흔 두 달 동안 이 세상을 지배하며,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는 권세를 가져, 성도들을 사로잡아 칼로 죽이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신을 하나님이라 하며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세상 사람들에게 경배를 받지만,
이러한 세상에 사는 믿는 성도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인내하라! 그리고 충성하라!
어린 양 되신 예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하신다.
소망으로 인내하고, 소망이 있으니 충성하라 말씀하시는 주님
하지만, 천국 소망 없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권세에 굴복하고 만다. 이들은 권세자들이 보여주는 세상에서의 힘을 과연 누가 꺽을 수 있겠으며, 이 보다 더 큰 힘이 또 어디 있겠느냐며 그 권세를 가진 자들을 경배한다.
그래서 세상은 이 둘로 갈린다.
소망으로 인내하며 죽기까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부류와 눈에 보이는 힘을 믿으며 그 힘을 가진 권세자들을 따르며 살아가는 부류
이 둘이 이처럼 명백하게 다른 삶의 가치를 가지기에, 어느 한 편을 택해 살아가야 하지만, 육신의 연약을 핑계대로 늘 회색부류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래서 훈련이 필요하다.
내가 믿는 믿음의 가치대로 살아가야 하는데, 아직 육신이 그렇게 따라가지를 못하니, 그 가치관에 맞는 사고방식과 태도와 행동을 갖추기 위해 연습을 해야 하는데, 이 연습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러니 머리로는 아는데, 행함이 부족한, 말만 하는 사람들이 되어간다.
말씀은 알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알고는 있어,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회개는 있다. 그렇지만 자신의 연약을 구실삼고, 또 그렇게 행하지 못하는 주변 비슷한 사람들을 위로삼아, 너나 내나 별 인생 없다며 서로를 의지한다.
허나, 여기서 조금 더 힘을 내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함께 만드는 믿음의 세상이 될 수 있으니, 기도하며, 성령님께 의지하며 나아가야겠다.
매일 하는 성경연구에 말씀묵상, 그리고 기록이 어떤 때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조차 힘이 들어 오늘 하루는 쉴까 하는 생각이 마음에 들어올 때가 있다.
나도 사람인데 좀 쉬어가며 해야지 하는 생각
하지만 이렇게 되면 누가 좋아할까, 이것이 누구를 위하는 길일까를 생각해 본다.
내가 어떻게 얻은 이 길인데,
내가 얼마나 갈급해 왔던 이 길인데,
내가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하며 돌아온 이 길인데,
그런데 단 한 순간의 육신과의 타협으로 한 걸음 물러나기 시작하면 또 한 걸음 또 한걸음 뒷 걸음 치는 것은 잠깐이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나아갈 때도 보면, 바로 하루 아침에 나아가지를 않는다.
마음에 갈등하고 또 갈등하며 작은 한 걸음을 떼어본다.
그리고 또 갈등한다
그러면서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나씩 하고, 또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무뎌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한 걸음이 두 걸음 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 사람이 되어버린다.
술도 이랬다.
세상으로 갔어도, 3년 정도를 이렇게 방황 저렇게 방황하면서도 술은 입에도 안 대었지만, 어느 한 순간에 한 잔 하면 어때 이렇게 되다 보니, 그 한잔이 두 잔 되고, 한 병이 되고, 시간이 지나니, 고주망태 지경에 이르러 버렸다.
한 걸음이 문제다.
한 마음이 문제다.
한 선택, 한 결단이 내 인생을 좌우한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인내와 충성을 그렇게 하루 아침에 이루었을까?
황제숭배에 고개만 한번 까딱하면 세상 편하게 살게 해 준다는데, 왜 그거 못하고 불에 타 죽고, 사자 밥이 되고, 끓는 기름 솥에 들어가 죽었을까?
그들은 편하게 살고 싶지 않았고, 더 살고 싶지 않았고, 더 많은 시간 가족들과 보내고 싶지 않았고,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도 없었을까?
아닐게다
절대 그렇지 않았을게다.
주기철 목사님 그렇게 모진 고문 이겨내시며 순교하셨지만, 그 마음에 자녀와 노모 걱정하며 하나님께 그들을 의뢰하였고, 또 따뜻한 밥 한 그릇에 고깃 국 말아 먹고 싶다는 그 분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지
사람의 마음은 이렇듯 연약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내려주셔서, 그 환경을 견디며 순교까지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니, 그 장성한 믿음에 이르기까지는 한 걸음, 그 한 걸음의 믿음의 행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오늘 내가 하는 믿음의 행동 한 걸음이 이 장성한 믿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믿음의 큰 걸음이 될 줄을 믿는다.
주님께서 오늘도 나를 붙들어 주시며 함께 하시며 인도하셔서, 하나님 원하시는 견디며 충성하는 믿음의 용사로 세워 나아가실 것을 믿으며, 나는 오늘도 주님의 은혜와 긍휼 안에서 살 것을 주님 주신 의지로 결단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허락하신 기간 동안 온 세상에서 마음껏 권세 휘두르는 사단의 세력 앞에서,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도들에게 핍박을 가하는 세상 권력 앞에서, 믿음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인내하라 충성하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령 앞에 오늘도 믿음의 한 걸음을 내딛기 원합니다.
육신의 한계를 이유 삼아, 연약한 주변 사람들을 핑계 삼아, 뭐하러 이렇게까지 사냐는 주변의 소음과 내면의 아우성이 있지만, 이렇게 해야만 주님 따를 수 있다 생각되니, 주님께서 나를 책임져 주시고, 나를 붙잡아 주시며, 나와 언제나 함께하셔서 나를 충성하는 자리, 인내하는 자리까지 인도하여 주옵소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