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QT본문: 신 9장 1절~ 12절)
2012-11-20 화요일.
[본문: 신 9장 1절~ 12절]
[관찰]
하나님의 권능과 신실성 1~5
1. 이스라엘보다 강대한 나라요, 큰 성들이요, 높은 성벽을 쌓고 사는 장대한 아낙 자손이나, 모세는 백성들에게 곧 가나안을 정복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2.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맹렬한 불처럼 앞서 나가셔서 그들을 쳐 부수어 쫓아내실 것이라 하였다.
3. 그런데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얻게 된 것이 자신들의 의로움 때문이었다 생각할 것을 경계하여 모세는 백성들의 의로움이나 정직함 때문이 아니라, 가나안 백성들의 악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시고 그 땅을 얻게 하셨다 하며, 조상들과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하였다.
여호와의 진노 6~12
1. 그러므로 백성들이 알 것은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주신 것은 백성들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며 오히려 백성들은 악하고 고집이 세다 하였다.
2. 광야 40년 생활이 그러했으며, 애굽에서 이곳 시내산에 이르기까지 불순종과 거역으로 점철된 패역의 역사였으니,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할 뻔 했다고 하였다.
3.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기록한 돌 판을 받으러 산에 올라 40일 간을 밤낮으로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먹을 것 마실 것을 금하였었다고 하였다.
4. 그리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그곳에 있은지 40일 만에 두 돌 판을 주셨고, 일어나 즉시 내려가 백성들의 타락하고 우상을 만든 것을 보게 하셨다.
[교훈 적용]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는 사명, 하지만 두려운 상황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본다.
강대한 나라요, 크고 강한 민족이 산다고 하는데, 그저 남이 시키는 것이나 하며 살았던 노예생활에 익숙했던 그들이 군사력도 없고, 무슨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닌데, 과연 그 약속의 땅을 정복은 할 수 있을까 하며 두려워 떨고 있는 바로 그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지도자 모세가 백성들에게 들려주고, 깨닫게 해 주어야 할 것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지도자 모세는 백성들에게 알라고 이야기 한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것 같이 맹렬한 불처럼 너희들 보다 앞서 나가셔서 그들을 쳐 부술 것이라는 것을 알라 하였다.
또 이 아름다운 가나안 땅을 주심이 백성들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가나안 족속들의 악함 때문이요, 조상들과의 언약 때문인 것을 알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패역한 모습을 몰랐을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눈에 보이는 크고 강한 가나안 족속 때문에 벌벌 떨고 있는 모습하며,
조금만 상황이 좋아지면 내 탓이라 하며 목에 뻣뻣하게 힘이나 주며 으스대는 꼴하며,
조금만 의심이 가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마음에 위로를 삼으려 우상이나 만들어 대며,
출애굽 한 후 지금 이곳 시내 산에 올 때까지 늘 하나님 믿지 못하고 말씀에 거역이나 하였는데,
그런 그들 자신을 생각할 때, 의롭다, 정직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우습기만 하다.
잘못한 것은 금방 잊어버리지만, 잘한 것 하나만 있으면 그것이 바로 자신인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라 그런가?
이렇듯 인간이라는 것이 내가 내 자신을 평가하면 그렇게 후하게 잘 한 것 하나 때문에 자신의 의로움이 커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남이 보면 어떨까?
남도 그렇게 자기처럼 생각해 줄까?
아니다. 남이 나를 평가할 때는 잘한 것보다는 못한 것이 크게 보이기에, 못한 것 하나 때문에 사회에서 매장되는 것을 보면, 나와 남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이렇게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나와 우리네 인생을 어떻게 보실까?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롬3: 11~18)
이렇게 선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네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진단이시다.
그러니 겸손할밖에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 있다고 고개나 쳐들고 자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도 은혜인 것을.
가나안 족속을 보라
악함 때문에 쫓겨나고, 멸망 당했다 하지 않으신가?
지금 내가 살고 누리는 것도 다 하나님과의 언약, 곧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1)라는 언약 때문이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는가?
그래서 말씀, 그러니까 약속 붙잡고 사는 것이 이렇게 중요함을 깨닫는다.
약속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요, 약속 때문에 복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약속, 구원의 언약, 언약의 돌판을 받으려면 사십 주야를 하나님 앞에 잠잠히 있어야 한다 하신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아무데도 없는 고요하고 적막한 산으로 올라
그곳에서 떡도 물도 금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니, 그 약속을 받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하루 살아갈 약속의 말씀을 받는 것도 이와 동일하다.
세상이 잠들어 있는 그 시간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하나님과 나만이 은밀하게 만날 수 있는 그곳에서
세상을 의지하며 벗하며 살리라 하는 마음, 생각 다 끊어버리고
말씀 안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오직 주님만 잠잠하게 바라보며 주님께 구할 때
비로서 나를 만나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상황 저 상황, 인간적인 상황 다 포기해야만 갈 수 있는 길이요,
최우선을 약속 받는 자리에 가야 한다는 사명이 있어야 가는 길이요
간절하게 하나님을 앙망해야만 약속을 받아낼 수 있는 길이요
육체의 한계, 의지의 한계를 뛰어넘어,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갈 때만이 갈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은혜를 주신다.
왜냐하면 내 힘으로는 못 가니까, 은혜로 가게 하신다.
내 육신의 힘으로 내 의지로 가기에는 너무도 쉽게 지쳐버릴 수 있으니, 은혜를 부어 주셔서 걸어가게 하신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물으신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호용아!
너는 어떠느냐?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너의 의로움 때문이냐?
네가 이기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일이 네 힘과 능력 때문이냐?
마음에 교만하지 말라 하신다.
언제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라 하신다.
내게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기억하며,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음성에 늘 깨어 있으라 하신다.
약속의 말씀은 혼탁한 곳에서는 얻어낼 수가 없다.
혼탁한 곳에서는 고요한 곳에서 얻어낸 약속과 받은 은혜로 빛으로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곳이라 하신다.
내 마음의 혼탁, 내 삶의 혼탁, 내 관계의 혼탁함을 다 주님께 아뢰고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으며, 내어 맡기고, 주님께서 오늘 주신 은혜로 나는 또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앞서 행하시며, 약속으로 나를 붙들어 가신다 하시는 음성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목이 곧은 속성을 지녔는지라, 어떻게든 내가 했다고 자랑하고 잘난 척 하고 싶은 것이 우리네 인생이니, 불쌍히 여겨주시며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무엇을 하였든지 간에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모세가 약속을 받기 위해 하나님이 계신 곳에 올라 40주야를 먹을 것 마실 것 금하며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기도했던 것처럼, 매일을 약속을 받기 위해 무릎으로 살아가는 제 모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주님 주신 은혜와 말씀 붙들고 나아가오니 함께하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귀한 하루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