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화요일
제목: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에스겔 31:1-18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의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아서 높이 빼어났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은즉 내가 열국의 능한 자의 손에 붙일찌라 그가 임의로 대접할 것은 내가 그의 악을 인하여 쫓아내었음이라
질문
1. 내 마음의 교만함은 무엇인가?
묵상
하나님 나라의 동산 안에 있으면서도 부럽고 부럽고 부러운 세상이 여전히 있다. 게다가 나의 악과 죄를 보면서도 상대방의 허물이 더 크게 보이고 꼬이는 게 나다. 말씀 앞에 서는 자로 지키는 자로 전파하는 자로 있길 바라면 기도하면서도 나의 실상은 이 모양이다. 내 모습이 그럼에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은 참으로 풍성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월요일에 노래 부르는 시간을 갖게 되었음도 감사다. 내가 바빠서 참석 못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나님이 나를 위해 열어주셨다. 그렇다면 더 감사하며 겸손해야 할 터인데... 내가 잘 해서 주신 양,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기는 일등이다. 그건 내 적용일 때만 사용해야 하고 남에게 적용은 그럴 수도 있지~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내게는 뭐든지 OK지만 남은 NOT OK인 경우가 더 많다. 오카리나 강사만 해도 그렇다. 나라면 그랬을까? 로 적용하니 내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게 나의 교만함이다. 어쩌면 그럴 수가~ 말이 되나? 그런 옳고 그름의 기준이 내게는 여전히 살아있다.
1. 나의 악과 죄만 보고, 상대의 악과 죄를 정죄하거나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10월 10일 수요일
제목: 내가 여호와인 줄
에스겔 32:1-16
내가 또 그 모든 짐승을 큰 물 가에서 멸하리니 사람의 발이나 짐승의 굽이 다시는 그 물을 흐리지 못할 것임이여 그때에 내가 그 물을 맑게 하여 그 강으로 기름 같이 흐르게 하리로다. 나 주 여호와의 말이로다. 내가 애굽 땅으로 황무하여 사막이 되게 하여 거기 풍성한 것이 없게 할 것임이여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을 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로다.
질문
1.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아는가?
묵상
하나님, 계속적인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을 드러내고 나타내신다 하신다. 내게 있는 모든 상황과 환경, 사건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게 하시고자 하신 단초로 쓰일 수 있음을 알겠다. 참으로 무지하고 무식하고 그래서 용감했던 시절, 지금 역시고 무지하고 무식하지만... 용감함 보다는 묻자와 가로되~를 훈련 중이다.
그 시절이 없었던들 그랬을까? 그렇기에 하나님의 후대하심이고 하나님의 은혜고 하나님께 감사하다. 세미한 음성이어도, 하나님 음성을 들을 수만 있다면 감사하겠노라 기도했을 때, 너무 큰 소리로도 마시고 너무 작은 소리로도 마시고 내가 들을 수 있는 소리와 크기로 또 한 번으로 그치지 마시고 내가 제대로 알아들을 때까지 계속 들려달라는 하나님을 향한 간구의 응답하심이 오늘임을 안다.
알아듣지 못하니까 매일 매일, 또 공동체를 통해 끊임없이 들려주시는 은혜! 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기를 원한다. 오늘 내게 있는 상황과 사건, 환경, 말씀으로 들려주심을 통해서...
1. 하나님이 주신 가장 좋은 환경이 오늘임을 알고 감사합니다.
10월 11일 목요일
제목: 망해야 할 애굽
에스겔 32:17-32
거기 에돔 곧 그 열왕과 그 모든 방백이 있음이여 그들이 강성하였었으나 칼에 살육 당한 자와 함께 있겠고 할례 받지 못하고 구덩이에 내려가 자와 함께 누우리로다.
질문
1. 망해야 할 나의 애굽은 무엇인가?
묵상
광해 영화를 보는데, 내가 꿈꾸는 애굽이다. 가족과 함께 영화도 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오붓하게 함께하는 시간.... 우리 남편은 늘 바쁘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이 있고 언제나 바쁘다. 억지로 오늘 시간을 낸 남편과 함께 가서 영화를 보는데 그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는 남편에게 마음이 쓰인다. 차라리 아들들과만 올걸 그랬나 싶기도 하다.
남편으로부터 채워지지 않더라도 오로지 하나님 한 분만으로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건 예배 시간뿐이다. 여전히 여유 있는 남편, 나만 헤아려주고 보듬어주는 남편을 나는 꿈꾼다. 그런데 그건 망해야 할 나의 애굽이라고 말씀하신다. 두렵게 했던 바로 역시, 살육 당한 자와 함께 누울 수밖에 없음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남편이기에 족하고, 내 진짜 남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분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게 나의 예배여야 함을 알겠다. 하나님, 오늘도 말씀해주시니 감사하다.
10월 12일 금요일
제목: 파수꾼
에스겔 33:1-16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니라.
질문
1.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묵상
드디어 오늘 목장 예배에 참석한다니 설레이고 설레인다. 남편과 우리들 공동체에서 함께 말씀 듣는 걸 얼마나 꿈꿨던가 예배 시간에도 남편 옆이 아닌 다른 사람 옆에 앉아 드리는 게 서럽기도 하고... 그런데 마음으로만 하루라도 빨리 남편과 함께 예배드리고 싶어했지 나는 파수꾼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
나는 한 번도 부부 목장 예배에 대해 같이 가자고 말을 꺼내지 않았다. 꺼낼 생각을 못 햇다. 지난 번 부목자 모임에 나갔다가 오는 길에 남편과 목장 예배 가는 적용을 해보라는 말에 귀가 번쩍 열렸다. 오매불망, 기다리고 기다리던 목장 예배!! 역시나 천국 잔치 같다. 예수님과 함께 성찬을 나누고 교제하는 듯한 착각! 그게 믿음의 공동체가 갖는 힘인 가보다. 내가 해야 할 경고, 파수꾼의 역할을 위한 순종과 적용! 하나님 들려주실 때 아멘! 하며 적용하겠다.
10월 13일 토요일
제목: 입으로는 사랑을
에스겔 33:17-33
17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31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질문
1.입으로 사랑을 나타내고 마음으로 이욕을 좇는 나의 행실은 무엇인가?
묵상
다음 주 일주일간이나 출장인 상사에게 목사님 책을 선물한다고 준비하고서는 계속 잊고 지냈다. 또 오늘은 잊지 말아야지 했는데 월요일 수업 준비를 한다고 하다가 보니 벌써 퇴근 시간이 지났다. 사랑을 표현한다고 하면서도 우선 순위를 지키지 못한 나의 행실이다. 서랍에 넣어놓으면서 누군가 주어야 할 사람이 생기겠지 싶은데, 그러고 보니 또 한 권, 주인을 못 찾은 책이 있다. 이혼을 앞두고 있어 꼭 전하고 싶었는데... 그냥 전학가는 바람에 주지 못한 책! 그것도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생기겠지~ 함께 넣어둔다.
한 아이가 “너는 그것도 못하냐?”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게 눈에 거슬렸다. 자주 등장하는 말이 비교하고 평가하고 판단하고~ 그게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죄된 증거기는 하지만 좀 심하다. 학급 문화가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는 허용적이고 수용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부분을 보게 하는 단면이다. 입으로는 그러고 있지만 실체와 본질에 있어서는 여전히 판단하고 비교하고 내 가치와 기준이 중요한 나의 악을 보게 한다. 그러면서도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기 보다는 부모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더 많다. 반면, 수용적이고 허용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는 부모의 모습이 많다라는 걸 인정은 하면서도 그건 나의 영향력이라고 생각하며 우쭐하는 나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다.
민속놀이를 하는데 투호 놀이에서 그 아이의 “야! 너는 그것도 못 넣냐?” 라는 말에 상처받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러면서 이제 복수하기 위해 그 친구 뒤에서 살펴보는데 앗~ 그 아이는 쏙 잘도 넣었다. 우쭐해서 의기양양, 봐! 나는 넣지~하며 돌아선다. 그러나 그게 끝일까? 더 멀어진 항아리에 넣어야 하는데... 그 기회가 왔다. 드디어 “야! 너는 그것도 못 넣냐?” 하고 기다린 듯이 그렇게 말하는데 “이건 항아리가 너무 멀잖아~” 한다. 그게 그 아이만의 모습일까? 그게 내 모습일 것이다.
통을 가지러 연구실에 갔는데, 일부러 외면한 건 아니지만 맘 편하지 않은 상대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고 나왔다. 나와서 보니 그러고 있는 내가 비로소 보인다. 참말로 소심하기 그지 없다. 그게 나의 악이다.
10월 17일 수요일
제목: 투기와 분노
에스겔 36:1-15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땅을 대하여 예언하되 그 산들과 멧부리들과 시내들과 골짜기들을 대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내 투기와 내 분노로 말하였나니 이는 너희가 이방의 수욕을 당하였음이니라.
질문
1. 나의 현실은 무엇인가?
