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목요일
제목: 증거하여
요한계시록 1:1-8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질문
1.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가?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을 요한은 다 증거하고 있다.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저녁 늦게 집에 오는 길, 11시가 넘어서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단감과 사과와 귤을 바구니 몇 개에 담아서 늘어놓은 채 팔고 있다. 걱정이 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데, “할머니, 얼른 집에 들어가셔야지요? 너무 늦었네요. ” 마음이 짠하면서도 아직까지 들어가지 않고 있는 할머니가 청승맞아 보인다. 오죽했으면 아직도 못 들어가실까! 한 바구니에 5천원이라는 말씀을 듣고 한 바구니를 사면서 “빨리 들어가세요~” 말을 건네는 내 태도가 조심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앉아 계시는 할머니, 지갑에 돈이 더 있는데... 망설여진다. 그렇지만 핑계 댈 것도 없다. 5천원을 주섬주섬 꺼내는데... 할머니 앞에서 망설이며 서 있던 학생처럼 보이는 청년이 한 바구니를 산다. 만원어치 사라는 할머니 말씀에 5천원 밖에 없어요~ 하는 대답, 그 진정성있는 말을 들으며 찔렸다. 아까 나에게도 만원어치 사라는 걸, 나는 딱 잘라서 5천원어치만 달라며 빨리 들어가라는 말만 건넸다. 만원어치는 사야지 적용이다 싶어 사려는데 버스가 온다. 그냥 모르는 척 버스에 올랐다. 나의 수준이 여기까지다.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웃 사랑을 지키지 못하는 나의 악이다. 아침에 큐티를 나누며 아들에게 고백하는데 부끄럽다. 식탁에서 “ 엄마, 이 감이 그 감이야?” 아들이 묻는데 민망하다.
버스가 파업이라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남편 차를 가져가기로 한다. 그러자니, 일찍 서둘러 남편을 먼저 태워다주고, 오후에는 아들을 실어 나르기로 했다. 늘상 이용하던 버스에 대해 감사함보다는 왜 파업에 대한 불편감이 더 크다. 한 번 생각을 하고나서야 일상에서 이용하던 버스에 대한 감사가 나왔다. 그게 내 수준이다.
다행히 버스는 파업이 아니었다. 그래도 아들과의 약속을 위해 태워다주는데, 아들은 밥을 먹기는 했지만 또 뭔가가 먹고 싶단다. 평소에 햄버거를 한 번도 사주지 않았던 부모의 폭력! 한 번만이다! 라는 다짐으로 친구와 함께 햄버거를 사줬다. 참 아들 입장에서 고달픈 부모를 만나 누리지 못하는 게 많다. 참아야 하는 것도 많다. 일상적이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아들, 게다가 주일에는 남들 안 가는 교회, 그것도 먼 거리에 있는 교회를 가려니 일찍 일어나는 적용을 해야 하는 아들이다. 그러고 보니 고마움 뿐이다.
그것도 잠시, 8시 50분에 나갔다는 말에, 그러고도 집에는 오지 않고 은행동이라는 말에 화와 함께 생색이 올라왔다. 어쩌면 저럴 수가 있는가? 자녀는 부모 말에 거역하는 게 전공이라는데 실망스러웠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속아주는 게 엄마의 전공이라 하셨지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채근하고 쑤시게 된다. 아, 이 또한 나의 수준이다. 나로 인해 이 아들들은 언제까지 수고해야만 하는지, 내가 회개할 죄와 악! 그게 뭔지... 근데 우선은 억울하기만 하다. 아들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란 원망이 든다.
아들에게 계시해야할 예수 그리스도 갈 길이 멀다. 먼저는 내 안에 증거해야 할 그리스도, 그게 먼저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한 템포 늦지만, 감사를 찾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나의 악과 죄, 드러나는 나의 현 수준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말씀을 지키는 복 있는 자가 되어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주기를 기도합니다.
3. 예수님만으로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11월 23일 금요일
제목: 나 요한은
요한계시록 1:9-20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질문
1. 내가 갇혀 있는 밧모섬은 어디인가?
묵상
예수님으로 인한 환난! 과연 내게 있기나 한가? 귀에 듣기 좋은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걸 채우고 싶어하는 욕구, 그게 밧모섬이다. 욕심과 야망에 갇혀 있는 밧모섬!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받는 환난이 아니고, 그로 인해 갇혀 있는 게 아니다.
거짓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겸손한 척 하지만 내 공적이라고 생각하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왜 찡그려요? 묻는 질문에 워낙 요즘 눈 상태가 안 좋아 침침하고 답답하고 아프고 잘 안 보이기도 하지만... 내 맘의 못마땅함이 얼굴에 드러났음에도, “눈이 아프고 침침해서 그래~” 하고 얼버무리는 나의 거짓, 그럴 수밖에 없는 장황한 설명과 핑계...
학교가 왜 그렇게 재미있어요? 하고 천연스럽게 묻는 질문에 그게 또 나의 공인 양 마음이 환하게 펴지는 뿌듯함과 흐뭇함... 내가 드러나거나 드러내지는 않지만, 너무 힘들어요~ 라고 고백하는 한 사람의 사정은 내 탓이 아니고 너의 탓이고 가정의 탓이라는 맘이 깔려 있고,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는 아이에게는 그게 내 공로와 내 애씀이라는 공적이 저 뿌리 안에 있다.
아침 식탁에서 아들에게 10시까지는 공부하고 오라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남편에게 큰 소리를 냈다. 아이 의사를 존중해야지 그렇게 명령만 하면 되느냐고. 어제도 일찍 온 아이들인데... 아빠 의견은 충분히 전달했으니까 뒤에서 지켜보면서 격려해주면 어떻겠냐고...남편이 당황해한다. 마음도 상해한다. 나도 아이들에게 닦달하지만 남편은 더하다. 남편에게 사과를 했다. 고맙게도 또 금방 풀어진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쑤시는 게 아니고 기다려주고 인내하는 적용이라고 머리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참 지키는 게 안 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예수님으로 갇혀 있지 못하고 나의 욕심과 욕구를 채우느라 갇혀있는 밧모섬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보게 하셨으니 회개케 하시고 들은 말씀을 지키게 하소서
② 성령에 감동하여 말씀 듣는 공동체에 속해 음성 듣고 상황과 환경 가운데 깨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2. 내가 갇혀 있어야 할 곳, 인내하고 참아야 할 곳에서 적용하기를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