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0일 금요일
제목: 어린양
요한계시록 5:1-14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질문
1. 나에게 자기 희생이 있는가?
2. 금 대접의 기도가 있는가?
묵상
하나님의 말씀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자가 보이지 않아 크게 울고 있는 요한의 모습, 죽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책을 열 수 있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찬양,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리는 고백이 아름답고 감격스럽다.
그러고보니 나는 나를 괴롭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걸 못 참는다. 그런 내게 희생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남에게 희생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나를 희생하지 않는 범위에서 나는 움직인다. 나에게 퉁명스러우면 그렇게 좋아한다는 남편에게도 약이 쉽게 오르고 그게 누구든 내게 공격적이면 요동한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이유, 내 삶의 적용인 자기 희생이 없기 때문이라는 걸 알겠다.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도 하나님 말씀이 들리는데 여러분도 그러지 않겠어요? 하시며 큐티의 놀라운 힘을 말씀하셨는데, 목사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인생을 해석하며 가실 수 있었던 것은 자기 희생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나는 우선, 내게 사건이 일어나면 옳고 그름으로 따지려는 경향성을 아직도 못 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말도 안 돼! 그게 내 주제가다. 그러니 섭섭하고 서운하고 억울하고 속상하고 내가 불쌍하고 내 연민, 내 사랑, 지사랑을 노래한다.
우리 목사님처럼 나도 말씀을 듣고 싶다. 하나님이 내게 날마다 들려주시는 사랑에 합당하게 반응하며 삶으로 드리고 싶다. 하나님이 내게 들려주고 싶으신 말씀이 얼마나 많으랴. 그럼에도 잘 듣지 못하고 뒤늦어 반응하고, 듣고도 안 들은 것처럼 적용하거나 순종 못하고 그게 내 수준이다. 그래서 나는 요한처럼 큰 소리로 운다. 아직도 여전히, 그 모습이기에 큰 소리로 운다. 그나마 감사하고 감사한 것은 나는 못 듣지만 의지할 공동체가 있어 분별받으며 갈 수 있는 것, 또 미리 가고 있는 믿음의 선배들의 말씀에 청종하며 갈 수 있기에 그게 감사다. 그게 하나님이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부어주신 후대하심이요 선물이다.
요즘 새롭게 남편의 잔소리가 너무나 귀에 따갑게 들린다. 아들들에게만 향했던 화살이 내게도 조금씩 쏟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니 요동한다. 워낙이도 조용한 걸 좋아하지만, 고요한 시간, 큰 호흡할 시간이 없다.
어제 아들의 오케스트라 발표를 보고 오는데 차안에서 또 시작한다. 나는 버스타고 갈래요. 하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러고나서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하나님이 세우신 윗질서에 순종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승질 부리는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에 다시 황급히 민망한 발걸음을 돌려 차 안으로 들어갔다. 나의 수준이다. 말씀이 먼저가 아니고 승~질, 혈기가 먼저다.
오죽, 답답하면 잔소리를 할까! 오늘은 그게 보인다. 남편의 심정이 보인다. 온전한 순종과 적용이 아님에도, 말씀이 들리기 위해서라는 나의 기복!과 목적!이 있는 흉내, 또 행실도 아닌 마음 먹기일 뿐임에도 남편의 심정이 보이는 작은 여유와 틈이 생기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내가 할 건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고 희생이 있는 순종, 기도와 찬양뿐임을 알겠다. 오~ 말씀이 들린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만이 말씀을 보게 하고 들리게 하실 수 있음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② 나의 악과, 죄! 이기적인 지사랑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환경 주심에 감사합니다.
2. 나의 이기적인 지사랑에, 나를 괴롭게 하는 그 모든 것을 싫어하고 거부했던 나의 악을 회개하고 희생있는 순종을 선택하겠습니다.
3. 남편 섬김과 자녀 양육에 지혜의 근원되신 하나님 말씀 따라 적용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