묵상
귀염둥이, 예쁜 현희, 예쁜 꽃 당신... 남편의 그런 달콤한 말에 녹아진다. 그런 말이 달콤하게 들린다. 그 말에 헤헤 입이 벌어진다.
상대가 그럴 수도 있음에도 그 말에 상처 받고 부르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가 나다.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1시 30까지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4교시라고 먼저 가도 되냐고 질문하다니... 현장학습 갔다가 시간이 지났다고 그냥 오겠구먼. 점점 나의 속좁음이 드러난다. 맘 상한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갔다. 예수님이 좋사오니 나는 결혼 안 하고 예수님의 신부로만 살겠다더니, 하나님 아시듯 음행의 연고로 꼭 결혼시켜 달라 조르고 졸라서 결혼했다. 그리고는 남편에게 폭 빠져 산 게 나다. 그러고도 별 가책도 없었다. 나를 잘 아시니 이해해야 하는 것도 하나님의 당연한 몫이다. 잘 아시잖아요? 나를 지으신 분이시잖아요? 참 뻔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수욕을 종결하고 투기와 분노로 회복시키신다니 하나님은 참 눈 먼 사랑을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 보인다 하시니 무릎 꿇고 통곡밖에 할 게 없다. 너무도 감사하고 감사해서...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감격해서... 나는 하나님을 입으로만 사랑한다 고백할 때, 투기와 분노로 되찾으시고 회복하시는 아버지
나는 그런 사랑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 엄마, 아빠에게 걸었지만 바쁜 엄마, 아빠는 내가 배려해야 할 상대였다. 할아버지, 할머니 역시 사랑해주셨지만 내가 잘 할 때만 예뻐하시는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나는 잘 해야만 했다. 사랑받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그게 중독인 줄도 모르고 사랑과 인정받는 것에 목숨을 걸었다. 역시 남편에게도 사랑받기 위해 살았다. 그래도 남편 앞이 제일 자유스러웠던 것 같다. 남편의 묵묵함, 성실함, 충성됨 그런 게 참 든든했다. 언제나 내 하고 싶은 대로 하다가 와도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게 남편 같았다.
상상속의 남편은 그랬다. 실상은 꼭 그렇지도 않은데... 왜 허상을 만들고 그게 남편이라 믿으며 위로를 얻으려 했을까? 채워지지 않는 갈급함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 부모도 내 조부모도 내 남편도 한계가 있었다. 그 먼 길을 또 돌아 돌아 해볼 것은 다 해보다가 다시 찾아온 하나님 앞, 말씀 듣는 공동체에 속해 얻은 전리품이다. 남편에게서 그나마 든든한 허상을 본 건, 그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이었으리라.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를 만났기 때문이었으리라. 우리 목사님이 대단해 보이는 것 역시, 성전이 세워진 삶을 살고 계시기 때문인 것처럼.
투기와 분노로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도 주님을 그렇게 뜨겁게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10월 18일 목요일
제목: 내가 거룩하게 할찌라
에스겔 36:16-38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찌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질문
1. 내가 더럽히고 있는 주님의 이름은 무엇인가?
묵상
내가 더럽힌 주님의 이름... 거룩한 그 이름을 주께서는 아꼈다고 하신다. 마음이 아프다. 주께서 주님을 거룩하게 하신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기에 주께서 이루신다. 그러나 그래도 내가 주님이 이루실 것을 구하기를 원하신다. 왜냐면 내가 주님이 여호와인 줄 알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이루시는 분임을 알고, 그것을 함께 누리며 증인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수고하는 환경과 상황, 게다가.... 우리 목사님이 나를 위해 수고하고 계시는구나! 나를 위해 우리 하나님이 수고하고 계시는구나! 처음으로 깨달아졌다. 불편한 동료, 불편한 내 주변인, 나 때문에 몽둥이로 애쓰고 있는 애굽임을 알게 되니 너무나 미안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내가 어쩌다가 이런 귀한 공동체에 들어와 귀한 말씀을 듣는 복된 인생을 살게 된 것인지...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은혜고 감사다. 하나님의 수고하심이었다. 나를 위해 있는 목사님, 나를 위해 있는 우리들 교회, 나를 위해 있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하나님 아버지,,, 그와 더불어 몽둥이로 쓰임 받았던 나를 괴롭게 했던 수많은 지인들! 그들 역시 나를 위해 수고하며 쓰이고 있음에 감사다. 내가 생각할 때 있을 수도 없는 일, 말도 안 되는 일들, 그건 마땅히 있을 수밖에 없는 내 삶의 결론이요. 하나님의 간섭하심이었다. 그렇다. 억울하지 않다. 섭섭하지도 않다. 그게 하나님의 허락하심이라면 그게 가장 최선인 것을... 그 방법이 아니라면 내가 깨질 수 있겠는가. 내가 내 한계를 볼 수 있었겠는가. 아~ 하나님! 그 은혜를 생각하며 울고 울고 또 울고 또 울었다. 그게 우리 아빠다. 그게 우리 하나님 아빠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 우리 아빠가 나의 주인이시다.
나는 내 보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질그릇인 내가 깨어진 적이 없다. 생명을 위해 내가 죽어진 적이 없다. 나를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만 있고 나를 위해 대신 깨어지고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만 있지 나는 그 예수님 말씀대로 제대로 순종하여 죽는 밀알이 된 적이 없다. 입으로는 죄인이라 하면서도 내 의만 여전히 살아있다. 무시 받고는 살 수 없다. 두로와 애굽의 가치관을 빼내기 위해서는 마구마구 무시 받아야 하고 짓밟혀야 하는 포도나무임에도 무시 받을 수 없다. 어떻게 감히 내게? 이렇게 함에도 어떻게 그럴 수가? 그게 나의 주제가이다. 그래서 억울하고 그래서 섭섭하고 그래서 서운하고 그래서 서글프고....
나의 수고는 모두 나 땜에 하는 수고다. 하나님을 위한 수고가 없다. 구원을 위한 수고가 아니다. 나 때문에 싸운다. 나를 위해 수고하는 환경과 상황, 인간관계를 못 참고 싸우고 또 싸운다. 그 환경과 상황, 인간관계가 나의 구원을 위한 몽둥이로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음을 그때 그때 알아차리지 못한다. 한 박자 늦게야 알고 뒷북이다.
아~ 나는 결국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 그 사람이 문제고 그 상황이 문제고 그 환경이 문제란 핑계로 시작하신 분도 끝내실 분도 주님이시라는 걸 잊고 있다.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주님을 주님으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한다. 계속 에스겔을 통해 하시는 말씀이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말씀이심에도 나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한다.
10월 23일 화요일
제목: 고토로
에스겔 39:17-29
전에는 내가 그들로 사로잡혀 열국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모아 고토로 돌아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방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신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묵상
이번엔 ‘천일의 약속’에 또 빠졌다. 잠잠하다 싶었는데, 언젠가 들었던 제목, 배우가 생각이 나서 한 편 보다가 맛깔스런 말에 두 번, 또 연이어 본다. 허한 공허감, 말씀을 잡고 가지만 마음 헤아려주지 않는 남편에게 채움 받고 싶은 걸 이런 로맨스에 빠진다.
아들에게도 수학책 없다는 말에 감정이 요동하고, 내 탓이다. 오늘 현장학습에 가서 오는 길에도 고집과 고집이 부딪혀 애를 먹고... 에너지 소모가 크다. 하나님, 고토로 돌아오게 하실 우리 주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게 하시는 우리 주님! 오늘은 멀리 떨어져 계신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우리 신실하신 하나님, 내가 알아듣지 못해도 또 들려주시는 주님, 사랑하고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10월 28일 주일
제목: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에스겔 45:1-17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찌니 그 장은 이만 오천척이요 광은 일만 턱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질문
1. 경계를 삼아 내 삶을 거룩한 곳으로 구분지어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지고 있는가?
묵상
어제 8시까지 늘어지게 잠을 잤다. 늦게 잤다는 핑계다. 9시까지 오신다는 중국어 선생님, 마음이 급하다. 남편은 기도하러 나갔다. 기도를 쉬면서도 가책은 없다. 그럴 수도 있지~ 나에 대한 관용과 허용, 자비하기가 끝이 없다. 아들이 작은 소리로, 대답 못하는 모습에 살짝 답답해하며 간식을 챙기는데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러다가 내 영역이 아닌 것에 대한 인식, 하나의 회피로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한다.
늦게 일어난데다가 아들 중국어 수업 덕분에 늦은 아침을 먹고 뭉기적거리다가 남편을 위한 한약을 지으러 출발! 서두르지 않는 남편에게 삐져서 방에 들어갔다. 내 마음은 간만에 오붓하게 둘이 나가는 외출, 데이트로 연결되어 점심이라도 함께하면 좋으련만... 남편은 아들 돌보기에 초점이다. 점심을 차려주고 가야지 않느냐는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나는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나의 욕구가 중심이다. 점심은 차려줬지만 나는 점심 먹기 싫다.
