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당할 때 내 하나님은 어디에
작성자명 [안나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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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5.19
내 유년시절 나를 놀라게 한 언어는 강간 이였습니다
그것은 한 소녀가 한 장년 남자의 폭력으로부터 간신히 벗어나 그때 마침 대문이 활짝 열린
우리집 마당으로 들어와 나의 어머님에게 숨겨 달라며 사시 나무 떨듯 떨고 있는 모습에서
기억된 언어입니다
오늘 디나가 강간당했다는 사건을 대하며 아주 오래전 그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을 보면
기억하는한 사라지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히려 그 기억들이 세월의 총총한 시야에 걸러지고 다듬어져 영구적인 삶의 한 지점으로 남게 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고도의 생략 과정에서조차 탈락시키지 않고 성경에 기록된 디나가 그 땅의 여자를 보러 나갔더니 란 문장 뒤 쫓아 오는 강간 사건과 그 사건에 대응하는 두집안의 이야기를 하나님께서는 왜 오고 오는 모든 인류들이 읽도록 권면하고 계시는가?
디나는 야곱의 많은 아들들가운데 딸로 태어나 유복한 삶을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니가 그 땅의 여자를 보러 나갔다는 말은 이성보다는 동성의 친구를 사귀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 아니였을까?
딸이 남자도 아닌 여자를 보러 나간다는데 어느 부모가 말리겠는가?
더구나 그 땅은 디나가 어린시절 지나 처녀로 성장하기까지 머문 땅으로 디나에게는 고향땅이라해도 무방했으니 그 아비나 어미 그리고 오빠인들 그 누구도 디나가 위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 부잣집에서 노비나 여종 한사람쯤은 곁달려 보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허나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인간들의 안전을 꾀할 수 있다는 자긍심이 되버렸으니 실로 하나님을 제껴놓은 이 세상 그 어디도 안전한 것은 없으되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에겐 위험한 것도 안전한 곳이 되리라는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정에 딸이 강간을 당하는 것을 막지 않으시고 그냥 놔두신 야곱의 하나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 대한 것들이 설명이 되어짐으로 자유로워지는게 있는가하면 설명이 안되어져도 안되어지는대로 나는 자유로움을 느끼는가 돌아봅니다.
예전에 비해 나는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자유함은 속사람을 강건케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에 연합함으로 누리는 자유인데 그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힘이 대단한지 나의 주변 상황이나 나의 남편이나 자녀들의 어떠함이 나의 평화를 빼앗아가지 못할뿐더러 나를 더럽히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였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속에서도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그 말들에게 내 영혼을 던져 주거나 그 험한 말들속에 내 신앙의 정조를 강간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내가 달려가는 도피성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 늘 살아계셔 신앙의 순결을 지켜주고 계시니 주님과의 동거함이 어찌 아니 아름다울까?
지금 회교권이나 그외 교회를 핍박하는 국가에서는 얼마나 많은 소녀들이 장자권을 지닌 야곱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도(예수 믿는다는) 디나처럼 강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거두지 않고 오히려 도덕과 윤리적인 혼돈과 혼란의 그 한가운데 자기 자녀들이 온갖 아픔과 수치와 굴욕과 빈곤을 짊어져야만하는 역사적인 상황이 아직껏 남아 있는 것을 보며 나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역사적인 상황이 크리스챤들에게는 당연히 올 것이라고 예견해주신 말씀있어 그 말씀안에서 만나지는 하나님을 오늘 아침 주목하여 바라봅니다
그런 상황속에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껴들어갈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준 모욕과 수치와 온갖 비인간적인 행위들이 오히려 하늘에 큰 상급으로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이야말로 비애와 혼돈의 역사 저너머 실존하시는 하나님을 지금 여기 초청하여 그리스도의 몸인 지상 교회안에 함께 머물도록 만들어주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지상교회는 역사하는 힘이 크겠지요
오늘 디나의 강간 사건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수치스러운 강간에 구속당하거나 방해받지 않으시고 여전히 당신의 뜻대로 야곱의 한 가문을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따라서 디나의 강간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일점 일획이라도 흔들어 놓을만한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이 풍랑인해 구속사의 지점인 벧엘로 더 빨리 가게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사람편에서 보면 때로는 무정하기도하고 때로는 야속한 침묵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결코 언약을 배반하지 않는 침묵임을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인 후 벧엘로 올라가라 고 친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친히 도와 아무도 벧엘로 올라가는 야곱의 가족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신적 두려움을 심어주신 분이십니다
강간을 한 자와 당한 자
나중에 성문화된 율법에 의하면 그들은 결혼해야 되는 한 쌍입니다
세겜의 입에선 자신이 그녀를 연련한다는 감정에 충실할뿐 도의적인 측면의 말은 한 마디도 없이 다만 물량공세로 대응하는 자세는 오늘날 상처를 준자와 받은 자들 사이를 물질로 해결하려는 자세와 다를바 없다고 봅니다
야곱의 아들들 눈에 그것은 자기 여동생을 돈 주고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창녀로 대우하는 것으로 비쳤으니...........
칼을 차고 나가 그들을 멸절하지 않으면 그 분을 삭일 수 없었던 것이지요
아버지 야곱이 살인 행위를 꾸짖음에도 그들은 오히려 잘못했다는 말대신 디나를 창녀 취급하는데 어찌 가만이 있으란 말입니까? 그들은 그렇게 죽임을 당해도 당연하지요 라는 투로 변명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나는 먼훗날 하나님앞에, 아니 지금이라도 왜 그리살았느냐?
물으신다면 무어라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그래도 용기가 있지 않았을까?
순결을 빼앗긴 여동생을 위하여 검을 들고 나갔던 그 두 남자-
그리고 창녀 취급에 울분한 야곱의 남자들-
확실히 야곱의 남자들은 뭐가 틀리긴 틀립니다
나는 그들의 살인 사건은 비록 잘못되었을지라도 그들이 지녔던 그 순수와 순결과 거룩함에 대한 신앙의 야성만큼은 인정해주고 싶습니다
한 소녀의 순결의 가치
그것은 수많은 남자들의 생명보다 더 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