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주님의 사랑을 알아요!
(QT본문: 계 6장 1절~ 17절)
2012-12-01 토요일
[본문: 계 6장 1절~ 17절]
[관찰]
일곱 인의 재앙 1~11
1.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자, 흰 말을 타고 활을 가진 자가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 하였다.
2. 둘째 인을 떼시자, 붉은 말을 탄 자는 허락을 받아 큰 칼로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게 하였다.
3. 셋째 인을 떼시자, 검은 말을 탄 자가 손에 저울을 들고 있고, 극심한 기근이 있을 것을 예고 받는다.
4. 넷째 인을 떼시자, 청황색 말을 탄 자(사망)와 음부가 땅의 사분의 일을 전쟁과 기근과 전염병(온역)과 이로 인한 황폐로 죽임을 당하게 한다.
5. 다섯째 인을 떼시자, 순교자들이 신원하여 주시기를 청원하자, 순교하는 이들의 수가 차기까지 잠시 동안 쉬라 하신다.
6. 여섯째 인을 떼시자, 종말론적 현상들이 중단 없이 계속 이어진다. 그 날에는 지배계층이나 일반 서민까지도 하나님을 대적한 자는 누구도 예외 없이 공포와 심판에 처하게 될 것이라 하신다.
[교훈 적용]
주님은 요한을 통하여 종말에 나타날 징조들을 보여주신다.
화평이 없이 서로 죽이고 죽이는 상황들이 연출되고, 극심한 기근에, 전쟁과 질병으로 죽는 자들이 속출할 것이라 하신다.
또 큰 지진에 해는 검게, 달은 피 같이 변하고, 별은 추풍낙엽과 같이 떨어진다 하신다. 하늘이 종이 말리듯 떠나가고 산과 섬은 모두 제자리에서 옮겨진다 하시고, 있는 자나 없는 자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며 임할 심판을 기다려야 한다 하시니, 그 날은 진노의 날이라 하신다.
그러면 이 종말론적 심판의 역사 속에서 믿는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간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심판의 주관자이심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이것을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지, 억지로 믿으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하면서 법을 지키는 것은 처벌을 받지 않기 위해 지키기도 하겠지만, 사회에서 정해진 규범을 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지키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키기도 한다.
혹은 이런 의식이 없이 몸에 밴 습관으로 지키기도 한다.
믿음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이 세상 만물을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되,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절한 자는 누구든 예외없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심판을 피하기 위해 마지못해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자들도 있겠지만, 그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세상 질서 속에서 살되, 창조목적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수고하지 않을까?
그러다 몸에 밴 습관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늘 동행하며 그 뜻에 순종하며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토기에 불과한 나,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에 불과한 나인데도, 토기장이이듯, 창조주이듯 그렇게 산다면?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자기도 불편하고, 믿는 남도 불편하게 하고, 하나님께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는데도 그렇게 산다면?
영혼의 호흡이 멈추고,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고, 방탕과 타락 속에 있어 영혼의 고통과 신음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데, 그래도 그렇게 살겠다면?
그래도 그렇게 살겠다면, 그렇게 안 살겠다고 두 손들고 나올 때까지는 그렇게 고통 받고 살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란 말이, 고난의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으니, 구원의 사건이 되기에 고난이 축복이라 하지 않는가?
참,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만들어 놓으신 이 믿음의 길은 세상의 길과는 완전이 다른 길이며,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길이기에, 신앙은 신비한 비밀의 세계란 생각이 든다.
돈 많이 벌고, 명예 권력가지고, 큰 소리 떵떵 치며 사는 것이 이 땅에서의 복이 아니던가? 심지어 이 복은 믿는 사람들에게도 유혹거리가 되며, 이에 실족되는 분들도 한 둘이 아니니, 어찌되었건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강력한 힘인 것 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세상 복 많이 가졌던 나라들 백성들에게 모두 한결같이 그것은 우상이야, 우상에 빠지면 안되 하며, 하나님에 앞서면 안 된다고 경고하고 또 경고하였지만, 그 우상 버리지 못해, 한 시대를 호령했던 나라들이 역사에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믿음의 길로 가지 않은 세상 그 어떤 것도 결국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교훈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인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우상을 믿는다. 세상가치를 믿는다.
그러면 그 결국이 파멸이며, 멸망이며, 징계며, 고난이다.
이게 좋아 이 길을 간다면, 누가 말리겠는가?
하지만 이 길 좋아할 사람 아무도 없는데도, 이 길을 간다.
그래서 고난받고, 환난받고, 고통받고 징계받는다.
내가 이 길을 갔다.
좋아서 간 것 아닌데, 그 길 가면 좋은 줄 알고 갔다.
그런데 가보니, 고난과 고통만 가득하더라.
그곳에는 환희와 쾌락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뿐, 계속적인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과 슬픔과 외로움으로 이어졌다.
참을 수 없어 찾은 것이 술이었다.
술 마시면 잊으니, 그렇게 술을 찾았다.
인생은 점점 망가져가고, 살 소망은 점점 없어져가고, 어둡고 긴 절망의 터널 속에서 언제 어떻게 빠져나갈 지도 알 수 없는 기나긴 방황의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정신병자가 되고, 자살을 한다.
나도 그렇게 될 뻔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함께 눈물 흘리셨고, 함께 아파하셨고, 함께 고통 받으시며 기다려 주셨다.
여전히 그 길에 서 있겠느냐 물으셨다.
그리고는 숨을 헐떡거리며 죽어가는 나를 일으켜 안으셔서 나를 그 분의 자리로 인도하셨다.
얼마나 사랑하셨으면 목숨을 내어 놓으셨겠는가?
내가 너 때문에 죽었다 하신다.
호용아 너의 죄 때문에 내가 십자가 달려 죽었다 말씀하신다.
나의 씻을 수 없는 더러운 죄, 씻고 또 씻으려 해도, 벗겨내고 또 벗겨내도 다시 달라붙고, 들러붙어 도저히 내 힘으로 씻어낼 수도, 벗겨낼 수도 없는 이 죄 때문에 내가 죽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눈물로 주님께 이 글을 드린다.
주님, 그렇군요. 그렇게 나를 사랑하셨군요.
나는 정말 몰랐어요
사랑도 몰랐고, 주님의 아픔도 몰랐고, 주님이 함께 하신 것도 몰랐어요
하지만 이제는 주님의 사랑을 알아요.
죽음에서 저를 살리셨고, 살리신 저를 이끄시고, 저와 함께하시고, 저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것을요.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 날마다 말씀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듣게 하시니, 그 사랑을 먹으며 오늘도 살아가는 힘을 얻어요.
나를 살게 하는 힘, 바로 주님이세요.
주님의 사랑이 나를 세상에서 이기게 하시며, 나를 유혹에서 건지시며, 나를 믿음의 터 위에서 견고하게 세워가심을 믿어요.
오늘도 그 사랑 안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게 되기를 원해요.
주님 사랑해요.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세상에서 이기게 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심판이다 징계다 기록되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들에게 돌아오라 돌아오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절규임을 믿습니다.
육의 눈으로 보면 두렵고 떨림이 있지만,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이 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섬기게 되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먼저 믿은 제가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주안에 있는 참된 복과 그 영광을 세상에 빛으로 소금으로 보여주며 주님의 덕을 선전하는 자 되어, 믿지 않는 자들을 하나님 나라에 많이 초청하는 자 되게 하여 주시며, 또한 함께 믿음 생활하는 지체들에게는 도전하며 유익을 끼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귀한 우리 담임 목사님을 위해 매일 중보하며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하며 쓰임 받을 때를 기다리며 준비되며 구비되는 자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