점심을 먹고 나간 남편은 도우넛 가게 앞을 지나치다가 나에게 사줄까? 한다. 그건 남편이 좋아하는 거다. 나는 빵도 싫고 과자도 싫다. 밥만 좋다. 당신 먹고 싶구나. 사줘요? 하니 아니란다. 1000원인데 1000원이라도 아껴야지~ 하는 말에 먹고 싶으면 말해요. 사줄게~ 미안해하는 남편! 아이 같다. 하나 사들고 건네주니 입이 헤~ 벌어진다. 맛있게도 먹는다. 반만 먹고 반은 이따가 먹겠다는 남편, 그것도 애기 같다.
거룩한 땅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들이 역할에 대한 순종이다. 남편에게도 아들에게도 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혼 후 나는 남편으로 인해 채움을 받았지만, 남편이 나로 인해 채워진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들 역시, 엄마로서 채워주지 못한 것이 요즘 들어 드러나고 보인다. 경계를 삼아 드려야 할 예물뿐 아니라 내 사명과 역할에 있어 충성하지 못하는 나의 실상이 보인다.
가장 먼저, 우리 가정에 말씀이 들려지는 예배가 회복되길 기도한다. 큐티 나누기에 아직도 아이들과 제대로 참석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 이제부터라도 적용해서 함께 나누어야 하겠다. 또 남편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 내 뜻에 맞을 때에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기쁘게 따르는 모습이 필요하다.
10월 30일 화요일
제목: 약 재료
에스겔 47:1-12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질문
1. 생명수로 인해 살아나는 약재료와 나눌 은혜가 있는가?
묵상
전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과 만났다. 만날 때마다 주보와 책을 선물로 주지만... 살아나는 은혜를 아직 보지는 못했다. 큐티인에 소개된 자신의 죄와 악을 나눈 말씀이 충격적이라는 말을 한다. 최소한의 순종으로 선물은 하면서도 이걸로 돌아올까? 하는 의심이 나에게는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순종이기에 적용은 하지만 믿음 없는 나를 본다. 내가 내 입으로 약재료를 나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 거기까지는 못 하는 나의 한계다.
엄마가 단감을 보내주셨다. 아! 단감이다! 금요일 목장 예배를 할 때 단감이 맛있었다. 그래서 남편 옆에서 단감을 건네 달라는 내 요청에 처음엔 귀 기울여 주더니, 좀 시간이 지나니 못 들은 척 했다. 서운해서 다시 팔을 치며 봐달라고 하는데도 꿈쩍 안 했다. 집에 오는 길에 “흥, 단감 달라는 말을 못 알아듣고 돌아보지도 않더라~”고 골을 냈다. 내가 시간이 되었으니 빨리 집에 가자는 말로 알아들었다니.... 오해도 그런 오해를 할 수가 있나! 얼굴만 돌아보면 될 것을... 그게 우리 육의 남편이다. 오는 길에 단감을 사준다는데, 12시가 넘어서 단감 파는 곳이 있나? 패밀리 마트에 가봤지만, 단감은 없다.
우리 하나님은 엄마를 통해 내 맘을 잘 풀어주신다. 속 좁은 나를 너무도 잘 아시는 우리 하나님 아빠는 내 맘을 잘도 풀어주신다. 엄마가 단감을 한 박스나 보내셨다. 그것도 아주 달고 맛있는 단감이다. 남편을 통해 채우지 못한 것 실컷 채우라는 말로 알아듣고 남편 앞에서 의기양양, 단감을 먹었다. 남편이 좀 미안해했나?!! 나는 단감 하나에도 서운하고 속상하다. 새 실과를 맺는다 하셨는데, 열매 없는 삶에 말씀으로라도 열매를 맺는다 약속하시니 감사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성소에서 생명수가 흘러 넘쳐 잎사귀와 열매를 통해 귀한 약 재료가 되길 기도한다.
10월 31일 수요일
제목: 여호와 삼마
에스겔 47:13-48:35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 삼마라 하리라
질문
1. 여호와께서 내 삶에 계시는가?
묵상
경계, 기업,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리기, 여호와 삼마!
눈병인 것 같다. 내 삶의 결론이라고는 하지만, 불편하다. 눈이 빡빡하다. 우리 반 아이가 눈병이었는데... 그게 문제인 것 같다. 내 배는 둥글다. 이렇게 불러온 적이 임신한 이후 처음인 듯 싶다. 이렇게 부르다니...
약속의 땅,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 그 중앙에 거룩한 성소! 거룩히 구별해야 할 땅, 여호와 삼마!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는 그 곳! 나의 중앙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거룩히 구별해서 돌봐야 할 내 몸, 관리 소홀이다. 갑자기 배가 부담스러워진다. 그렇게 폭풍 흡입을 해도 괜찮더니... 절제와 질서는 내가 회복해야 할 덕목이다.
알레르기 눈약을 처방 받은 게 있어 그것을 넣었더니 좀 낫다. 눈병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안과에 갈 시간은 없다. 내 배를 위한 처방으로 밥양 줄이기, 야식 하지 않기... 좀 어렵겠지만,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우선 만족한다. 여름 방학에 한 달간 헬스 다니다가 그친 것 외에는 운동을 한 적이 없으니... 운동도 해야 하는데, 그것까지는 엄두를 못 내겠다.
11월 1일 목요일
제목: 행할 모든 일
신명기 1:1-18
내가 너희의 행할 모든 일을 그 때에 너희에게 다 명하였느니라
질문
1. 하나님이 때마다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가?
묵상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 때마다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듣지를 못한다.
수업을 위해 돌아가면서 공개하고 피드백하기로 했다. 아주 번뜩이는 지혜로운 아이디어라는 생각에 흐뭇하다. 일을 벌이기는 잘 한다. 내게 행할 모든 일을 다 명하신 하나님! 그런데 나는 아직도 지혜 없이 분별을 잘하지 못한다. 의욕만 앞선다. 때로는 욕심으로 비취기도 한다.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하나하나 다지기가 안 된다. 덜렁인다. 나의 때, 엄마, 아내, 직장에서의 내 역할을 잘 찾아서 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 질서 잡기가 필요하다.
수요 예배에서 내 안에 진펄 개펄의 모습이 있어서 겸손하게 되고 그로 인해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 위로가 된다. 말씀으로 척량해야 하는 나의 삶, 그래야 성소로부터 물이 흘러 생명을 맺게 된다는 말씀이 위로고 도전이다. 시작과 근원은 성소, 말씀이다. 내가 살아날 희망이고 생명을 전할 수 있는 근원지다. 내가 드릴 약재료, 내가 나눌 약재료! 나누고 드려져서 나의 사명대로 살기를 기도한다.
11월 2일 금요일
제목: 안으사
신명기 1:19-33
너희의 행로 중에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질문
1.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일들,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찬양하는가?
묵상
앞서 행하시는 주님이 일하심을 목도하고 지켜보며 누렸던 백성이지만, 열 정탐꾼에 뽑혀서 갔던 용사들이었지만 보고는 절망적이었고 낙심하게 하고 원망하게 했다. 무서워말기를 두려워하지 말기를 거듭 말하고 있지만,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백성이다. 긍정적 감정보다는 부정적 감정이 9배 이상 더 크게 느끼고 큰 두려움 가운데 우리를 몰아가는 경험!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을 경험했으면서도 정탐꾼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불신앙이 나이다.
아빠 칠순 잔치 뒤끝으로 서먹서먹하고 서운함이 있는 큰 동생, 이번에 친정집 수리로 거출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큰 동생이 나서서 일을 하니 좀 더 편한 감은 있지만, 아직 내 안에는 괘씸함과 무례함, 서운함이 있다. 서로에게 생색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나대로 걔들은 걔들대로. 안쓰러운 마음에 우리도 힘은 들지만 좀 더 보태기로 했다. 큰 애는 큰 애대로, 막내는 막내대로 한참 힘들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자 한 건 아니었지만, 고맙다고 하니 마음이 풀어진다.
하나님이 내게 하신 일들, 사람들에게 받은 대우와 대접, 모두 마땅히 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 서운 할 것도 속상할 것도 없는데... 나는 받은 은혜보다 서운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결국,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관아래 이뤄진 것을 알고는 있으면서도 그러나, 감정적인 기복이 있다. 오르락내리락 요동한다. 나의 불신앙이다.
내가 할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억하고 높이는 일, 모든 게 옳습니다. 맞습니다. 상황과 환경에 순종하는 것! 듣고 보고 아는 일임에도 상황과 환경에 요동하는 나를 보며 나의 한계를 반성한다.
11월 3일 토요일
제목: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신명기 1:34-4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질문
1. 온전히 순종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묵상
공동체에서 새벽 예배를 데려가고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인터넷을 제한하는 것에 대해 그건 ‘부모의 폭력’이라는 말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들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고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 나의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해 제한하는 것이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이라는 말로 들려졌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온전히 순종한 갈렙과 여호수아에게만 그 땅을 기업으로 얻게 하신다고 하셨고 그리 하셨다.
