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은혜, 은혜로 사는 내 인생
(QT본문: 신 9장 13절~ 29절)
2012-11-21 수요일.
[본문: 신 9장 13절~ 29절]
[관찰]
금송아지 숭배사건 13~21
1. 모세에게 속히 내려가라 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고집 센 백성이라 하시며, 이들을 완전히 멸망시켜 세상에서 이름까지 없애버리시며, 대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세우겠다 하신다.
2.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산에는 불이 붙었고, 그 손에는 언약의 두 돌 판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것을 보고 모세는 그 돌 판을 던져 깨뜨려 버렸다.
3. 그리고 모세는 다시 40일 밤낮을 여호와 앞에 엎드려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중보하였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어주셨다. 아론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려 하셨으므로 모세는 그를 위해 중보 기도 하였다. ,
4.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든 죄악의 송아지를 불살라 찧고 갈아서 흘러내리는 시내에 뿌렸다.
가데스 바네아 반역사건 22~24
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의 사건들을 나열한다.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로 원망하고, 마실 물이 없다고 하나님과 자신을 원망함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고, 또 만나 싫다고 고기달라 불평하는가 하면, 가나안 정탐 결과에 대한 불신앙적 보고를 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믿지도 않고 불순종하였다 하며, 백성들이 지금까지 항상 여호와를 거역했음을 증거하였다.
모세의 중보기도 25~29
1. 이스라엘을 멸하겠다 하시는 하나님께 모세는 사십주야를 하나님 앞에 엎드려 백성들을 위하여 중보기도 하였다.
2.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곧 주의 기업인 이스라엘을 멸하지 말아달라고 간구하였으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구하였고, 백성들의 고집과 죄악을 보지 말라 달라고 간청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이름이 비난받지 않게 하기 위하여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였다.
[교훈 적용]
지도자 모세의 중보기도로 이스라엘이 살아났다.
지도자가 없으니 서로서로 공모하여 금송아지 만들어 하나님 대신 만든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이다.
광야생활 싫다고 하나님 향해 악한 말 퍼붓다가 진노의 불 받아 징계받은 이스라엘이다.
마실 물 없다고 하나님 원망하고 모세 원망하며 하나님을 시험한 이스라엘이다.
만나 싫다고 고기 달라 불평한 이스라엘이었고,
약속의 땅으로 가라 하셨는데도, 하나님 믿지도 않고 불순종하면서 하나님을 거역한 이스라엘이다.
이런 이스라엘에게 모세는 “내가 너희를 알던 날부터 오므로 너희가 항상 여호와를 거역하였느니라” (24)하였다.
그러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알던 그 날부터 지금까지 백성들이 여호와를 거역해 왔다는 것이다.
오죽 했으면, 이런 말까지 했겠는가?
뭐하나 말 듣고 제대로 하는 것 없이, 불평불만이나 하고, 못 믿고, 불순종하고, 거역하니, 지도자로서 과연 이들을 인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갈등이 말이 아니었겠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들은 지도자만 없어지면 사고를 치니, 하나님께서 금송아지 만드는 것을 보시고는, 그렇게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모세더러 빨리 내려가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다급하셨으면 그렇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님도 급하셔서 모세를 빨리 내려 보내셨는데, 사람인 모세는 이 광경을 보고 어떠했겠는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왔고, 이런 백성들은 도저히 하나님과 언약관계를 가질 수 없는 백성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자기도 모르게 분노가 폭발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 판을 던져 깨뜨려 버렸으니, 이제 볼 장 다 본 것이다.
백성들은 우상숭배의 끝을 달리고 있고, 모세는 분노의 끝을 달리고 있으니, 이 나라 이제 끝난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맡겨주신 사명 있어,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하나님께 나아가 40일 밤낮을 식음을 전폐한 채 일사각오로 하나님께 매달렸으니, 죽기를 각오한 모세의 중보에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셨다.
식음을 전폐하고 살려달라고 울며불며 매달리는 자식 앞에 어찌 부모가 보고만 있겠는가?
우리 하나님께서 다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당장은 범죄한 죄악 때문에 공의의 하나님으로서, 징계를 내리실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이시지만, 조목 조목 이유를 들어가며 용서를 구하는 모세의 중보 앞에 하나님도 어쩔 수 없으시다.
공의를 져버릴 수는 없으시지만, 은혜와 긍휼을 베푸시며, 최소한의 징계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만난다.
모세의 중보를 들어보자
모세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였다.
그렇게 말도 안 듣고, 하는 것마다 거역하였는데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기업이라 하였다.
그렇다 내가 비록 하나님 말씀도 잘 안 듣고,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쏙쏙 빼먹는 듯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것을 보면, 내가 그래도 예수님 핏 값으로 낳은 존재인데, 그래서 하나님께서 남의 자식 대하듯 그렇게 함부로 하지 않으셨다.
또 하나님과 언약 맺은 백성이라 하였다.
