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수준
(QT본문: 계 2장 01절~ 11절)
2012-11-24 토요일.
[본문: 계 2장 01절~ 11절]
[관찰]
에베소 교회 1~7
1. 에베소 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밝혀낸 것, 그리고 참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않은 것도 안다 하신다.
2. 그러나 첫 사랑 버렸음을 책망하시며, 어디서 잘못되었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에 행한 일을 행하라 하신다. 그렇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 하신다.
3. 니골라 당의 행위,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파괴하는 거짓 무리들을 미워한 것을 잘했다 하시며, 당신께서도 그렇다 하신다.
4. 신앙의 승리자에게는 하나님 나라, 천국의 영생을 얻게 하겠다 하신다.
서머나 교회 8~11
1. 예수님은 자신을 처음과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자라 하신다.
2. 교회의 고난과 가난, 자칭 유대인(사단의 집단)이라 하는 자들에게서 당하는 모욕을 안다 하시며, 서머나 교회는 부요한 자라 하신다.
3. 앞으로 겪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하신다. 마귀의 시험, 10일 동안의 고난이 있겠지만 죽도록 충성하라 하신다. 그러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 하신다.
4. 신앙의 승리자에게는 두 번째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 하신다.
[교훈 적용]
주님의 원하시는 신앙의 수준이 예사롭지가 않다.
황제숭배가 강요된 심한 박해 속에서도 수고하여 최선의 삶을 살아내고 있고,
또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이 있기에 믿음의 정절을 지켜내기 위해 참아내고 있으며,
또 악하고 거짓된 것들은 하나도 용납하지 않으며 다 밝혀내고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견뎌내고 게으르지도 않은 에베소 교회인데,
주님은 이런 에베소 교회의 모든 것을 다 안다 하신다.
그런데 그런 모든 행위보다 중요한 것이 첫사랑이라 하신다. 첫 사랑을 회복하라 하신다.
지금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의 정절을 지켜내기 위한 수고와 인내가 겉보기에 감히 따라 하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데도, 주님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첫사랑의 회복이라 하신다.
사랑 없이 하는 그 어떤 수고와 인내만으로는 안 된다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믿음을 지켜내기 위한 개인적 또는 공동체적 수고도 사랑이란 그릇에 담겼을 때 비로소 믿음으로서의 참된 가치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에 대한 처방으로,
1) 어디서 무엇으로 인해서 잘못되었는지를 계속하여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2) 회개하고
3) 처음 그리스도를 향해 가졌던 그 사랑으로 즉시 형제들에게 사랑의 행동을 표현하라 하신다.
주님의 처방대로 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 심판하겠다 하시니, 주님의 처방을 곰곰히 생각해 보게 된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김이 그렇게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도 나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는데, 이웃을 사랑한다는 일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저 사랑의 범위가 내 가정 내 가족 친한 이웃 정도에 국한되지, 이것도 그 범위를 넓히려면, 많이 생각하고 많이 마음에 품고, 많은 사랑의 훈련을 해야만 가능함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되면, 그 사랑이 나를 변화시킨다.
비록 이러 저러한 상황이나 환경적 한계 때문에 직접적으로 모든 사랑의 행위를 하지는 못할지언정 주님의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니 긍휼한 마음을 갖게 하신다.
이 긍휼한 마음이 있어야 이웃을 담을 마음도 갖게 되고, 이웃과 함께 주님도 따라가게 된다.
이 마음이 없어서였을까?
신앙의 정절은 지켰는데, 주님의 책망을 들은 이유가?
주님은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라 하신다.
너무 교리적으로 따지고 분별해 내고 이러는 과정에서 너무 메말라 있지는 않았는지, 신앙을 지키는데 있어서 안될 것은 명백하게 구분해 내는데, 신앙 안에 있는 한 형제로서 사랑의 나눔을 통한 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는 뭔가 부족한 부분이 없었는지…뭐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해 보고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잘못된 점을 찾아내었다면, 바로 돌이키라 하신다.
주님의 명령은 대충이 없다.
이런 저런 조건이 갖추어지면 하겠다 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바로 즉시 돌이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라 하신다.
선악과 따먹고 불순종의 자리에 선 아담과 하와, 그리고 인류의 모든 죄악의 자리에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서셨다.
그리고 모든 시험 유혹 다 이겨내시고 불순종의 자리를 순종의 자리로 만들어 내셨다.
이제 그 순종의 자리에 다시 서야 할 나와 우리들 모든 믿음의 식구들이다.
순종 자리 떠났던 길, 다시 돌이켜 그 자리, 순종의 자리로 와야 하는데, 회개다.
그래서 회개하라 하신다.
내 멋대로 가던 길, 이제 그만 가라 하신다.
다시 순종 자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그 자리, 하나님의 호흡으로 생명 받았던 그 자리로 돌아오라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던 그 모습으로 살라 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며, 아담과 하와가 서로 사랑하고, 주신 에덴동산에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살던 모습, 그 모습을 이루어 내라 하신다.
황제숭배 강요당했어도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어주셔서 만들어 놓으신 십자가 영생의 길을 통해 하나님 자녀 되었으니, 함께 하나님의 자녀된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며,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천국백성의 삶의 모습 보여주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길, 복음 전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의 정절 잃지 않고 정결하게 가는 그 모습 보여줌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라 하신다.
죽도록 충성하기까지 해야 한다 하시니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명령이시다.
그래서 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많지가 않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의 수준은 이렇게 목숨까지 내어놓는 전적인 순종의 모습이지, 대충 믿음생활하고, 또 대충은 내가 좋은 대로 하는 이런 회색지대의 믿음의 수준이 아니다.
당신께서 이 땅에 오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죽기까지 순종했던 그 순종이 우리를 살리셨고, 멸시 모욕 천대 다 겪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증명하셨으니, 이 몸으로 보이는 순종만큼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이 사랑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찌 사랑도 없이, 요구함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놀라운 것은 주님의 요구는 우리가 더 잘되기 위한 요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요구를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신다는 것이다.
사랑도 없이 교훈한답시고 말로만 해 대는 교훈들
온갖 교훈들이 세상에, 교회에 수도 없이 많이 떠돌지만, 무엇을 위한 교훈인가?
기준 세워놓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자신도 하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해대는 무수한 소리들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지, 소리가 우리를 변화시키지 않는다.
말씀은 보여주신 사랑이다.
몸으로 보여주는 사랑만이 나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감동시키며, 세상을 변화시킨다.
죽기까지 충성하라 하시는 주님의 요구는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나를 감동하여 그 어떤 것도 그 사랑을 대신할 수 없을 때 내게서 나오는 삶의 모습이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이 믿음의 길, 순종의 길, 죽기까지 충성하는 이 길을 나는 성령님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
주님께서 내게 함께 하도록 연합하여 살게 하신 성령님께 나의 삶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오늘도 나의 작은 믿음의 한 걸음을 띄어 본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수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은 다 아십니다. 나의 생각, 나의 마음, 나의 수고, 나의 고통, 나의 믿음, 나의 동기,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다 아시니 나는 주님을 속일 수 없으며, 속지도 않으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런데도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나도 속고 이웃도 속여가며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 왔었습니다. 주님이 모르시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도 언제든 회개하고 돌아오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예전과 동일하게 사랑하여 주시고, 힘주시고 격려하여 주시고 주님을 위해 수고하게 하시니 참으로 주님은 사랑할 수 밖에 없으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주님, 오늘 죽기까지 충성하라 하신 말씀 앞에 내 자신을 돌아보며 이 길이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항상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붙잡아 주셔서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주님 의지하여 이 길 걸어갈 수 있도록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