고집스러운 불순종과 뒤늦은 후회! 그것 역시 나의 악이다. 아침에 아들에게 목장 처방을 말해줬다. 아들의 눈시울이 젖는다. 답답했었는데 시원하다는 아이의 말에 많이 힘들었구나 싶다. 아빠를 닮아 옳고 그름이 분명한 아이가 스스로도 정죄감이 들었을 텐데... 믿음의 공동체에서 그런 처방이 나왔다고 하니까 지지받고 지원받는 심정에서 울컥한 것 같다. 덕분에, 우리들 교회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둘째도 좋아한다.
오늘 저녁 외식도 할 생각이었는데... 큰 아들은 목장 처방에 떨어지자마자 텔레비전 보는 적용으로 거짓말을 했다. 무한도전 보고 싶은 마음에 거짓말하고 늦게 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래 하고자 했던 외식을 하러 간 건 잘 한 적용 같다.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신 사랑이 항상,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었으니까. 내가 배운 대로 아들들에게도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다.
남편이 등산 가자는데 다리도 아프고 싫다고 하는데, 남편이 그럼 이번 주 목장 예배 안 간다는 카드를 내민다. 벌떡 일어나 따라나섰다. 그걸 보더니 남편이 웃는다. 남편이 그 카드를 쓰지 않더라도 따라나서는 순종을 하면 좋으련만... 나는 여전히 나, 나, 나의 욕구 채우기에 급급하다. 나의 연약함을 알기에 남편이 사용한 카드 덕분에 그래도 뒤늦은 후회 안 하게 만들어준 남편에게 감사하다.
11월 4일 주일
제목: 비로소 더불어 싸워서
신명기 2:1-25
너희는 일어나 진행하여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라 내가 헤스본 왕 아모리 사람 시혼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은즉 비로소 더불어 싸워서 그 땅을 얻으라
질문
1. 내가 힘이 있어도 권을 쓰지 말아야 할 것은?
묵상
하나님이 지나라 하실 때, 지나고 비로소 더불어 싸우라 하실 때 싸워야 하는데 내가 힘이 있다고 휘두르는 나의 권! 아들에게는 묻자와 가로되가 아니고도 휘두른다. 남편 때문에 운 기억은 없는데, 아들 때문에는 운다. 그런데 가만 보면 그 역시도 아들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우는 나다. 내가 불쌍하고 내가 억울하고 내가 안돼 보여서 슬픈 나의 연민 때문에 우는 나다. 남편과도 그랬다. 사건은 없었지만, 혼자 외로워서 울고 속상해서 울고 내 연민, 지사랑에 울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누구 때문에 우는 게 아니다. 나 때문에 운다. 여전히 내 중심에는 내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보좌에 앉아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앉아있다.
하나님은 참 사랑하셔서 때로 감춰주시기도, 때로 드러나게 하시기도 하신다. 우리 아들은 주로 드러나게 하시는 축복이다. 이번에도 거짓말이 또 금방 들통이다. 오죽했으면 싶으면서도 배신당했다는 생각에 요동하는 나이다. 보고픈 ‘무한도전’을 보고 싶어서 그거 보느라 늦고, 그것을 메꾸려고 오케스트라 연습을 들먹였다. 그러려니 싶으면서도 나는 심히 속상하다.
나는 싸우는 적용이 아니라 지나가는 적용을 해야 할 때라는 말씀을 공동체에서도 듣고 오늘 말씀에서도 또 듣는다. 내가 할 적용과 순종, 그게 하나님 뜻이다 싶으면 마땅히 해야 할 것, 그런데 내 안에는 아직 내가 요동하는 것이 맞다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 제대로 안 가르치시고 양육 못 한 책임을 물으실 것 같은 조바심이 있다. 열심히 하는 것만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허점이다. 그냥 두는 것, 그냥 지나가는 것, 그게 나의 적용이고 그게 나의 사명이라는 말씀으로 들린다.
지혜 없는 나! 이스라엘의 명성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있었던 것,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것, 양육에 있어 지혜를 구한다. 분별력을 구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지금은 다투지 말고, 권을 쓰지 말고 지나가야 할 때임을 또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② 내가 알아듣고 순종하고 적용할 때까지 알려주실 하나님, 감사합니다.
2. 양육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지혜를 구합니다.
11월 5일 월요일
제목: 네 손에 붙이시려고
신명기 2:26-37
헤스본 왕 시혼이 우리의 통과하기를 허락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네 손에 붙이시려고 그 성품을 완강케 하셨고 그 마음을 강퍅케 하셨음이라 오늘과 같으니라.
질문
1. 하나님이 내 손에 붙이신 일은 무엇인가?
묵상
내가 평화의 말을 함에도 허락지 않고 완강한 상대의 태도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헤스본을 내게 붙이셨지만 모든 높은 성읍을 내가 취하나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암몬 족속의 땅과 하나님이 금하신 곳은 가까이 못 하였다.
내가 안절부절, 불안하고 두려워하고 걱정할 일이 아니다. 또 내가 요동하고 분내고 억울하고 속상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100% 옳고 맞으신 하나님이 내게 주신 상황과 환경, 여기서 구속의 은혜를 받은 내가 어떻게 구원의 약재료가 될 수 있는 적용과 순종을 할 지 지혜를 구하며 가면 된다.
자식,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의 사건이고 후대하신 일임에도 나를 요동하게 하고 나의 한계를 보게 하는 건 아들들이다. 아들 덕분에 운다. 그런데 애통의 끝자락을 따라가다 보면 아들의 구원을 위해 우는 게 아니다. 나의 연민, 나의 허무, 나의 서러움에 운다. 아직도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고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보고 나의 악함이 객관화된다. 나, 나, 나~ 지사랑의 수준이 나다.
어제 문득 잠을 청하며 그리움, 정한이 밀려왔다. 그 때, 거기서 만났던 사람들 이제 아무도 없다. 소식도 끊기고 하나님 나라에 먼저 간 사람도 있다. 그 끝에는 외로움과 고독,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막막한 슬픔과 그리움... 하늘 나라, 저 천국을 그리워한다. 만남은 축복이다.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하나님 말씀에 적용으로 입양을 결혼 전에 생각했다. 지금 마음 한편에서는 적용하지 못한 부채감이 있지만 아들들 양육에서 실패처럼 보이는 일들을 만나면서 더 의기소침해졌다. 그런데 어제 꿈에 백일까지 돌보는 일을 하는 헌신하는 봉사자를 만났다. 6개월까지도 맺어지지 않으면 외국으로 입양 간다는데, 산모에게는 2개월 10만원을 받고 나머지는 다른 후원자들에게 충당한다. 아이를 돌보는 봉사까지 하시는 그분은 게다가 금전적으로도 6개월 30만원을 내고 싶어했다. 내가 만류하기를 2개월은 산모가 내니까 4개월만 내도 되지 않겠냐, 아이까지 돌보고 계시는데....라고 말했다. 돌보는 아이를 생각하면 더 후원하고 싶다는 봉사자의 말을 들으며, 한시적으로 그 아이를 떠나보내는 봉사자의 짙은 그리움... 아기와 봉사자 사이의 끈끈함에, 떠나는 아이의 슬픔에 가슴이 먹먹했다.
11월 6일 화요일
제목: 두려워 말라
신명기 3:1-1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를 두려워 말라 내가 그와 그 모든 백성과 그 땅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네가 헤스본에 거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에게 행한 것과 같이 그에게도 행할 것이니라 하시고
질문
1.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묵상
나의 부끄러움이 건드려지는 게 싫다. 치유의 약재료로 쓰임 받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움으로 보다는 영화로움으로 쓰임 받고 싶은 나의 욕심이다. 부끄러움이든 영화이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쓰임 받는 게 나의 사명이지만 찌질한 모습이 싫다. 상대의 찌질함을 내가 감싸 안는 적용이 더 좋고 나의 찌질함을 내놓는 건 싫다.
코칭 학원에 아들들을 보내면서 그것도 자존심이 상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얘기, 내가 듣기에 아들들 문제네요 라는 것 같은 말에 마음이 확~ 상했다. 나의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다. 게다가 내 돈 줘가면서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하는 꼬락서니... 내 신세가 처량하고 낯 뜨겁다.
프로그램이 문제던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어찌 받아들이고 수용하는지가 가장 큰 변수인것을 알고 있기에 답답해지는데다가 그런 태도가 거슬린다. 한참을 설득하는 것 같은 프로그램 소개에 전화기를 멀리 떼어 내었다. 지루하다. 거기서 내가 적용하고 들어야 할 소리는 신뢰하고 믿어주고 지지하라는 말.... 그 말을 잡는다. 머리로 알지만 적용하지 머리로 아는 만큼 적용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교감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편찮으시기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몰랐다. 인생이 한 번은 가야 하는 거고 그게 빠르게 가든 더디게 가든 짧고 긴 것, 큰 의미는 아니지만 황망하다. 허무하다. 슬프다. 환한 미소의 영정 사진이 아른거린다. 내가 한 거라고는 목사님 책 선물하고 큐티인 선물하고... 예수님 믿으셔야지요? 기도한 것이 전부인데... 천국에 가셨을까? 그게 가장 큰 관심이다. 그리고 걱정스럽고 마음이 쓰인다. 굿바이~가 아직도 서툴다.