하나님의 언약이 이렇게 굉장한 것이다. 우리네 인간은 약속을 지킬 힘과 능력이 없다. 그러니 내가 하나님과 무슨 약속을 할 처지나 입장이 되지를 않는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하시고, 그 약속을 반듯이 지킨다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화가 나셔도 그 언약을 깨뜨리지를 못하신다.
한 번 맺은 언약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용서의 길, 구원의 길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고, 그 길을 통하여 언약을 계속 지켜나가시겠다 하시는 하나님의 나를 향한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내가 사는 것이다.
내가 사는 이유는 그래서 예수님 때문이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바라보아야 하는 분이 예수님이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다.
여기에 성령님까지 내 안에 계시니, 나는 삼위 하나님과 동행하는 참으로 엄청난 복 받은 사람이 된 것이다.
이 복을 깨달아 누리고 경험하는 사람을 복 받은 사람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데 이 복을 받는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데, 내 힘으로는 살 수 없다는 자기 고백과 정말 나는 죄인일 수 밖에 없다는 자백, 그리고 하나님만이 나의 생명이요 나의 능력이라는 인정이 있어야 진정으로 복을 누릴 수 있으니, 이런 복을 바라크의 복, 하나님을 예배하는 복,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복,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내세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기가 막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가 있었으니, 현재 진행하고 있는 공단의 컨설팅과 관련한 아이디어였다.
그 동안 내가 공단에 대안으로 제시한 방안에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현장 적용에 따른 실무적 애로사항을 공단 직원의 아이디어를 통하여 해결하게 하셨다.
내가 제시한 방안에 대해 주관부서에서는 다른 조건은 다 갖추었는데, 장기요양보험 현장에서 수고하고 있는 요양보호사와 수급자 가정에 적용할 때 이런 저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였다 하며 계속 저항을 받아, 그 동안은 논리와 명분으로 주장을 해왔는데, 더 이상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어제 오후 내내 공단에서 회의를 하고 돌아오는데, 공단 직원의 입을 통하여 아이디어를 주신 것이다.
참으로 기묘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이 방안을 찬성하시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비록 생각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이렇게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통해서도 이루어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는 시간이었다.
나의 악함과 죄악만 보시는 하나님이시라면 나는 살 근거를 잃고 만다.
살 수가 없고, 또 존재할 이유도 없다.
죄책감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멸하시기 전에 내가 먼저 죽어버릴 지도 모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이 왜 필요했나?
매일 내 죄보고 죄책감에 빠져 자신감 없이 그렇게 살라고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신 당신의 아들을 이 낮고 천한 세상에 비천한 몸으로 오게 하셔서 십자가에까지 달려 죽게 하시고, 또 자녀 삼아주셨겠는가?
죄는 지었으되, 그 죄를 보고 내 힘으로 못산다는 것을 깨닫게 하셔서,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 내 죄를 보라고 하시는 것이다.
따라서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용서받지 못할 죄는 제외)
누가 뭐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 용서하셨다.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모두 다.
그래서 어떤 죄는 더 중하니, 용서가 덜 되었고, 또 어떤 죄는 덜 중하니 용서가 되었고 이런 것은 없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를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의 생각은 이미 모두 다 용서되었다는 것이다.
이 용서에 누군가의 생각을 넣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용서만 있을 뿐이다.
모든 죄는 다 똑 같은 죄다.
세상에서는 경범죄 중죄가 있어 그 형벌이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께 있어 죄는 다 똑 같은 죄일 뿐이다.
따라서 죄의 경중을 따지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맞지도 않다.
내가 하나님 안에서 자신감 있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죄 저런 죄, 죽을 죄 지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용서받았는데, 매일 그 죄보고 아직도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어제도 그 죄보고, 오늘도 그때 지은 죄 또 보고, 내일도 그 죄보고, 매일 죄만 본다면, 언제 하나님 볼 시간 있겠는가?
하나님을 봐야 살지, 나를 보고, 믿지도 못할 나를 봐야 뭐가 나올 것이 있겠는가?
나를 봐야 죄 밖에 안 보이는데
그러니 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문제를 보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그 문제를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로 나아가기 위해 경건의 훈련에 힘쓰고, 하나님을 닮아가려 애쓰고,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이 길이 바로 내가 살 길이요 나아갈 길이다.
오늘도 나는 오직 주님 안에서 승리하는 나를 발견하고 싶다.
주님께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인도하셔서, 내가 오늘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 주님, 오늘도 내게 은혜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기도를 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를 위해 간절히 기도한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내가 사는 것이 지도자의 중보 때문이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나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님 때문이며, 내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지만 내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시는 중보 때문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자격도 갖추지 못하고 매일 죄만 짓고 하나님을 거역하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살게 하신 것처럼, 저의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하나님의 언약으로 용서하시고 함께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주님의 이 은혜, 이 사랑 잊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여 행하는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도록 오늘 하루도 붙잡아 주시며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