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수요일
제목: 연단한 금
요한계시록 3:14-22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
질문
1. 영적인 부요함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하는가?
2. 불의 연단을 받으며 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묵상
하나님이 오늘도 내게 권하시기를 내가 할 것은 열심을 내어 회개할 일이라 말씀하신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모습, 부요한 부자로 알며 나의 곤고와 가련과 가난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하는 나의 악이다.
피곤한 몸으로 전철을 탈 때, 내심 하나님 자리 하나 내주세요~ 하며 가장 빨리 일어설 것 같은 사람 앞에 서 있다. 그런데 매번은 아니지만, 그렇게 이제나 저제나 내 앞자리가 나기를 고대하고 있는데 앞자리가 비는 순간 옆에서 막무가내로 껴드는 특히, 아줌마들!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 오죽 피곤하면 그랬을까 싶으면서도 얌체같은 행동이 밉기만 하다. 어떨 때는 당황한 마음에 말짱하게 생긴 사람의 그 심보가 참 이상스럽고 급기야, 나의 불편함을 알아차리라고 째려보는데 눈길은 내게 절대 주지 않는다. 그 사람도 자기 행동은 아는 게 분명하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갈 때까지 그 아줌마를 미워하다가 전철문을 나서는 뒷통수까지 노려보는 것이 끝나야 소심한 복수에 마음이 좀 시원한 나의 악이다. 그런데 매번 그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비슷하다. 아~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사람은 섬겨야 할 대상이라고 하면서, 자리 한 자리 그것도 그 앞에 있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는 원칙은 내가 정한 것이면서 상대를 죽이고 있음이 이제야 보이기 시작한다. 말씀을 듣는다고 하면서, 이제는 말씀이 들리는 공동체에 있어 행복하다고 하면서 나는 지키는 자가 아니고 믿음이 부요한 자가 아니었다.
그런 나임에도 어제 하나님은 나를 후대하셨다. 내 자리가 아닌 자리가 났을 때, 부러움에 그 앞 사람이 앉을 의사가 있을까 싶어 그 사람을 바라보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었을까? 선뜻 나보고 앉으라고 한다. 나의 치졸하고 편협스러움에도 하나님이 나를 후대하심이다. 고맙다. 그 사람의 여유로움, 베푸는 마음에 나의 악이 송두리째 보이고 그동안 차곡차곡 괘씸죄로 쌓아놨던 네가지가 없었던 몰염치한 아줌마들에 대한 원망이 녹는다. 내릴 때, 덕분에 고마웠다고 인사하는데, 그제서야 앉는 아저씨 피곤함이 전해져 하나님이 나를 보라고 하시는 메시지 같다. 일찍 내리는 상황도 아니고, 멀리 감에도, 또 피곤한 상황임에도 그 사람은 내게 베풀었다. 고맙다. 믿는 내가 베풀어야 할 자세를 하나님은 가르쳐주신 것 같다.
나의 치졸한 원칙, 옳고 그름의 잣대는 불의 연단을 받아 치러야 할 값이다. 믿음의 부요함과 성장을 위해 나의 치졸함을 볼 수 있게 안약을 사서 봐야 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늘 나를 감찰하셔서 베풀어주심으로 나의 악과 죄를 보고 깨닫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② 자취생들과 내게 있는 김치를 나누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2. 하나님,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나의 기준과 잣대를 내려놓고 내가 적용과 순종할 것에만 말씀 듣고 반응하게 하소서
3. 수석과 1등급의 소식에 축하와 함께 얕보는 나의 수치, 교만함을 열심히 회개합니다.
4. 커텐을 세탁소에 맡겨달라는 부탁에 전과 다른 남편의 공격적인 언행의 근원이 내게 있음을 알고 회개하기를 기도합니다.
11월 29일 목요일
제목: 들은 바
요한계시록 4:1-1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질문
1. 나팔소리 같은 음성을 들으며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묵상
이상하다. 남편이 이상해졌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순종하지 못한다. 오늘 아침에도 목소리가 커졌다. 남편은 내가 수요예배를 가는 것에 대해 못마땅해 한다.
나는 내가 할 적용이 예배 사수라고 생각했지만, 어제 목사님 말씀을 듣다보니 그 역시도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순종! 이라고 생각하고 적용했지만, 남편이 그렇게 불편해한다면 나는 집에 있는 적용을 해야 한다. 예배가 너무나 좋고 귀한 말씀에 감격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읽을 수 있는 정말 양보할 수 없는 시간인 건 맞지만... 예배에 오는 적용보다 집에 있는 적용이 내게는 더 어렵다. 그게 좁은 길이고 그게 내가 적용해야 할 몫인 것 같기도 하다. 공동체에 물어야 하겠다.
목사님 말씀 중에 예수님이 결론임을 다시 새긴다. 예수님이 초점이다. 신앙의 자립이 목표다. 내가 들을 수 있는 사람으로 서야 한다. 말씀에서, 상황과 환경에서 날마다 시마다 예수님을 보기를 원한다. 근본을 다시 짚어주셔서 감사하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나팔소리 같은 음성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공동체 주심에 감사합니다.
② 예수님이 내 삶의 결론이어야 함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2. 내가 순종하고 적용해야 할 것들을 바르게 분별하게 하셔서 깨달은 대로 손과 발로 행하게 하소서
3. 남편 섬김과 자녀 양육에 지혜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