11월 7일 수요일
제목: 네가 목도하였거니와
신명기 3:12-29
그 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두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은 네가 목도하였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질문
1. 내 사명을 알고 그 경계를 알고 있는가?
2. 내가 여전히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묵상
모세의 아쉬움과 슬픔이 느껴진다. 그러나 99%는 자기의 사명을 다한 것에 대한 감사와 만족감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이 후대하심으로 모세의 눈으로 그 땅을 바라보게 해주신 은혜를 본다. 그 땅에 거하지는 못하였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목도하며 걸어왔던 삶의 여정,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였으리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것이 상급이었으니까.
강사와 함께하는 비누 만들기를 즐겁게 체험하고 자축의 자리, 한편 신우회가 걸리긴 하다. 출장이긴 하지만... 원래 생각에는 출장 갔다가 오려고 했는데.... 자축이 필요한 시기라 생각되어져 합리화하며 타협했다. 산너머 남촌~ 깔끔하다. 내 엉덩이가 가벼운 걸 알겠다. 또 흥분한 거다. 혼자서 들떴다. 떠들썩함이 좋다. 나의 외향성은 점점 더 깊어가는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면 신나고 즐겁다. 열심히 떠들지만, 한쪽은 텅 빈 들! 큐티인에 나오는 사람들은 왜 다 바람피고 망하고 힘든 사람만 나오냐고 한다. 무섭다고 한다. 그래도 가끔은 읽어본다니 감사하다. 인생이 다 그런 것, 별 인생 없는 것!! 큐티인을 통한 복음이 이슬비처럼 젖어들기를 기도한다.
공동 수업안을 만들어서 셋이 함께 수업하는 적용으로 사기충천해있는데, 여전히 가슴 철렁한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의 약점을 드러내는 그 자리가 불편하다. 여전히 지금은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고 상처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자리여야 할 것 같은데, 가야 할 길은 멀다. 두렵고 무섭다. 생각없이 앉아 있다가 총격을 받은 것 같은 아픔이다. 아쉽기도 하다. 지금은 좀 더 안전한 자리가 확보되어야 하고 그런 자리가 열려서 공개하는 풍토가 되어 양적으로 문화적으로 충분한 경험을 바탕으로 질적으로 성장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나, 내 생각과 네 생각, 우리 생각과 그들의 생각은 다르다.
그것이 내 경계를 알아야 할 일인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 주어진 것까지 감당할 것까지만이 나의 사명이다. 그 외의 것은 하라고 해도 할 수도 없는 일, 나의 일이 아닌 것이다. 나의 두려움의 끝에는 인정받고 싶은 것이 있음을 알겠다. 공동체, 내가 꿈꾸는 공동체가 내 직장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는 그런 공동체이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가? 바라기는 내 직장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본질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니 비슷할 수는 있어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그럴 수는 없음을 알겠다. 그 것 역시 내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내 앞에서 보여주셔서 나로 목도한 증인으로 세워 주심에 감사합니다.
② 예배를 사모할 수 있는 공동체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③ 커피가 있어서 저녁잠을 쫓을 수 있는 적용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2. 내 두려움을 또 만나게 하셨는데, 그 끝이 무엇인지 찾게 하소서
3. 복음 전하는 내 사명, 말씀에 깨어있어 제대로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11월 8일 목요일
제목: 듣고 준행하라
신명기 4:1-14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질문
1. 나는 법도를 듣고 준행하는가? 듣고 배우는 게 행하기 위함인가?
묵상
어제 수요 예배에서 나의 불순종을 봤다. 깊은 곳에 있는 불신앙,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 하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보지 못 하고, 눈에 보이는 것,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여 백성들의 간담을 녹이는 보고서를 올린 10명의 정탐꾼이 나였다. 아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나는 신앙인이 아니었다. 순종이 아니었다. 불신앙인이었고 불순종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때늦은 순종을 하는 지혜 없음을 끝까지 고집 부리고 있다. 나의 모습을 보면서 저 깊이에 숨어있었던 나의 믿음 없음을 회개하였다.
말씀 듣는 공동체에 속해서 나를 바로 바라볼 수 있는 축복, 나의 믿음 없음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어루만지심... 아들에게 문제가 아닌 내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나로 인해 아들이 수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목사님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절절한 외침, 아! 그렇구나! 바로 나를 위한 훈련이었구나! 38년은 내게 꼭 필요한 내 삶의 결론이었구나!
깊은 곳에서의 치유와 회복을 맛본다. 내가 말씀을 듣는 이유, 내가 법도를 배우는 이유는 행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기에 시원하고 후련하다. 가려운 곳, 아픈 곳이 건드려진 시원함, 아픔과 통증은 있지만 이유를 안 상태에서의 아픔과 통증은 이미 치유다. 치유의 시작은 결론도 치유의 완성이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나의 불신앙을 만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듣고 행할 수 있는 공동체에 속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2. 아들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기대하겠습니다.
11월 9일 금요일
제목: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신명기 4:15-31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를 구하면 만나리라.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질문
1.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버리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푸셨나?
묵상
스스로 부패하여 나를 위하여 형상대로 우상을 새기고 만들었다. 그건 예수님 믿은 후에도 내게 끊이지 않았던 부패함이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할머니를 따라 조물주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천지신명을 따랐다. 예수님 믿은 후에도 하나님만 섬긴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가치관은 세상이었다. 예배는 있었지만 말씀이 나를 다스리지 못 했다.
남편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도,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나를 위한 형상이었다. 나를 더 사랑해달라고, 내가 더 편하려고... 그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내가 우상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택하셔서 하나님의 주권으로 자비를 베푸셨다. 말씀 듣는 공동체를 만드셨고 그 곳에 나를 초대하셨다. 하나님이 하나님께 돌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게 하셨다.
감사다. 숨 쉬는 것부터, 허무하고 허무하고 허무한 세상에서 고독이 또아리를 튼 고독한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행하신다. 사랑의 언어를 다 사용하신다. 사랑한다고 말씀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시고 언제나 함께 거하며 동행하시고, 나의 짐을 대신 짊어지신다. 때마다 시마다 말씀으로 어루만져주신다. 하나님, 그 분이 나의 아버지시다. 예수님 그 분이 내 신랑이시다. 가장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을 세우신 그분이 언약을 이뤄 가신다. 덤으로 가는 인생, 내 인생이 축복인 것은 주님 때문이시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내 인생을 복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② 하나님께 돌아와 말씀 듣고 청종할 환경 주시니 감사합니다.
③ 남편, 부부 목장에 인도하심도 감사합니다.
2. 하나님께 나도 사랑의 언어로 표현하겠습니다.
11월 10일 토요일
제목: 목전에서 행하신 일
신명기 4:32-43
.... 이는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질문
1. 하나님이 목전에서 행하신 일을 깨닫고 있는가?
2. 오늘 하나님이 내게 명하는 규례와 명령을 지키고 있는가? 도피성이 되고 있는가?
묵상
아침에 일어나 밥을 차려주고 남편, 출근한 뒤에 기도한다고 엎드렸다가 그 뒤부터 잠에 빠졌다. 어제 저녁에 한 양념 게장으로 아침을 먹은 아들들이 부드러워진 마음에 나보고 잠을 더 자라고 한다. 오전 내내 잠을 자다가 큰 아들이 연습하러 가는 것도 이불 속에서 배웅했다.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자고 또 자고... 오후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남편이 목장 예배에 끝까지 남기로 적용하고 중심 잡아 가는 것, 그 역시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11시 30분까지 적용한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고, 목장 예배에 가는 것만도 감사할 일이었는데 하나님의 후대하심이다.
오늘 하나님이 내게 명하신 것들을 잘 지키며 사람 살리는 도피성이 되어야는데 아들들에게 남편에게 도피성이 되는가? 반성이 된다. 둘째랑 하루 종일 늘어지면서 유유자적, 이게 아들에게 쉼이 될까? 어렸을 때 봤던 성경 만화를 꺼내서 보는 아들을 보면서 아직 아들의 수준은 이렇구나 싶기도 하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부부 목장 예배에 끝까지 함께하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② 아들과 있으면서 게으름 피우면서도 마음에 부대낌이 없으니 감사합니다.
③ 아들들이 게장을 맛있게 먹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하나님이 목전에서 행하신 일을 감사하며 말씀하신 명령을 순종하여 구별된 도피성이 되게 하소서
3. 아들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용납하겠습니다.
11월 11일 주일
제목: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
신명기 4:44-5: 10
이스라엘아 오늘 내가 너희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 ....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 있는 우리 곧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
질문
1. 내 귀에 말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배우며 지켜 행할 것은 무엇인가?
