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나 우로 치우지지 말라
작성자명 [정현철]
댓글 0
날짜 2007.05.11
<블레셋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속건 제물로 무엇을 드리면 좋겠소?” 제사장과 점쟁이들이 대답했습니다. “피부에 난 종기와 같은 모양으로 금종기 다섯 개를 만드시오.
그리고 금쥐 다섯 개도 만드시오.
금쥐와 금종기의 수는 블레셋 왕들의 수와 같아야 하오. 왜냐하면 똑같은 병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왕에게 닥쳤기 때문이오.
이 나라를 망치고 있는 종기와 쥐의 모양을 만드시오.
그것을 이스라엘 신께 바치시오.
그리고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시오.
그러면 이스라엘 신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신과 여러분의 땅에 벌주시는 것을 멈추실 것이오.>(사무엘상6:4~5)(쉬운 성경)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종교방식으로 제사를 드리기도 하고 하나님의 궤를 운반할 때 제상장이 메는 대신에 수레에 실려 보냈습니다.
비록 우상을 섬기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모든 예배형태도 이러한 모양입니다.
나 자신이나 공동체가 편하고 좋을 때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한 예배가 이루어져야 함을 봅니다.
사실 바쁘다는 핑계로 주일 예배이외에 가끔씩 빠지기도 하며 예배에 집중하지 못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회개합니다.
불레셋사람들이 믿었던 다곤을 쓰러뜨렸던 하나님의 궤에 대하여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신자들에게도 이런 저런 모양으로 회개의 기회들을 제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배웁니다.
<여러분은 새 수레를 만드시오. 그리고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젖소 두 마리를 준비하시오.
그 젖소는 아직 멍에를 메어 본 적이 없는 것이어야 하오.
그 젖소들을 수레에 매고 새끼들은 집으로 돌려보내시오.
새끼들이 자기 어미를 따라가게 하지 마시오.
여호와의 궤를 수레에 올려놓으시오.
그리고 금종기와 금쥐들도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시오.
그것들은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속건 제물이오. 수레를 곧장 앞으로 나아가게 하시오.>(7~8)
<그러자 소들은 벧세메스 쪽으로 곧장 갔습니다.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의 왕들은 소들의 뒤를 따라 벧세메스의 경계까지 갔습니다.>(12)
어렸을 적에 소를 길러보아 아는데 송아지가나면 약3개월 정도 지나면 송아지를 팔게 도비니다.
그러면 며칠 동안 소가 울기도 하고 일을 하다가도 시장 쪽으로 마구 달려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자신의 새끼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비슷합니다.
하나님의 궤를 운반할 때 이렇게 젖을 뗀 암소를 사용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자 하였는데 암소들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벧세메스 경계가지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그들을 깨우쳐주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는 사람들이 결국에는 핑계치 못할 것입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말씀만을 쫓아 행하라는 비유가 연상이 됩니다.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여호수아1:7)
<수레는 벧세메스 사람인 여호수아의 밭으로 와서 큰 바위 곁에 멈추어 섰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수레의 나무를 잘라 냈습니다.
그리고 소를 잡아서 주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여호와의 궤를 내려놓고, 금쥐와 금종기가 든 상자도 내려놓았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그 두 상자를 큰 바위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벧세메스 백성은 그 날,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과 희생 제물을 여호와께 바쳤습니다.>(14~15)
<그런데 벧세메스 백성 중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쳐 칠십 명을 죽이셨습니다.
벧세메스 백성은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그토록 무섭게 벌주시는 것을 보고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이 여호와의 궤를 어디로 보내야 하는가?”>(19~20)
벧세메스사람들이 처음에 하나님의 궤가 왔을 때는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드렸으나 불경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궤를 들여다봄으로 칠십 명이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처음 마음과는 달리 여호와의 궤를 다른 곳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다가 처음에는 기쁨으로 받아들이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에 의존하려는 모습이 나에게도 있습니다.
나 자신의 연약함을 늘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씀들이 나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수준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는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전능하신 주님이 하시는 일들은 결국에는 선한 결과들을 이루게 되리라고 믿으며 오늘도 나아갑니다.