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믿음의 길을 돌아보는 자리에 서서
(QT본문: 계 1장 09절~ 20절)
2012-11-23 금요일.
[본문: 계 1장 09절~ 20절]
[관찰]
그리스도의 재림 계시 9~20
1. 요한은 자신을 그리스도인들의 형제요, 예수 안에서 함께 환란 받고 하늘나라 백성으로서 고난을 견뎌온 자로 소개하며, 현재 밧모 섬에 있음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거 때문이라 하였다.
2. 그는 주일에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그것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말씀이었다.
3. 그는 말씀하는 분이 누구신지 알아보려고 몸을 돌이켰을 때 일곱 촛대를 보았는데, 그 사이에 예수님 같은 분을 보았다. 그 분은 발에 끌리는 옷(거룩성)에 가슴에 금띠(신실성), 흰 양털같고 눈 같은 머리와 털(순결성), 불꽃 같은 눈(예지), 빛난 보석 같은 발(능력), 맑은 물소리 같은 음성(신적 영광), 오른 손에 일곱 별(일곱 교회), 좌우에 날 선 검(말씀), 해가 힘있게 비추는 것 같은 얼굴(부활하신 몸)을 하고 계셨다.
4. 영광의 주님을 만나자 요한은 죽은 자처럼 그 분의 발 앞에 쓰러졌다. 그러자 주님은 그에게 오른 손을 얹으시고 두려워하지 말라시며, 당신은 처음과 마지막이시며, 살아있으시며, 전에 죽었었으나 이제는 영원히 살아계시며, 죽음과 지옥의 열쇠를 가지고 계시다고 말씀하셨다.
5. 그러므로 이미 본 것과 지금 있는 일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록하라 하시며, 주님의 오른손의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지도자들이며,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라 말씀하셨다
[교훈 적용]
요한의 믿음의 여정이 느껴지는 자기소개가 감동적이다.
나는 당신들의 형제요
나는 예수 안에서 당신들과 함께 환난 받은 자요
나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고난을 견뎌온 자다.
또 지금 있는 이곳 밧모 섬도 하나님 말씀과 예수님 증거 때문이라 하였다.
사도 요한의 자기 소개 앞에 고개가 숙여진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 때문에 환난도 받고, 고난도 견디고, 유배도 되었다 하는데,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마땅히 겪어야 할 일이라는 인식과 한결같이 견뎌온 그의 삶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지 않는가?
참으로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가 아는 것과는 정말 다르다.
예수님 잘 믿으면,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 잘 하면, 소위 세상 사람들보다 더 잘되고, 더 잘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다른 사람들도 “나도 한번 믿어봐야겠다” 이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런데 그 반대로 사람들 눈에 보기에 환난이나 받고 고난이 계속적으로 주어진다면, “야 나도 그 길 따라가야겠다” 라고 생각을 할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환난을 받고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그렇게 한결같이 견뎌냈다는 점이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환난과 계속되는 고난이 보이지만, 믿는 우리들에게는 저가 그렇게 환난과 고난 속에서도 한결같이 동일한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음은 주님께서 은혜주시며 함께 동행하여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본다.
믿음의 눈이다.
그래서 신앙의 길은 믿음의 길이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송하며 가는 길이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5~39)
그 사랑이 얼마나 컸으면 그 어떤 환난도 고난도 핍박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위험도 칼도 다 감당하겠다 하겠는가? 무엇이 오더라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다고 하니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이라는 고백이다.
세상의 어떤 권세도 어떤 일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낼 수 없다 하니 내가 구하고 얻어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가 분명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확신, 이 믿음을 얻는 것이 내 평생 구해야 할 것이요, 내 평생 간직하고 지켜가야 할 모습이다.
주님과의 교제를 다시 시작한지가 이제 반년이 지나가고 그 동안 나도 참 많이 변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순위가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언어가 바뀌고, 행동이 바뀌고, 습관도 바뀌고, 먹는 것도 바뀌고, 의지도 바뀌었다.
무엇보다도 간구하는 마음에 주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셨다.
이렇게 일찍 일어나본 적도 없는데 주님께서 함께 하여 주시니, 감당하게 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게 하신다.
여기서부터 나의 변화는 시작되었다.
내가 변화하니 내 주변이 변하고, 환경이 변하고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과거 술독에 빠져 살던 결과로 나온 배도 이제는 서서히 빠져가고 있으니 변화된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표징이다.
이거 배 집어넣느라고 수고를 해도 보통 한 것이 아니다.
보통 해서는 되지가 않더라.
전에보다 더 해야 서서히 변화가 되어, 어느 시점에 오니까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났다.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예전처럼 보통으로 해서는 되지를 않는다.
나 못합니다 하고 주님께 내어 맡기고 그에 따른 행동이 뒷받침 되어야 신앙이 성숙되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하고, 내가 못하는 것만 몰아서 주님께 해 달라고 하고, 이렇게 해서는 주님과 바른 관계, 동행하는 관계를 가져갈 수가 없다.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았을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이 출발은 아무도 없는 고요한 시간에 은밀한 곳에서 주님과의 만남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예수님이 그러셨고, 믿음의 선조들이 그렇게 하셨고, 이제 나도 그렇게 하고 있다.
8년 기간의 신앙공백이 이 새벽 무릎으로 시작하는 데서 메워지고 채워져 가는 것을 본다.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과 영으로 교제하며 내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훈련을 한다. 이 훈련이 내 마음과 생각을 세상적 가치관에서 천국 가치관 말씀의 가치관으로 변화시키고, 이 가치관이 내 마음의 심비에 새겨져 내 손과 발을 움직여 주님을 따르는 길에 서게 함을 믿는다.
사도 바울도 그렇게 사역을 열심히 하는 중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였다” 고백하였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세상적이면서도 육체적이 욕구에 대해 단호히 제어하며 오직 그리스도를 섬기는데 자신을 복종시켰다 하였다.
바울 사도도 그러하였는데, 하물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하지만 그러함에도 나는 오늘 사도 바울의 뒤를 이어 그의 발자취를 쫓아 주님 따라 가리라 고백하며 주님께서 나의 이 마음을 붙잡아 주시며 은혜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사도 요한의 신앙의 발자취를 통해 믿는 자로서 어떻게 믿음의 행로를 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멋 훗날 믿음의 여정을 돌아볼 때, 사도 요한과 같은 간증을 할 수 있도록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며 늘 함께 하셔서 오늘 그 역사를 써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어떤 환경에서도 한결 같은 믿음으로 신앙을 지켜 주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주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답게 쓰여지는 그런 한 날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