2. 하나님 외에 내가 사랑하는 우상은 무엇인가?
묵상
감사하고 감사하고 감사해도 여전히 부족한 나의 감사는 공동체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다. 내가 꿈꾸던 공동체, 지상에서는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천국 모델같은 공동체가 이 땅에 있었고 또 그 공동체에 내가 속해있다는 건 지금도 꿈같다.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 내게 주신 나를 위한 선물이다.
그런데 그런 감격이 있음에도 내게 말씀하시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도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지 못 하는 나의 악에 질린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임에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함에도 나는 그 복음 위에 덧칠하고 싶어진다. 그 복음 위에 공부 잘 하고 형통하는 기복을 더하고 싶어한다. 교묘하게 나도 속고 남도 속을 수 있게 살짝 들어와 포장되어 있는 나의 기복이 있다.
나는 내게는 기복이 없다고 생각했다. 교회에 대한 비판이 있을 때에도 나 역시 기복적인 교회에 정죄를 하고 판단을 했지 내가 기복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인정도 안 되었다. 퍽 복음적인 신앙이라고 생각했고 순수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거기에 나도 속고 남도 속지만 우리 하나님은 속지 않으셨다.
아들의 수고가 내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 아들이 나를 위해 수고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들이 최고다. 목사님이 말씀하셨듯이 공부 못 해서 최고고, 부모 말에 순종 안 해서 최고고 빈둥거려서 최고고 무기력해서 최고고 집중하지 않아서 최고고 화장실에 30분 넘게 하루에 두 세 번씩 가서 앉아 있어서 최고다.
잘 나가는 아들이길 바랐다. 공부 잘 하고 영특하고 명민하고 신앙 좋고 남들에게도 인정 받는 그런 아들이길 바랐다. 내가 뭐라 안 해도 자기 일을 알아서 척척 잘 찾아가고 자기는 물론 남도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탁월한 리더십이 있는 아들! 그게 욕심인 줄도 몰랐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니까 하나님이 당연히 그렇게 채워주시고 그렇게 양육하실 줄 알았다. 그게 우상인 줄도 몰랐다.
그 아들만 우상이었던가? 남편, 돈, 지식, 인정, 사랑, 재미있는 로맨스 드라마, 로맨스 영화, 로맨스 소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잠, 밥, 수다, 사람... 너무도 많다. 그 우상의 중심에는 ‘나’ 나만 외치는 이기적인 지사랑! 내가 있다. 그럼에도 그런 나를 보고도 나와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 그런 나에게 하나님은 하나님만 섬길 것을 말씀하고 또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말씀하신다. 아~ 그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지사랑 가운데 우상 숭배 가운데 그 중심에 있는 나 임에도 나와 언약을 맺어주시니 감사합니다.
② 그런 나임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 약속하시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③ 말씀 듣는 건강한 공동체에 속하게 하신 은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2. 말씀 가운데 내 안에 있는 기복을 보겠습니다. 내 안에 있는 우상을 제하겠습니다.
11월 12일 월요일
제목: 내게 명한 대로
신명기 5:11-21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질문
1. 하나님이 내게 명한 말씀, 내게 선포한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지키고 있는가?
묵상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기대가 당연하다. 죽음 가운데 구하길 강한 손과 편 팔로 인도하여 내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멸망할 수밖에 없고 죽을 수밖에 없고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좇아 살던 나에게 친히 찾아와주셔서 구하셨는데, 내게 명령하시는 게 당연하다. 하나님은 그럴 자격이 충분하시다. 나의 아버지되신 하나님, 나의 신랑되신 예수님!
어제 꿈에서 왕세자비라는 나의 정체성을 확인해주셨다. 내게 뭐라 뭐라 있지도 않은 말로 비난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처럼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 여유의 바닥에는 내가 누구인줄 아는 나에 대한 바른 인식! 그 때문이었다. 겉웃음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웃음, 그리고 상대를 안아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비로소 칼과 창이 아닌 낫과 보습이 나가는 나를 만났다. 꿈을 깨고도 그래, 잊지 말아야지! 나는 왕세자비잖아!! 하는데 유쾌하다.
그럼에도 나는 이웃 사랑에서 무너졌다. 계단에 질질 흘린 우유자국을 휴지로 닦으면서 투덜거림이 저절로 나왔다. 아니, 우유를 흘리지 않게 우유 상자를 잘 가져가게 하든지, 흘린 우유는 닦아주든지. 하는 불평에서부터, 그 우유 자국을 본 사람이 나만 있는 건 아닐 텐데... 하는 원망까지.. 급기야 “지금 뭐 하세요?”하는 부장님의 말에 퉁명스럽게 “우유 자국 닦잖아요” 하는 말 공격까지. 평소에도 약간 심사가 틀어지긴 했었지만, 있을 만한 일이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인정까지 했으면서도 여전히 꼬인 게 있고, 상대 안에 있는 가식을 보는 나의 악이 있다. 그런데 참, 말이 본새 없다. 받아치는 나 역시 같은 족속이라는 게 슬프지만. 우유 닦는 적용까지는 잘 한 것 같았는데....나는 또 그렇게 무너졌다.
글씨 날림에 짜증이 올라왔다. 남에게 보라고 쓴 글씨인지 혼자 손장난을 한 것인지...나는 왜 아직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기보다는 왜곡된 해석이 나간다. 짜증은 살인하지 말라에 걸린다. 왜 그래? 하는 못마땅함, 거슬림, 내 기준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한 부대낌.
그건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행실이 자꾸만 거슬린다. 내가 나를 괴롭힌 하루다. 심지어 얼마나 밥을 더 실하게 먹었던지.... 등의 살이 눌리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뱃살이 이제는 등까지... 등살이라니 말도 안 돼! 경악할 일이다. 아침 안 먹겠어! 에 곧 무너지고, 저녁 조금만 먹겠어! 그렇지만 밥이 너무도 맛나다. 된장찌개에 한 그릇 더 먹었다. 그것도 맘에 안 든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나를 인도하셔서 생명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나에게 생명주시고 말씀 안에 천국 누리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② 속에 눌린 이야기를 털어놓게 하셔서 시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③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지만 7분만에 버스를 다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④ 남편의 따뜻한 품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⑤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 사랑하는 적용을 한 치도 못하고 있음을 알고 보고 만나게 하셔서 회개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상대를 바라볼 때, 나를 바라볼 때 하나님의 감동으로 믿음의 확신으로 바라보며 여호수아와 갈렙같은 성실한 보고자가 되겠습니다.
11월 13일 화요일
제목: 듣고 행하겠나이다
신명기 5:22-33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였느니라...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질문
1. 듣고 행하겠나이다, 이 마음을 품고 경외하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행하고 있는가?
묵상
처음, 예수님을 믿고도 말씀은 어렵기만 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문화도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고어체인 번역도 어렵고 힘들었다. 그냥 성경을 보고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전도사님이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하는 말을 듣고서야 아~ 그런 말이었구나 그제서야 알았다. 말씀을 봐야 하는 거니까 억지로 하루에 몇 장, 정하여 읽기도 해봤지만, 했어요. 봤어요~로 안위받을 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새벽 예배에서 풀어주시는 말씀, 공예배에서 풀어주시는 말씀, 설교집에서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모세가 있었듯이 나와 하나님 사이에는 풀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 여전히 지금도 풀어주시고 삶으로 적용하시는 목사님과 공동체가 있다. 그래서 그나마 덤으로 가는 은혜받은 인생이다. 그때보다 지금 나아진 점은 내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들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했어요. 봤어요~가 아니라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행하고자 한다는 점이다. 그 점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데 오늘, 그 듣는 말씀에 행하겠나이다~라는 마음을 품고 경외하며 치우치지 말고 행하라 하신다. 여전히 행하기보다는 귀로만 듣기 좋고 생각과 마음에 흡족해하는 것에 그치고 마는 나의 악! 치우침이다. 들으면 행해야 하거늘, 듣는 것에 치우쳐있는 요즘이다. 그래도 감사하다. 하나님 말씀이 나를 꿰뚫는 시간, 내 평생 처음인 것 같다. 큐티, 수요예배, 부부목장예배, 주일예배, 직장목장예배... 꿈같은 시간이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때마다 시마다 말씀을 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② 말씀을 통해 나를 척량하는 꿈같은 시간들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2. 듣고 행하겠나이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하소서
3. 순종하며 적용할 것을 찾아 들은 말씀을 행하게 하소서
11월 14일 수요일
제목: 들으라
신명기 6:1-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질문
1. 듣고 삼가며 그것을 행하고 있는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묵상
예수님 믿는 천국 백성으로서 행해야 할 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규례와 명령을 지키는 것...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명하시니 감사하다. 예수님을 믿기에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하지만, 삼가 듣고 행하고 적용하지 못 하는 나를 본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으로 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 하는 나를 본다. 하나님이 맡기신 자녀에게 부지런히 신앙을 가르친다면서 삶으로 적용하며 보이지 못하는 나의 악을 본다. 끝까지 다하지 못 하는 나의 부족함, 뒷심 없음을 본다.
둘째 아들은 자신의 연약함이 드러나면 인정하지 못하고 화를 낸다. 어제 교과서도 없이 학원에 갔다는 얘기를 듣고 말을 하니까, 깜박했다고 소리를 치는데 속이 뒤집어졌다. 나는 최소한의 순종은 그걸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게 나의 한계다. 화를 안 내고 요동함이 없이 끝까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게 나의 성숙함일 텐데 얕은 나의 속과 나의 한계가 보인다. 전화를 여러 차례 거는데도 끝내 받지 않는 아들, 그러다가 제풀에 꺾여 풀어졌다.
부모로서 신앙을 삶으로 가르치는 적용! 내가 말씀을 읽고 쓰고 적용할 때, 가능하리라. 최소한 하나님 자녀로서의 순종을 할 수 있을 때 가능하리라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오늘도 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② 듣지 못해도 계속 들으라 말씀해주시고 순종하고 적용할 때까지 가르쳐주실 하나님, 감사합니다.
2. 귀한 아들, 맡겨 주신 것 감사하며 부모의 역할 잘 감당하게 하소서
11월 15일 목요일
제목: 조심하여
신명기 6:10-25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섬기며 그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질문
1. 나는 조심하고 있는가?
2. 삶으로 가르치고 있는가?
묵상
말씀으로 내 죄를 보면 전리품이라고 하셨는데, 훈련 중이다. 말씀으로 해석해주면 쏙쏙 잘 들어오는데 내가 분별하여 적용하지 못하는 지혜 없는 나이다.
내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큰 전쟁, 작은 전쟁, 사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하셨는데, 마음에 거리를 두기 시작한 사람이 생겼다. 강퍅하게 하신 것, 완강하게 하신 것이 하나님이라고 머리로는 인정이 되면서도 마음에 여전히 서운함을 품고 있는 나의 악과 죄가 있다. 꽁한 나의 속 좁음, 사소한 전쟁, 작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 한다. 그러니 큰 전쟁의 전리품이 있겠는가?
말씀이 들리는 공동체에 속해 있어 감격스러움에 들떠 있으면서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잊는다. 나를 이 공동체에 속하게 하신 이유는 말씀을 듣고 적용하고 순종하고 섬기고 지키라는 뜻일진대, 공동체에 속한 게 나의 목표였던 것인 양 행동한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 살아갈 이스라엘 백성에게 조심하라고 하신 그 말씀은 내게 하시는 오늘의 말씀이다. 성숙해지는 비결이 큐티이고 하루하루 주시는 말씀으로 살아가야 함을 듣고 알고는 있지만 큐티가 내 생활에 녹아들어가 예배가 되지는 못한다. 눈만 뜨면 생각나는 게 말씀이고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눈뜨면 남편을 먼저 찾고 밥을 먼저 찾는다. 일어나자마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남편, 말씀 보는 남편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나의 악이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말씀에 예민하게 살아서 반응해야 알려주시니 감사합니다.
② 내가 예민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아들들에게 말씀 적용을 삶으로 보여주기를 기도합니다. 큐티를 쓰고 올리는 적용을 보이겠습니다.
11월 16일 금요일
제목: 지켜 행할찌니라
신명기 7:1-11
그런즉 너는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할찌니라.
질문
1. 하나님의 성민으로 구별되어 사는가?
묵상
다만 나를 사랑하사 택하신 하나님! 기뻐하시고 택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내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야 할 이유이다. 내가 하나님의 성민으로서 구별되어야 할 이유이다. 그럼에도 나는 구별되이 살지 못하는 악이 있다. 그 사랑에 감격하고 눈물 흘리고 감동하여 고백하고 고백하지만, 나의 삶은 나의 말과 나의 생각과 멀다.
남편이 정리를 하라고 했을 때도 왠 여유! 나는 꼭 닥쳐야 일을 한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임박해서 코 앞에서야 발동이 걸린다. 게으름은 나의 큰 악이다. 첫 목장 예배를 앞두고 15년간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집, 남편은 최소한 도배는 하고 맞이하라고 하는데 지난 여름에도 도배를 한다 한다 결국 짐 빼고 넣기가 너무나 번거롭고 부담이 되어 하지 않고 또 미뤄졌었다. 거실만 하자는 적용으로 했는데 정리가 보통이 아니다. 모든 짐을 안방과 베란다에 쳐넣고... 그래도 시작이 되니까 마무리가 된다. 그게 또 놀랍다.
목장 예배 음식도 잡채와 호박죽을 꼭 하고 싶었는데.... 주요리가 빠졌다. 도저히 시간이 안 된다. 호박죽을 한다고 삶아놓은 걸 꺼내어 으깨려하는데 보니까 이물질이 들어가 있다. 눈에 보이는 걸 살짝 꺼내고 하고 싶은 마음의 갈등이 잠시 일렁이다가 나중에 나라도 먹을까 싶은 미련이 남는다. 예수님이라면 소중한 내게 먹이시지는 않을 것 같다.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래서 호박죽은 패스다. 잡채는... 도저히 시간이 안 된다. 우선, 당면은 엄청 삶았는데, 잡채를 마무리하다보면 예배 시간까지 숨이 턱에 차 동동거리며 분주할 것 같다. 그것도 패스다. 어쩌겠나 내 게으름의 결과, 내 삶의 결론인걸! 내려놓는 것, 계획은 그랬지만 조절하고 잘라내고 다시 조율하는 걸 조금은 배운 것 같다. 게다가 그게 게으름은 고치지 않으면서 무리하고자 하는 내 욕심인 것도 봤다.
나의 악함은 여전하지만, 나의 게으름도 여전하지만, 나의 지혜 없음도 여전하지만, 우리 집에서 부부 목장 예배를 드리게 된 감격과 감동! 가슴이 벅차고 기쁘다. 하나님의 은혜다. 나의 악과 죄는 그대로지만 예배를 드릴 수 있음, 그런 환경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다. 매주 우리 집에서 드리고 싶다. 이제 거실은 정리가 되어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이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첫 예배의 감동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② 아무런 이유 없이 다만 나를 사랑하사 택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③ 하나님의 성민으로 구별되이 살라 말씀하시고 지키라 하시니 감사합니다.
2. 나의 악과 게으름을 내놓고 때마다 시마다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예비하고 미리 준비하겠습니다.
3. 순간순간 그냥 타협하고 넘기고 싶은 마음, 악이고 죄인 줄 알면서도 원칙을 지키지 않으려는 내 행동의 기준과 잣대를 예수 그리스도로 삼겠습니다.
11월 17일 토요일
제목: 듣고 지켜 행하면
신명기 7:12-26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지켜 네게 인애를 베푸실 것이라.
질문
1. 나도 속고 남도 속지만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는 것은?
묵상
나는 선동이 잘 된다. 귀가 얇다. 특히 언변이 능한 사람의 말, 거기에 진정성, 진심과 삶이 묻어져 있으면 더욱이 말할 것도 없다. 또 한 사람을 만났다. 고병헌 교수! 사유하는 부모, 성찰하는 교사, 아이를 설레게 하고 진동하게 하는 힘이다. 말씀 앞에 설레게 하고 나의 가치관을 진동하게 하고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을 다르게 해석하는 힘! 드는 생각을 다르게 해석하는 힘! 말씀 앞에서 날마다 나를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법을 큐티를 통해 공동체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훈련받고 있는데, 말씀 앞에 깨어있는 나침반처럼 끊임없이 진동하는 중이다.
괜찮은 줄 알았다. 어느 때부터인가 아주 천천히, 서서히... 내가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러면서 판단과 정죄가 되기 시작했다. 내가 어리고 작다고 했을 때는 납작 엎드리기만 했는데, 아닌 것 같은 나의 판단과 기준에 어긋난 것들에 대해 나는 창과 칼 같은 시선으로 냉담했다. 냉랭하고 냉소적이었다. 말씀 앞에 더 이상의 떨림이 아니었다. 저건 아닌데, 저건 아닌데.... 내가 할 적용과 순종은 찾지 못하고 아니다 맞다만 표시할 수 있는 수준, 정말 내게 있어서 꼭 겪어야 할 시기였고 있어야 할 만한 것이었지만, 촉촉함 없이 바삭바삭하게 말라 비틀어진 땅, 어떤 생명도 자랄 수 없는 먼지 풀풀 날리는 박토! 그게 나다. 갈라지고 갈라져 피가 터지는 아픔! 남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경계경보가 최고치로 울려댔다. 나를 돌아보니 그랬다.
그런데 이제 은혜가 회복이 되는 것 같다. 예배가 살아나고 있다. 지금 같아서는 어느 자리에서도 하나님만을 예배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요예배, 부부 목장 예배, 주일 예배, 직장 목장 예배, 그러나 아직 생활 예배는 아니다. 생활 예배만 살아나면 된다. 아침에 남편과 연수 장소에 가면서 목장 예배를 얘기하는데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다. 남편 덕분에 갈 수 있는 목장 예배,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은혜고 감사인데 우리 집에서 드릴 수 있는 예배 처소로 쓰임 받았다는 게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귀가 얇은 만큼 들리는 법도를 지켜 행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행동파이긴 하지만, 그러나 삶에 적용하고 행동으로 순종하는 게 약하다. 하나님이 너무도 잘 알고 계신 나의 약점이다. 꾸준함이 부족한 것, 지속적으로 요동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것, 그런 삶의 결과로 잘 하는 게 없다. 잘 먹는 것, 잘 자는 것, 잘 싸고, 잘 떠드는 것~ 빼고. ^^ 아~ 그래서 정말 회복되어야 할 생활 예배가 회복이 안 되는 거다. 하나님은 그걸 알고 계신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하나님, 내가 예배가 너무 좋아~ 하면서도 회복되지 못하는 생활 예배, 그 실체를 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② 부모의 결핍을 든든한 남편을 통해 하나님, 신실하심을 만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③ 예배가 살아나게 하심을 감사하고, 예배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 생활 예배까지도 주관하실 줄 믿으니 감사합니다.
2. 주님이 인생을 불쌍히 여기사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찬양하겠습니다.
11월 18일 주일
제목: 기억하라
신명기 8:1-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질문
1.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는가?
묵상
눈이 침침하다. 노안에다가 지독한 난시, 거기다 안구 건조증과 알레르기 염증까지... 안질에 괴롭다. 눈이 빡빡하고 잘 안 보이니까 더 인상이 써진다. 잘 안 보인다 싶어 안경을 벗어보면 또 왜 그렇게 더러워져 있는지... 좋은 렌즈를 사용 안 해서 그런 건지, 얼룩도 잘 진다. 먼지도 잘 붙는다. 눈 좋을 그 때 공부를 열심히 할 걸! 책 좀 보려고 해도 눈이 아프고 쉬이 피곤하다.
사십 년 동안 광야길을 걷게 하신 것도 하나님 사랑이셨고 만나를 먹이신 것도 하나님 사랑이셨고 징계를 주심도 하나님 사랑이셨고 옥토를 주심도 하나님 사랑이시라는 말씀에 옳소이다. 하나님 사랑이 가슴에 와 닿는다. 하나님은 그 어디를 찌르고 들추고 살펴도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 말씀이 큰 위로고 위안이다. 하나님이 사랑이 아니셨다면 어쩔 뻔 했는가? 우리 아버지인 걸! 아버지가 사랑이 아니셔도 아버지이신데, 우리 아버지는 사랑이시다. 나를 구속해주신 아버지시다. 악한 아버지에게 속해있던 나를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죽으심으로 나를 사오셨다. 사랑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시다. 내 평생 그것을 기억하며 찬양할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진짜 믿음은 고난을 통과해야 구별이 된다고 하셨는데, 그 분별의 시간이 광야의 시간이었다.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도 ‘악!’소리가 안 나와야는데 나는 놀라기도 잘 하고 욕도 잘 하고 짜증도 잘 내고 못 살겠다고 울기도 잘 한다. 아직도 나의 수준은 그렇다. 서운함에 혼자 삐지기도 잘 하고 좋아서 금방 헤헤~거리기도 잘 하고 감정이 끓었다 식었다 요동도 잘 하는 냄비같다.
떡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알게 해주신 말씀을 통해 그게 진짜라고 알지만 여전히 맛난 밥이 좋고, 돈이 좋고, 노는 게 좋고... 말씀 볼 시간보다 허둥지둥 소모하는 시간이 더 많다.
아침에도 생활 예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나의 기준을 내려놓지 못하고 식탁 정리를 하다가 교회에 늦게 출발했다. 다행히 세례식이라 말씀 듣는 시간은 놓치지 않고 세례식에 참석할 수 있었지만... 지혜 없고 분별없는 나의 악이다. 결국, 생활에서 예배를 잘 드린다는 적용으로 결국 예배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선택이 되어 예배가 흩어졌다.
일 년 간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 감사를 목장에서 나눴다.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 내 삶 중에 함께해주시며 동행하신 그 자체로도 감사다. 나를 불러서 택하시고 구속해주신 그것만으로도 감사다. 내게 광야는 꿈에 그리던 결혼의 현실이 힘들었던 것, 외로움에 한 결혼이었으나 외로움이 채워지지 않는 광야, 아이가 없었던 광야, 중국에서 인간 관계의 광야가 있었다. 하나님 말씀이 들리지 않고 해석되지 않는 광야, 예배의 감격이 없는 광야가 있었다.
목장에서 영접 예배로 주일 저녁에 중환자실에서 모였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목도하는 증인으로 나를 부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영접하는 감동과 감사의 자리에 있게 하신 하나님, 할렐루야!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 그리고 너무도 인간적인 중환자실의 풍경에 또 한 번 놀랐다. 모든 중환자실이 그렇게 되면 좋겠다. 보고 싶어서 모인 환자 가족이 인원수 제한으로 못보고 돌아가는 일이 많은데, 처음에 제한을 두다가 시간이 거진 되었을 때는 다 들여보내주고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더 있는 것을 제한하거나 간섭하지 않는 모습, 환자와 가족을 가장 잘 돌보는 처사 같다.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영접 기도하는 감동의 자리에 초대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② 추수 감사 예배로 드리게 하신 하나님,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드립니다.
③ 하나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사는 줄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④ 늦게 온 죄로 깍듯하게 섬기고 아이들 와이셔츠와 반찬 준비를 하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2.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목도한 증인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증거하겠습니다.
11월 19일 월요일
제목: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명기 8:11-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질문
1. 여호와가 하신 일들을 기억하면서도 내가 삼가지 못하는 것은?
묵상
오늘 일이 빡빡하다. 아침에 와이셔츠 다리기부터, 유치원 원서 접수를 갑자기 부탁받고 서류를 받으려는데 시간이 늦다. 마음이 조급해진다.
파마를 하고 온 아이를 호듭갑스럽게 맞이하는 남자아이들로 심약한 아이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밖에서 주저앉아 우느라 들어오지도 않겠다고 고집 부린다. 상처 준 놈들이 괘씸하기보다 그 말에 주저앉아 웅크리고 우는 아이가 걱정스럽고 안타까우면서도 짜증이 난다. 많이 성장한 모습이긴 하다. 외부의 반응에 민감하게 수치감을 느끼는 아이다. 입장되어보기, 상황극을 했다. 공감이 되는 것 같다. 남자 아이들도 우리 아이들도 모두! 누가 더 심약한가가 있겠는가? 인간의 마음은 모두 다 약하다. 몸도 마찬가지다. 몸과 마음, 모두 심약한 게 인간인 걸. 그렇기에 무리지어 함께 어우러져 도와가며 살아가는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 출장도 있다. 청소년부 부모교육도 있다는데 갈등이 되긴 했는데 그건 말도 못 꺼냈다. 거기까지 간다는 말이 차마 안 나왔다. 그러고 보니 이제 저녁은 좀 더 한가하다. 그게 문제인가?
한적한 시간, 아무도 없는 집안에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허허로움을 나의 정욕을 좇아 채운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기억하는데... 하나님이 하신 일들에 감격하며 좀전까지도 눈물 짓다가 어느새 돌변한 나를 이해하기 어렵다. 말씀으로 잘 채운다 싶었는데,,, 목장에서 들었던 요즘 야한 소설이 유행한다는 그 말이 마음판에 꽂혀 있었던 거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갈 일을 로맨스를 좋아하고 요즘, 소설을 안 본 사이 또 그건 뭐지 싶은 마음에 검색하다가 책 제목을 찾았다. 그러다가 키스방을 다룬 방송까지 보면서, 겉으로는 참 사람들도 대단타~ 하면서 속으로는 나의 정욕을 채웠다.
나는 색에 잘 무너지고 약하다. 번번이 그런다. 음행의 연고로 한 게 결혼임에도 호기심은 여전하다. 그래서 요즘 눈이 침침해졌나 싶다. 영적 지도자 모세는 죽기까지 영안이 밝았는데 나는 아직 40대임에도 눈이 침침하다. 그건 나의 영안을 보여주는 척도인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 눈이 밝다는 건 영안도 밝다는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침침하고 흐릿한 눈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 영안이 밝지 못할지라도 공동체에 속해서 먹여주시는 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게다가 기억력까지 가물거리니,,, 나는 쓰고 적는 적용이라도 해야 한다. 안 그러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놓칠 것이다.
깨어서 죄를 지을 바에야 차라리 게을러도 잠을 자는 게 낫겠다. 하나님, 나를 다만 불쌍히 여기소서! 날마다 무너지고 넘어지는 나를 용서하소서.
적용
1. 감사와 찬양
① 무너지고 넘어지는 나의 악과 죄를 오늘도 보게 하셔서 날마다 하나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2. 인터넷 사용을 할 때, 다른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하소서
3. 나의 무기력감과 쇠약함, 중독의 뿌리를 만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